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눈다는 것은 분배한다、 음식을 함께 먹는다、 고락을 함께 겪는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나누고자 하는 욕구를 소유하고 있다.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불쌍한 사람을 보면 동정심이 절로 발동된다.
그러나 실제로 나눔을 실행에 옮기기란 그리 용이하지 않다. 감정과 행위는 별개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은 있으나 가진 것이 부족하고 능력이 없어 베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가진 것도 많고 능력도 있지만 욕심 때문에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소유의 만족감은 개인에 따라 편차가 크기 때문에 그 기준을 설정하기란 쉽지 않다. 이는 가진 자가 못가진자보다 소유욕이 그만큼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나눔의 실천이란 가진 자、 못가진자 할 것 없이 손쉬운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나눔은 가진 자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뜻이다. 예수께서「과부의 헌금」을 극찬하신 것은 이를 잘 입증해주고 있다. 이러한 예는 예수시대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나눔의 행위는 사랑의 결실이며、 이로 인해 일치가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교회는 언제나 나눔의 정신을 고무시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나눔의 가진 자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가진 것이 많을 때 실천하기가 용이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가진 자들이 나눔에 앞장서야만 그 실효성도 크게 나타나는 것이다. 가난한 과부의 헌금정신은 가진 자들의 나눔 정신을 자극하는 교훈적인 의미가 강하다고 볼수있다.
80년대 한국교회는 나눔의 정신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10년이었다. 80년대 교회를 한마디로「나눔의 교회」로 압축해 볼수있다. 교회의 나눔이란 교회구성원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모두의 노력이 집합된 결정체이다. 가난하고 불우한 이웃을 방문、 위로하고 도와주는 행위에서부터 복지시설을 건립운영 또는 지원하고、 해외에 선교사를 파견하는 등 그 내용 또한 광범위하고 다양하다.
대부분 개인의 나눔 행위는 물질적인 지원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지만 교회차원의 나눔은 물질적 지원과 함께 인적자원이 요구된다. 복지시설운영이나 해외선교사 파견 등에서는 인적자원이 더욱 중요시된다.
교회는 신자들에게 십일조를 요구한다. 신자들이 교회에 헌납하는 십일조 (十一條)는 부가 가치세와 같은 십일조 (十一租)와는 구분된다. 교회에 십일조를 재지 않는다고 해서 특별한 제제를 받는 경우는 없다. 그 실천여부는 개인의 의지에 달려있다. 다만 십일조는 교회에 대한 신자의 조건이며、 신자로서 지켜야할 본분에 대한 기준척도로 제시돼있다.
십일조는 곧 신자들의 나눔에 대한 기준이며 잣대로서 활용되고 있다. 교회의 나눔 역시 십일조가 하나의 잣대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국가에서 거둬들이는 세금도 가난한 자에게는 면제 해주거나 세율을 낮춰주고 있다. 교회 역시 극빈자들에게 십일조를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면에서 한국교회 자체가 1950년대까지 극빈자였다.
2백여 년 교회사 가운데 전반기 박해시대 1백년은 차치하고서라도 수많은 외국인 선교사와 외국원조에 의해 1950년대까지 부지돼왔다. 한국교회는 신앙선조들에 의해 세계교회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선교사의 도움 없이 교회창립을 이룩했지만 교회의 유지발전은 선교사와 외원의 도움에 오랫동안 의존 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교회는 1960년대에 들어 교계제도설립(1962년)에 이어 방인성직자 양성이 본격화되고、 국가경제성장과 함께 복음화가 가속화되면서 자립의 기틀을 다질 수 있었다.
1970년대 한국교회는 60년대 자립의 바탕위에서 나눔의 의식이 확산되면서 나눔을 실천하기 위한 의지가 빛났던 세대였다. 그리고 80년대는 모든 분야에서 체계적인 틀과 모양을 갖춰나가면서 나눔의 정신 확산과 함께 나눔의 실천이 만개한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한국교회의 나눔 실천은 1981년 11월11일 한국교회사상 처음으로 남태평양 파푸아 뉴기니에 한국인 선교사제 4명을 파견함으로써 분기점을 가져왔다. 받아만 오던 교회의 처지를 탈피하고 드리어「주는 교회」로 대변신을 이룩한 것이다. 주는 교회라는 표현은 나눔의 본질상 주는 것이 아니라「나누는 것」이기 때문에「나누는 교회」가 더 적절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그 의미의 해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줄 수 있고、 나눌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선 것은 분명 크나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부유함은 은총의 결실이기도하기 때문이다.
