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어느 성당엘 가나 또 교우들의 대개의 집회에서 대화거리가 되고 있는 것에 주일 헌금이 있다. 그만큼 신앙생활이 금전문제와 관련이 깊고 또 새삼스럽게 교회의 자치 운영이 크게 관심사가 되고 있는 소이이리라. 그런데 혹자는 천당 가는 길에 인류 구원의 길에 무슨 돈 이야기나 하고 오히려 무슨 금기의 이야기처럼 천시도 하는가 하면 혹자는 이제 교회도 하는 수 없이 속화되어 심지어는 강론에까지 재료가 되고 성직자가 손수 헌금 바구니를 들고 다니는가 하면 헌금을 내는 동안 사제가 무서운(?)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다는 등 그 자괴지심을 불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 주일 헌금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신앙생활을 마치 초현실화하려는 지극히 이기적인 형이상학적 사고방식을 지향해야만 한다는 엄청난 우리의 현실이 눈 앞에 있다. 가톨릭이 조국에서 박해시대를 지나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되자 외국의 전교회에서는 많은 신부님들이 이 땅에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하여 가난한 이 나라를 하느님의 나라로 건설하고자 오셨다. 낯설고 물설은 타향만리에서의 전교는 우선 보이는 수단으로써 민심을 끄는 것도 중요한 일 중의 하나였으리라. 그리하여 전교신부님들은 한 손엔 복음을 다른 한 손엔 빵을 가지고 오셨다. 신앙을 고백한 자에게는 빵을 주어서 그들의 신앙을 항구하게 굳히는 한편 또다른 이의 마음을 쏠리게도 하였다. 이 처사는 확실히 좋은 열매를 보았다. 주로 농촌지대의 사람들은 당시 대지주 밑에서 학대로운 소작농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런데 죽어서 천당도 가고 살아서는 학대로운 소작농에서 벗어나 명예로운 영농을 하게 되니 그야말로 알도 내 것이요, 꿩도 내 것이요,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었다. 그만큼 농촌에서의 외국 신부님들에 의한 전교는 튼튼했다. 도시는 도시대로 농촌과 그 양상은 달랐지만 이와 비슷한 점이 있었다. 한 번 심은 씨는 잘 자랐다. 농사를 지어 교우금을 내라니 그 첫 곡식을 바쳤다. 명예로운 헌납이었다. 어떤 신부님은 의술에도 능하시여 무료로 잡다한 병을 치료도 하셨다. 교회 내의 여러 기관은 취직의 혜택도 베풀어졌다. 따라서 교회는 모든 것을 주는 곳이요 신부님의 손은 사뭇 후덕스럽기만 했다. 모든 사례가 전적으로 반드시 동일할 수는 없는 일이라지만 우리 교회 사상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에 틀림없다. 6·25 동란 후의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 숱한 밀가루와 구호 물자가 신부님들의 손에 의해 다른 말썽을 일으켜가며 성당 주변에서 분배되었다. 이로 인하여 다시 많은 신자가 늘어났다는 사실을 우리는 구태여 숨길 필요는 없다.
『사람이 다만 빵으로만 살지 아니하고…』의 예수님의 말씀은『사람이 다만 하느님의 말씀으로만 살지 아니하고…』로 가치가 전도되었다. 많은 가난한(?) 이들이 복음과 함께 빵을 받아 영육이 한 가지로 가멸하게 되었다. 가난한 이들로서 당연한 일이다.
그러다 보니 일각에서는 웃지 못할 넌센스도 생겨났다.『너 무엇을 위하여 성교회에 나왔느뇨?』에『xxx의 논 서 마지기 바라고 나왔습니다』는 애교로 풀이한다 하더라도『너 성교회에 무엇을 구하느뇨?』에『xxx의 소작권을 구합니다』에 이르러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런 사실의 유무는 차치하고라도 이런 말이 우리 교회 안에서 유포되었다는 것부터가 부끄럽기 그지없는 노릇일 수밖에 없다.
