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 한 구석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피에르가 마침 자리를 뜨려는 길이었다. 앙리는 청중에게 그를 가치키며 큰 소리로 외쳤다.
『오늘 저녁에는 피에르 신부가 우리하고 함께 있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노동사제요. 아마 할 말이 있을 겁니다.』
피에르는 멀리서 신호를 했다.
『아무 것도 할 말이 없소!』
그러나 앙리는 여전히 손을 내밀고 그를 청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듯했다.
피에르는 난처한 듯 손등을 이마에 가져간다. 한 구석에 앉아 있던 루이가 목 쉰 소리로 한 마디 던졌다.
『한 번 해 보지, 신부!』
온통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악의 없는 웃음이었다.
피에를는 아직도 주저하였으나 자기도 모르게 어느덧 연단 쪽으로 조용히 걸어가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그 중 몇몇은 담배 꽁초를 다시 피워 물고 루이는 제일 앞줄에 나와 앉았다.
피에르는 미소 진 얼굴로 청중들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엄숙한 얼굴이 되더니, 미사 시작하기 전에 하듯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오랫동한 움직이지 않았다.
붉으죽죽한 손, 반백의 회색 머리, 마치 늙은이가 울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회장 안은 약간 어색해졌다. 그러나 그의 두 손이 내려지자 활짝 핀 미소가 나타났다. 사람들도 저절로 따라 미소지었다.
『정말 할 말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모두 생각하고 계신 것, 그것밖엔 없습니다.
때로는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남이 소리 내어 말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사람들이 모임을 가질 때는 보통 무엇을 반대하기 위해서 합니다. 그러나 여기 우리는 무엇을 이룩하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같은 목적을 갖고… 여러분을 지금 당장 여기서 나가라고 한다면 우선 춥겠지요?여러분은 서글퍼지겠지요? 여기서 여러분이 기분이 좋고 흡족한 것은 우리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한 말을 하고 있다고 느끼는 까닭입니다.
그것은 아무도 거절할 수 없고 누구나 올바르게 사는 사람이면 받아들여야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마음의 평화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평화를 원한다면 우선 자기 자신부터 평화를 갖기 시작해야 합니다. 아시겠어요? 평화는 모든 사람들과 나눠야 하지요. 가까운 친구들 사이만이라면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도 평화를 나눠야 합니다. 솔직하게 그 사람들에게 마땅치 않게 생각하는 것을 툭 털어놓고 나서 화해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융합이 되는 것이지요. 모든 사람들과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일체가 될 때, 정말 한 몸을 이룰 때 이것이 바로 평화라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피에르는 얘기를 하는 동안 청중의 머리 위 높은 곳을 보고 있었다.
이제 다시 내려다보니 빛나는 눈초리로 자기를 응시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담배 꽁초의 불은 꺼지고 숨을 죽이고 있었다. 일순 피에르도 자기도 숨이 막히는 듯했다. 그는 바로 눈 앞에 있는 루이를 보았다. 루이는 턱으로 계속 하라는 신호를 한다. 피에르는 계속했다.
『전쟁과 악(惡)은 같은 것입니다. 전쟁은 악이지요. 가장 나쁜 악입니다. 그런데 항상 어느 곳엔가에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린 애들처럼 이렇게 소리 칠 순 없지요.
「저 사람이 먼저 시작했어. 내가 한 것이 아니야!」
악은 언제나 어디선지 먼저 시작됩니다. 그런데 선(善)인 평화도 어디서든 먼저 시작해야 할 것 아닙니까?그것이 오늘 저녁 바로 여기가 되어서 안 될 법이 있습니까? 우리가 모두 화합하고 모두 친구가 되고 아무런 뒷생각 없이 아무런 차별 없이 지낸다면 되는 것입니다.
나는 평화를 정치와 결부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평화는 화물차가 아닙니다. 그것은 화물차를 움직이는 기관차입니다.
(앙리 쪽을 향한다) 평화는 어느 누구의 독점물도 아니요! 그런데 다행한 것은 평화란 전염하는 것입니다. 좋은 전염병이지요. 마음 속이 평화로운 사람, 두 손을 활짝 벌리고 사는 사람은 함께 얘기하는 사람을, 아니 만나는 사람을 모두 평화롭게 해 줍니다. 그런 경험이 있지요? 여러분도 어느 날 아침 이유 없이 어쩐지 행복해진 경혐이 있지요? 낯선 사람을 만나도「여보게 친구 잘 있나?」하고 인사를 건너고 싶어질 때가 있지요? 그런 날은 여러분 자신이 어느 누구보다도 자신만만한 것을 느끼지 않았습니까? 곤란한 친구를 도와 줄 자신이 생기지 않습니까? 공장 안을 온통 웃기고 싶으면 여러분 자신이 웃으면 됩니다.
평화도 마찬가지지요. 여러분이 친구를 사랑하면 친구도 여러분을 좋아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가엾은 친구를 사랑하면 그 친구는 덜 가엾게 되지요. 악질인 놈을 사랑하게 되면 덜 악질이 될 겁니다. 경찰관들도 나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 자들은 심하게 굴라고 명령을 받은 가엾은 사람들이지요. 우리는 바로 그 반대가 됩시다. 나쁜 사람들을 착하게 대합시다. 여기서 바로 평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누군가 먼저 첫 발을 내디뎌야지요. 그 첫 시작을 한 사람이 바로 평화의 투사입니다. 첫 발을 내디디는 것은 지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 강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친구를 학대하거나 부정(不正) 앞에서 비겁해지는 평화의 투사는 탈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평화란 연판장에 서명하거나 또 우익(右翼) 신문을 읽는 사람을 욕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건 아무 것도 아니지요. 평화란 모임만 가지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저녁 식사가 끝난 다음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지요. 평화라는 것은, 그것은 아침부터 시작돼야 합니다. 자기 방에서부터 혼자 있을 때라도! 그리고 하루 종일 계속돼야지요. 그것은 친구든 지배인이든 똑바로 바라보고 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놈은 가망 없으니 말해 봐도 소용 없다」
「이 자식은 나쁜 놈이니 말해 봐도 소용 없다.」
이래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만일 한 대 후려갈길 만하면 후려갈기시오. 그리고 나선 그 이유대로 서로 말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평화를 말할 수 있습니다…』
『저런 말이…』앙리가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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