신약성서와 더불어 신학적 노력은 본격화한다。공관복음서에 비해서 요한복음은 상당히 논증적인 서술 방법을 사용하고 있고 헤브레아 서간은 분명히 신학 논문의 일종으로 볼 만하다。그리고 요한 묵시록에 이르러서는 당시의 유태인들의 사상계에 널리 유행하던 사고방식과 사고 범주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으니 천계와 천사와 악마의 영혼에 관한 현의를 유태인다운 직관과 환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사도들의 재세시부터 2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즉 헬레니즘이 유다이즘과 교체하여 그리스도교 신학의 도구가 되기까지 형성기에 있던 교회는 그 스스로를 새로운 계시인 신약에 근거를 두면서도 구약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신약은 구약의 완성이라고 주장하고 신약에 나타난 개념이나 사건을 구약의 개념이나 사건과 결부시켜서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를「하느님의 천사」라고 하는 것이나 교회를「새로운 예루살렘」이라고 부르는 것이나 수난과 부활을「빠스카」와 관련시켜 설명하는 것이 신약시대 최초의 신학은 유태적인 사고 범주로 구성된 것임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최초의 신학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깊은 흔적을 남기고 있으니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천사라고 표현하는 것은 이미 자취를 감추었지만 교회를 새로운 예루살렘이라하고 부활축일을「빠스카」로 부르는 것은 우리들에게도 상식이 되어 있을 정도이다。
불행하게도 이 신학은 시기적으로 너무 짧은 기간밖에 갖지 못했고 문헌들의 일산으로 그 전모를 파악하기 곤란하다。우리는 초세기의 것으로 판명된 구약 위경 몇 권과 신약 위경 몇 권의 일부를 가지고 있고, 그 나머지는 유스띠누스, 이레네우스, 힘볼리뚜스, 글레멘스, 메토리우스 등 초세기 교부들의 증언에서 이 신학의 편모를 엿볼 수 있을 따름이다。
박해를 받으면서도 교회가 서서히 로마제국 안에 그 지반을 구축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당시 로마제국의 문명사회가 사용하던 희랍어와 헬레니즘을 채용하여 그리스도교의 메시지를 설명하고 변호하는 신학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위정자들은 신자들이 황제 숭배를 거부하기 때문에 반국가적 집단이라고 박해하고, 로마의 어용학자들은 신생 그리스도교를 무식자의 종교라고 몰아세울 때에 호교가들은 복음의 진리가 희랍 철학의 진리와 모순되지 아니할 뿐 아니라 오히려 세련된 인간 이성은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기본 진리를 인식할 수 있고 복음은 이성을 완성시키는 진리라고 설파했다。그러나 철학과 종교의 조화를 극단으로 주장할 때 그리스도교의 고유한 신비를 과소평가하는 위험이 있고, 사실상「그노시스」이단파는 그 좋은 본보기이다。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와 그 제자 오리세네스에 이르러 신학은 플라토니즘을 원용한 체계적 학문으로 정립되고 4세기와 5세기에 배출된 교부들은 기본적인 신조를 확립하였다。희랍철학의 특징인 분석적이고 연역적인 논리학을 채택하여 많은 학파의 논쟁을 초래하였고 그 결과는 여러 가지 이단설의 발생과 동시에 이단을 반박하고 치멸하고 정확한 개념의 발견으로 교리 설명을 보다 풍부하게 조직적으로 할 수 있었다。동방 교부들은 형이상학적 사색을 통한 이론적 설명에 치중하여 기초 교리 확립에 크게 공헌하였으니 초대 교회의 7대 공의회가 동방에서 열린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그들은 일정한 구심점이 없이 百家爭鳴的 논쟁을 통하여 성삼론 강생론 성신론 신화론을 특히 발전시켰으며 교회론에 있어서는 다원적인 교계제도와「시노드스」(종교회의) 중심의 교회생활을 전개하여 나갔다。
서방 교부들은 로마인의 특징인 실천적이고 법이론적 추리를 통하여 원죄론 구원론 성사론 윤리신학을 발전시켰으며 교회론의 여론이나 실제에 있어서 교황을 기간으로 하는 일원적인 교계제도를 확립하여 갔다。
그러나 가장 독창적이고 종합적 천재인 아우구스띠누스는 희랍철학을 깊이 이해하고 자기 신학 체계에 이용함으로써 사변적 체계를 세움에 있어서나 실천생활의 교훈을 줌에 있어서나 단연코 초대교회의 가장 큰 지성이라고 할 수 있다。
초대교회의 신학의 2대 산맥은 서로 보완되었어야 이상적이겠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희랍인과 라틴인의 기질의 차이도 있었고 서로마제국의 멸망과 동서교회의 분리는 이런 이상을 실현할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고대에서 중세에로 이행하면서 동서의 교회는 각자의 제도와 신학을 서로의 접촉이나 기류가 없이 이끌어 나갔으니 동방교회는 전례와 관습의 다양화가 교권의 분산을 가져와 국권이 교권에 깊이 개입하여 신학의 위축을 초래하였으며 서방교회는 야만족들의 침입으로 기존 질서가 무너지는 가운데서 이들의 교회와 새로운 사회 질서를 세우는 데 분주했고, 2세기에 이르기까지는 아우구스띠느스의 영향하에 신학의 명맥을 유지했을 따름이다。
그리스도교가 유다이즘의 품을 떠나서 헬레니즘과 접촉하여 얻은 신학은 종교를 이론화하고 객관화하였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그리스도교가 어느 교파를 막론하고 다분히 주리적 신앙을 고백하고 있는 것은 바로 초세기 신학에 그 원인을 두고 있다。그리고 플라톤의 영향하에 신학이 출발한 것은 오랫동안 신학적 인간학이 발달하지 못한 원인도 된다。상세한 것은 여기서 언급할 수 없으니 중세로 눈을 돌리기로 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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