신앙이 어찌 구걸일 수야 있느냐 말이다. 내가 나의 구원을 위하여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성세성사를 받은 것이 아니라 그 소작 그 밀가루 그 구호 물자를 얻기 위하여 하는 것이라면 영세 문서는그 전표일 수밖에 없다는 뼈 아픔이었다 생각하면 가난한 우리에게는 하나의 권리가 될지도 모르는 마땅한 일일 수도 있고 또 동기야 어쨌든 입교 후 성실한 신자로서 그 사명만 다한다면 그만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성인이 아닌가? 성인은 도움을 받을 때가 아니요『남을 도우라』하신 주의 계명을 실천할 때다. 그런데 이렇게 들어온 교회생활이 언제까지나 어릴 적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우리의 엄연한 현실이 문제요 체면인 것이다.
이러한 우리들의 사고방식에 대하여 크게 경악을 통감하기 시작한 것은 한국에 교계제도가 교황 성하에 의하여 설정된 65년도부터라고 생각된다. 교계제도의 실시는 곧 모든 면에 있어서의 자치제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영적 종족생활에서 탈피하여 인격적인 신앙생활에의 전기시대가 온 것이었다. 몇 해 동안의 그 과도기가 흘렀다. 성당 안에서 밖에서 이에 대한 논란이 분분했다.
언젠가 가톨릭시보에 헌금 걷는(?) 방법이 너무나 속되다는 모씨의 글이 보이기도 했다. 사실 급작스레 이것이 웬 일이냐 말이다. 과거에 애긍을 걷는 일은 있었다. 물론 자유였다. 어디까지나 선심이었다. 그런데 신부님이 헌금에 대한 강론을 하고, 손수 걷기도 하고 개인별로 그 액수를 발표도 하고 확실히 심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방인 신부님들은 이런 일에 있어서 잔인(?)하다고 했다. 외국 신부님 모시던 시절을 그리워도 했다. 성당 가기가 상스러워졌다. 무척이나 아깝기만 한 10원짜리가 사뭇 주머니에서 발버둥 쳤다. 차마 양심상 빈 손일 수는 없다. 그보다도 의자에 앉아 있으면 지켜보는 눈이 있다. 더구나 모조리 영성체 난간까지 나오라는 데야 어처구니 없는 노릇이었다.
반대의 반대는 그러므로 가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제 이런 시대는 지나갔는지도 모른다. 거의 모든 성당에서 다만 동전 닢이라도 헌금통에 넣어야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액수와 정성이 문제되었다. 2천여 명 교우가 다녀간 성당의 헌금통에 구겨진 10원짜리 내던져진 동전(?) 몇 닢, 선심(?) 써진 1백 원짜리 합쳐 보아야 5천 원 선을 오르내리기 고작이란다. 서울의 중심지 모성당은 주일 날 만여 명이 다녀가서 15만 원 선이란다. 그런데 그 옆의 모 개신교 예배당에서는 7~8천 명이 다녀가서 70만 원 선이란다.
병아리 때 뿅뿅뿅 지나간 뒤에는 미나리 새싹이 돋아난다지만 우리 성당은 때로는 쓰지도 못할 10원짜리만이 애처롭다. 가난이 탓이기도 하다.교육 자체의 탓인지도 모른다. 하늘은 스스로 아니 서로 돕는 자를 돕는다 했는데 가만히 있는 자를 도왔으니 말이다. 점잖게 차린 신사 숙녀나 허름한 차림새의 아주머니나 매한가지로 지극히 인색한 열매다. 10명의 나환자에게 가서 제관에게 보이라고 예수님께서 하셨다. 가는 도중 그들은 모두 조촐해졌다. 그러나 되돌아가서 예수님께 감사를 드린 자는 이방인 한 사람뿐이였다. 예수님께서는 노하셨다. 다른 아홉 사람은 어디 갔느뇨? (루까 17. 11~19) 신사 숙녀의 주머니에서 5백 원권 백 원권 십 원권 한 주일 동안 무수히 거쳐 갔다.