한국외방선교회의 선교사제파견은 한국외방선교회 설립 6년만의 결실로서 성숙한 한국교회의 모습을 세계교회에 가시적으로 입증한 쾌거이기도 하다.
한국외방선교회 설립 당시 시기상조라는 부정적인 견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이를 과감히 시도한 것은 풍족할 때 남는 것을 나누는 것은 진정한 나눔일 수 없음을 일찍이 간파하였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만일 풍족하기를 더 기다렸다면 아직도 외방선교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지 모르는 일이다. 지금도 한국교회에 성직자가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81년 파푸아 뉴기니로 4명의 사제를 파견하는 것으로 시작된 외방선교는 이미 1차로 파견된 바 있는 4명의 선교사제가 모두 소정의 임기를 마치고 전원 귀국、 새로 파견된 선교사제들이 그 소임을 맡고 있다.
처음 시도한 외방선교이기 때문에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여러 시행착오도 겪었고、 문제점도 안고 있으나 연륜이 쌓이면서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외방선교회의 선교사제파견에 이어 성베네딕또회 수사파견 (필리핀ㆍ82년9월26일) 전주교구 선교사제 파견결정 (남미ㆍ84년9월3일) 포교 성베네딕또 수녀회 의료수녀파견 결정 (케냐ㆍ84년9월24일) 등 한국교회는 2백주년 기념을 전후로 눈에 띄게 주는 교회로의 발빠른 변신을 보여주었다.
89년4월1일 현재 교황청전 교원조회 한국지부가 집계한「한국인 해외선교사 현황」에 따르면 전국 교구 및 수도회 등 총25개 단체에서 1백16명의 선교사들이 31개국에 파견돼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년 남짓한 사이에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지난 5월과 10월 안동교구와 서울대교구가 프랑스교회에 선교사제 파견을 결정、 새로운 형태의 선교사 파견을 시도하고 있다. 프랑스교회는「빠리」외방전교회를 통해 한국교회에 선교사를 파견、 한국선교를 지원해온 대표적인 교회이다.
이것은 곧 선교사의 재역류 현상인 동시 성직자 수급이 어려운 교구를 지원、 성직자를 골고루 분배하자는 취지에서 1957년 교황 삐오12세에 의해 설립된「피데이 도눔」 (Fidei Donum) 정신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프랑스교회에 선교 사제를 파견한 것은 지금까지 유럽교회 진출에 있어 유학이나 공부하기 위한 차원에서 벗어나 명실공히 세계교회 속에서 한국교회가 나눔의 대열에 동참하는 계기를 마련한 획기적인 대전환이다.
1975년 2월 26일 주교회의 총회 결의에 따라 설립된 한국외방선교회는 궁극적으로 북한과 중국 양대「침묵의 교회」를 선교대상으로 삼고 있다.
지난 11월초 한국외방선교회 총장신부가 새 선교대상지인 대만 신주(新竹)교구를 답사、 내년 3~4월경 신주교구장과의 협의를 거쳐 선교사를 파견키로 계획하고 있는 것은 향후 중국대륙 선교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장기포석이다.
그러나 1984년 아프리카 아이보리코스트 달로아(Daloa) 교구장이 한국선교사 파견을 요청한데 대해 그해 6월 열린 주교회의 상임위원회는『우리교회 실정상 선교사 파견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거절한 바있다.
다시 선교사 파견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된 자세한 연유는 알 수 없으나 기왕에 설립된 외방선교회의 인적자원에 여유가 생긴다면 특별히 한국선교사를 요청한 바 있는 달로아교구 지원이 재검토돼야 하리라고 보여 진다.
나눔은 인적 나눔과 물질적 나눔으로 대별된다. 나눔에 있어 두 가지 요소가 모두 중요하지만 인적 난무 없는 단순한 물질적 나눔만으로써는 나눔의 효율화를 극대화시키기에는 역불급이다. 이러한 점에서 해외에 선교사를 파견하는 일은「주는 교회」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선교사 파견과 함께 80년대는 교회의 사회복지 시설이 급신장했다.
