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개론한 신학의 발전사를 볼 때 하느님의 계시는 주어진 것이지만 신학은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만들어 가는 신학이지만 주어진 것을 토대로 하고 교회가 계시에 의하여 살아온 유기체이기 때문에 다른 학문보다 더 전통을 중요시하는 학문임이 사실이다. 그래서 신학의 토착화라고 할지라도 완전히 현명적인 새 이론으로 전혀 새로운 신학을 전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신학 형성의 자료가 되는 여러 가지 요소 중에는 삼대 기간요소가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는 성서요 둘째는 교부와 교도권과 신자들의 신앙감을 포함하는 교회사요 셋째는 각 민족 고유한 문화유산이다.
신학의 요람이 성서 연구에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계시에 대한 조직적인 이해가 신학인 만큼 계시를 우리에게 전달하는 가장 핵심적인 길이 성서인 까닭에 성서를 연구하는 것이 바로 신학적인 노력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시대에 따라서 방법이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성서 연구가 활발할 때에 신학도 융성했고 성서 연구가 침체될 때에 신학도 쇠퇴했던 것이다. 신학의 토착화를 논의할 때에도 성서적인 요소에 대해서는 움직일 수 없는 불변 요소가 있음을 망각할 수 없다. 흔히 예로 드는 것이지만 전례를 토착화시킨다고 해서 성서적 요소인 빵과 포도주를 버리고 떡과 막걸리로 성체를 이룰 수 없음과 같다.
성서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있어야 착실한 신학의 건설이 가능함은 물론이나 많은 전문가를 배출하려면 교회의 풍토 안에 대중이 성서의 본문과 친숙하게 되는 운동이 전개되어야 하겠다. 우리가 거행하는 전례나 설명하는 교리서나 다 성서에 근거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좀더 직접적으로 성서를 읽고 공부하고 중요한 대목은 암송할 수 있을 만큼 성서와 가까이 사는 기풍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한국 교회의 큰 고민 중의 하나가 성서운동의 부진이고 몇몇 분의 희생적인 노력만 가지고는 감당할 수 없는 벅찬 과제이다. 다음으로 신학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는 계시를 실천해 가는 교회의 역사적 생활이다. 성신의 인도를 받는 교회 안에서 계시가 어떻게 생활화되어 있는가를 통찰함이 필요하다.
거기에는 특히 사도시대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 시대의 교회상이 중요하므로 초세기의 전례생활과 실천적인 제도와 교부들의 해석과 교훈을 면밀히 연구하고 교도권의 인도와 신자들의 반응를 교회 역사를 통하여 관찰 분석하여 참된 전통을 식별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스콜라 신학의 최대의 약점이 바로 역사성 통찰의 부족이었다.
어떤 명제나 교회의 발전과정을 모르고 마지막으로 눈 앞에 전개된 결과만을 거의 절대시하여 논의함은 무의미하다. 종래의 신학 교과서나 신학교 교과과정에서 교회사 신학사 등 역사 과목이 푸대접 받은 결과는 신조와 신학설을 구별하지 못할 정도의 지식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교회생활을 역사적으로 연구함에 있어서는 교도권이 성경과 성전을 지배하는 동안 착각을 분석해야 되겠다. 계시헌장이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교도권은 성경과 성전의 지도를 받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그러므로 공의회의 결의문이나 교황의 회칙보다도 단연 중요시되고 앞서 연구해야 될 것은 교부들과 전례 역사이다. 우리는 이런 것을 통하여 믿는 전체 교회의 실생활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 필요한 요소는 민족 문화유산에 대한 연구이다. 절대적인 계시라도 상대적인 인간 인식 안에 신학화되면 상대화하는 법이다. 그래서 어떤 신학이든지 배타적으로 유일한 신학일 수는 없다. 초대교회에 있어서도 벌써 서방 교부들의 신학과 동방 교부들의 신학이 그 구성이나 내용에 있어서 차이점이 많았고 각기 다른 분야를 다른 방법으로 다루고 있다. 희랍문화와 로마문화를 모체로 하는 유법의 신학제도 여러 가지 조류와 유형이 있는데 그 유한전통과 역사를 가지고 있는 따른 문화권에 그리스도의 매시지가 들어갔을 때는 그 문화권에 고유한 신학이 성립될 것은 자연한 이치이다. 물론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지금까지의 신학의 유산과 무관계한 새로운 것이 아니라 그 중에서 항구하고 보편적 가치가 있는 것은 전승되면서 새로 경축하는 문화가 이해하는 것을 첨가하고 내적으로 조화시켜 가면서 새로운 신학이 형성될 것이다.
한 민족의 문화유산은 다기하고 복잡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것들이 반드시 그 민족의 창작이 아닌 것도 많이 들어 있을 수 있으나 오랜 세월을 통하여 동화작용을 거쳐서 자기 것이 되는 것이다.
불교나 유교가 우리에게는 외부로부터 선택한 것이지만 오랜 민족사 안에 흡수 동화되어서 우리의 사고방식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신학의 토착화를 위하여는 한국화한 불교 유교 도교들의 사상 연구는 물론이요 민족 안에 나타나는 한국인의 종교심을 발굴하여 이것을 신앙심에로 승화시키는 신학을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느끼는 난점은 기성 신학 체계의 서구적인 개념을 모조리 한국적인 개념으로 대체할 수 있을지라도 그것이 곧 토착화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니 아무리 훌륭한 번역이라도 번역은 원문이 아님과 같이 기성 체계의 번안을 토착화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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