그런데 주일날 성당에 출두(?)한 것은 십 원권일 뿐 5백 원권 1백 원권이 의노를 살 차례다. 그들은 지금 어디 있느뇨? 라고 말이다. 얼마 전 가톨릭시보「가십」난에 서울 현석호 회장의 지폐 회합 비유 말씀이 맞아들었다. 5백 원은 요정으로 1백 원은 다방으로 십 원권은 성당으로 모이자고 지폐들은 의결했단다. 웃어만 넘기기에는 너무나 얌체 없는 현실이다.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여지가 없는 현실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헌금에 대한 근본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할 시절까지 온 것이다.
헌금은 제물이라 했다. 제사에는 영신적 예물과 함께 육신적 제물이 또한 불가결하다. 미사는 제사가 아닌가? 가까운 예로 우리가 세속의 제사를 지내려 함에 몸과 마음을 조촐히 하는 외에 모든 정성을 다하여 제수를 준비한다. 제수를 받는 이의 가난하심을 바라는 마음에서다. 또한 그 제수는 다시 내게로 돌아오는 까닭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는 벗 하나를 대접하기 위하여 온갖 정성을 다하기도 한다. 다방에서 차값을 치를 때 우리는 레지 앞에서 나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하여 때묻지 아니한 지폐가 카운터에서 사뿐히 부복한다. 이쯤 생각이 미치고 보면 다음에 나올 말은『하물며…』다. 미사는예수님의 피의 제사의 재생이다. 순교 선열들은 생명을 제물로도 바쳤다. 만왕의 왕이신 천국 성부께 드리는 제물 그리고 그 제물은 나의 영혼의 양식으로 되돌아올 것이 아니냐? 어찌 세속의 썩어질 제물에 비할까 보냐. 토요일 저녁쯤 가장이 모든 식구에게 명하여 각각 헌금을 조촐히 준비케 하여 이를 잘 보존했다가 주일날 성당에 가지고 감이 만 번 타당한 일이 아닐까? 어린이들은 손수 만든 예쁜 봉투에 넣고 겉봉에『천주께 감사』라고 쓰고 곱게 그림을 그려도 좋으리라.
그런데 구겨진 지폐 한 장을 내던지고 정성스런 미사 참례가 될 까닭이 없다. 제물은 우선 그 많고 적음에 앞서 마음의 정성이 근본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구약시대의 제물 사도시대의 제물이 이를 인증하고 있다.
헌금의 사용처는 우선은 교회 운영에 있다고 했다. 성직자의 생활 유지에도 있다고 했다. 교회는 남의 것이 아니다. 남의 것이라면 그야말로 내는 헌금은 그 사용처야 어쨌든 동냥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헌금은 인류의 구원과 나의 구원을 위하여 쓰여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애긍일 수는 없다. 우리들은 언제까지나 영신생활에 있어서 적어도 노예일 수는 없다. 사회생활에 있어는 흔히들 천주교회는 돈이 많다고 한다.
그 이유는 외국에서 보조가 있기 때문이란다. 생각하면 얼굴이 달아오른다. 민족의 사대적 사고방식이 구원의 생활에까지 미쳐 있는 것이다.
외국 사람이 우리를 돕는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는 약하다는 것인데 무슨 명예일 수 있느냐?
주교님들은 1년에 한두 차례 외국에 구걸 행각(?)을 하셔야만 당신의 고양을 칠 수 있다면 실로 서글픈 현실일 수밖에 없다. 이제 한국 천주교회는 어린이일 수는 없다. 당당한 어른이다. 어른이면 그 생활의 건전함으로 어른임을 증거해야 한다. 우리는 흔히 성당의 모든 일에 무관심하다.전세집에 사는 기분이다. 유지하는 성당이 아니고 그 누군가가 해놓은 곳에 와서 신앙의 선심(?)을 쓰거나 아니면 주시는 은혜만 받아 가지고 가면 그만이다. 나의 구원의 집 인류의 구원의 집을 내 손으로 유지한다는 마음의 자세가 근본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예수께서는 사도들을 전교 보내시며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 대개 일꾼이 저 먹을 것을 받는 것이 합당하다.「(마태오10. 5-15)고 하셨다.더구나 성직자는 모든 것을 버리고 우리에게 오신 목자이다. 그분들이 외국의 원조에 의지해야만 생활할 수 있다면 묘한 논리일 수밖에 없다.