80년 초 50여개에 불과하던 교회의 사회복지 시설이 89년1월 현재 3백여 개에 달하고 있어 대부분의 복지시설이 80년대에 설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교회는 아동ㆍ장애자ㆍ청소년ㆍ노인ㆍ부녀ㆍ행려자ㆍ의료복지ㆍ상담기관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친 복지시설과 기관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숫자는 우리나라 전체 복지시설의 3분의1을 차지하는 규모이다.
이같은 교회의 복지시설 운영은 근본적으로 교회의 나눔을 체계적ㆍ종합적으로 구현한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대구시립 희망원、 마리아 수녀회 서울시립 갱생원、 서울시립양로원、 서울 장애자 종합복지관、 과천 성모영보부녀보호소、 춘천시립 후생원 및 갱생원、 인천 노틀담 장애자직업교육원、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또수녀회 장애자 재활교육시설(경기도 광주) 등 정부의 대규모 복지시설 운영이 교회로 이양되면서 교회의 역할이 더욱 막중해지고 있다.
꽃동네、 오순절 평화의 마을 등 행려자복지 종합시설은 위탁시설이 아닌 자생시설로서 급성장、 주목받고 있는 시설로 등장했다.
이밖에 교구와 본당차원에서 각종 불우이웃돕기、 도농간 나눔 실천 역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특히 서울과 대구대교구가 안동ㆍ청주ㆍ제주교구를 재정적으로 지원한 것은 도농간 지역 간 나눔의 실천을 상징적으로 대변해주고 있다.
80년대는 아동복지협의회 (80년) 결성을 필두로 장애자복지협의회 (85년) 교회빈민의료협의회ㆍ사회복지 협의회 (86년) 무의탁 복지협의회 (87년) 등이 차례로 결성돼 교회 복지활동의 체계화를 이루어 놓았다.
한국천주교회 2백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전개한 영세민 실명자를 대상으로 한 무료개안수술사업과 제44차 세계성체대회를 계기로 시작한「한마음 한몸 운동」은 80년대 한국교회의 나눔 정신 고취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영세민 실명자 무료개안수술사업은「이 땅에 빛을」이라는 2백주년 슬로건과 상징성에서도 부합、 큰 업적을 남겼다. 83년5월부터 시작、 5년8개월 동안 1천5백7명에게 총1천7백53안을 시술했다. 경비는 6억5천만 원이 소요됐다.
교회내외로부터 지대한 관심을 모은 무료개안수술 사업은 당초 3개년(83~85년) 계획으로 추진하였으나、 교회내외의 요청에 따라 2백주년 기념사업결산 후 잔액 1억5천7백여만 원으로 또다시 3개년(86~88년) 계획을 수립、 시행했다.
무료개안수술 사업은 가톨릭병원협회 가톨릭맹인선교회 등에서 특별한 관심을 갖고 2차 3개년 사업비 1억5천여만 원을 기금화하여 기금을 증식시켜 나가면서 무료개안수술사업을 전개토록 해달라고 요청하였으나 주교회의에서 부결、 지난해 말로 종결됐다. 2백주년을 기념하는 마땅한 후속사업이 남아있지 않다는 점에서 큰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세계성체대회 개막 1년 전부터 시작된「한마음 한몸 운동」은 신자들에게 나눔의 정신과 실천을 생활화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지난 9월말로 집계한 한마음 한몸 운동 결실은 헌혈 4만4천여 명、 장기기증(헌안 포함) 2천2백여 명、 입양 신청자 5백77명、 결연자 2천16명、 헌미 20억 원(10월8일 세계성체대회 장엄미사 헌금 9억9천5백여만 원 포함) 에 달했다.
제44차 세계성체대회를 기해 생활실천 운동으로 전개해온 한마음 한몸 운동은 지난 10월 주교회의 가을 정기 총회에서 각 교구별로 계속하기로 결의、 90년대에도 지속적인 생활실천 운동으로 자리 잡게 됐다.
한마음 한몸 운동은 나눔의 운동이며 성찬의 생활화는 곧 나눔에 있다는 점에서 80년대 말미에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성체대회는 90년대 한국교회에 더욱 많은 나눔을 요구하고 있는 시대적인 징표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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