우리의 복자의 생활이 우리의 정성으로 영위되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다.
군란시대 교우들이 몇백 리밖에 신부님이 계시다는 풍문을 듣고 엽전 꾸러미를 괴나리봇짐에 정성되어 꾸려 가지고 불철주야 찾아가서 교무금을 바치고 판공성사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바로 전 세기에 우리나라에서 이뤄진 일임을 생각하면 신앙에도 격세지감이 있다.
당시 헌금은 정의와 사랑의 실천행위라 했다.
그동안 우리는 외국 교우들의 이 선행 덕분으로 살아온 것임을 생각하면 감회가 크다. 야고보 사도께서는 선행이 따르지 않는 신앙은 헛된 것(야고보서 2. 14-26)이라고 거듭 경고하셨다.
예수님의 사랑의 새로운 계명을 이 선행에 의하여 보람되게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사도시대에는 모든 믿는 이가 가진 바 모든 것을 팔아 사도를 발 아래 두고 사도들은 이것을 각 사항에게 요긴한 대로 나눠 주었으므로 궁핍한 자 한 사람도 없었다(사도행전 4. 32-37)고 했다. 우리는 먼저 정의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할 것이니 정의의 입장에서 이미 주었어야 할 것을 사랑의 선물처럼 주어서는 안 된다. (평신도 사도직 교령p 20).
물론 지금은 사도시대는 아니다. 그러나 그 근본정신이 없어질 수는 없다. 자모이신 교회는 가장 믿을 수 있는 그리고 주의 이름으로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자선단체의 본산이다. 나의 조그만 정성이 홀로 큰 일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조그만 정성이라도 헌금들을 거친 뒤에는 엄청나게 큰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주의 이름으로 부여되는 것임을 인식해야겠다. 또한 나 개인의 자선은 때로는 겸손하지 못한 경우가 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이 나팔을 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헌금통을 거쳐서 할 때 이는 왼손도 모른다. 따라서 그 보상은 주의 이름으로 동옥도 슬지 않고 좀도 손상할 수 없는 하늘 높은 곳에 쌓여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 정의와 사랑을 실천할 적극적인 의무가 있는 것이다. 아나니아와 그 아내 사피라가 사도를 속이고 주의 성신을 시험하다가 그 자리에서 벌을 받아 죽었다. (사도행전 5. 1~11) 이것은 전설에 나오는 공갈 설화가 아님을 우리는 명심해야 하겠다.
헌금에 인색할 수 없다. 자기의 한 달 수입 중에서 일정한 액을 떼서 조촐히 보관해 두고 주일마다 바치는 것이 만 번 타당하지 않을까? 지금은 헌금통에서 댓진과 손때 냄새가 악취를 풍긴다. 헌금통에서 적어도 나프탈린 냄새쯤, 나아가서는 향수내가 풍겨지게 될 때 우리의 제물은 주 안에 제물다워질 것을 기대한다. 쓰고 남은 것이 아니고 정의와 사랑의 실천 표지로서의 헌금에 대한 인식이 근본문제가 아닐까 한다. 우리는 헌금에 대한 말썽을 부끄럽게 여긴다. 듣기를 거북해한다. 그러면서도 그 근본문제는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이 부끄러운 과도기가 하루 속히 청산되어 우리의 손으로 이뤄진 것을 보고 사회에서 천주교는 충족하다는 말이 하루 빨리 돌려올 날을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가정에서는 어릴 때부터 이 교육이 이뤄져야 하겠고 예비자들은 교리 준비 기간 중에 이 교양이 몸에 익혀져야 하겠다. 결코 헌금이 하나의 의무일 수도 없고 또 하나의 교만한 선심일 수도 없다. 하느님께 받은 것의 일부를 하느님께 돌려드린다는 것은 그리스도 신자의 당연한 의무요 또한 무쌍의 영광임을 깨달아야 하겠다. (평신도 사도적 교령 p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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