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남의 아가릴 닥치게 한 적은 있지만…』
『이제 그만들 하세요. 눈사람이 돼버리겠어요. 』
마드레느가 가로막았다. 앙리는 정면으로 미쉘을 쳐다보며 대들었다.
『여보게 미쉘, 자네가 하는 그 음성 거래도 그리스도가 하시는 모양이군 그래』
『난 자네하고 싸우고 싶진 않아. 당에 입당한 것도 아니니까!』
『좋을 대로 하게나. 그러나 평화 투사에 관한 한 자네는 집에 들어앉아 있는 편이 나을 걸!』
『꽤 시끄럽군. 마드레느가 감기 들겠소…』
쟝이 갑자기 짜증을 냈다.
루이는 젖은 담배 꽁초에 억지로 불을 붙이며 한마디 던졌다.
『자넨 스포츠가 싫은가? 공산주의자 대신부라…신나는데!』
앙리가 나직이 쏘아 부친다.
『자넨 교회지기를 하면 알맞겠군 루이. 스페인에서 신부들을 많이 죽였으니까』
『그렇구말구. 그래서 자네 상관들이 내게 무척 고마워했지. 그리고 날 개돼지처럼 내쫓아 버리지 않았겠나?』마드레느가 하품을 했다.
『아이 졸리워. 안녕히 계세요』피에르는 외투의 눈을 털면서 앙리를 향했다.
『앙리, 평화를 위해 싸인할 리스트를 내일 가져오게. 내가 공연히 자네에게 언성을 높인 것 같군. 그러나 자네도 잘못했어…』
『글쎄 좀 생각해 보겠네. 내일 또 얘기하세. 루이, 함께 갈까?』
『아니 난 미쉘하고 돌아가겠어. 잘 가게』
혼자 몇 발자욱 눈길을 걸어가던 앙리가 웃는 얼굴로 되돌아섰다.
『스페인 말로「원한이 가득 찼다」는 말을 뭐라고 하나?』
『꼬니오라고 하지. 자 미쉘, 가자!』
피에르는 미쉘과 노인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인 같은 미쉘이 한 발자욱 뗄 때마다 두 발자욱은 걸어야 하는 늙은 루이. 충성을 다했건만 배반 당하고 실의에 찬 그. 방구석에 매달아 놓은 고양이에게 이 세계의 장래를 연설하고 있는 늙은 루이.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고 고집부리지만 아무도 사랑할 사람이 없어 괴로워하고 있는 그. 무엇이든 최악의 경우만을 예견하고 온갖 음식에 마늘만 넣어 먹는 늙은이. 결국 실패한 인생이랄까…
『안녕히 주무세요, 신부님』
『마드레느, 내가 바래다 줄까』
『그만두시요. 내가 갈 테니까.』
쟝이 다급히 막는다.
피에르는 혼자 네거리에 남았다. 이제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간 앙리. 웬일인지 그가 뒤를 돌아보는 것 같아서 피에르는 다정하게 손짓을 했다.
미쉘과 루이가 걸어가는 것이 보인다. 루이가 열심히 손짓을 하는 것을 보니 자기 신세를 하소연하는 모양이다. 미쉘은 듣는둥 마는둥 하는데…오른쪽에는 쟝과 마드레느가 눈 위에 발자욱을 남기며 걸어가고 있다. 외투를 벗어 마드레느 어깨에 씌워 주려는 쟝. 여자는 억지로 그 외투를 다시 쟝에게 입힌다.
피에르는 갑자기 추위를 느꼈다.「조라」거리고 발을 옮기는 그는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앙리도 외롭겠지. 나보다 더 외로울 거다. 아무도 함께 얘기할 사람도 없고 자기 자신하고밖에는…』
언뜻 베르나르가 머리에 떠올랐다. 매일 밤 텅 빈 집에 들어설 때면 그는 가슴이 조이는 듯하다. 죽어간 사람을 생각하듯 베르나르를 생각하곤 한다.
『베르나르 뭘 하고 있고.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요?…이렇게 힘겨운 일을 내게 남겨 놓고…』
바로 옆에 눈 한 덩어리가 지붕에서 떨어진다. 그리고 다시 주위는 고요해졌다.
『결국 베르나르는 중도에서 고장이 난 셈이지…너무 빨리 돌아간 거야…』
그는 마음 속으로 기도드렸다.
『주여, 저는 중도에서 고장이 나지 않게 도와 주소서!』
다음날 낯선 사람들이 하나 둘「조라」거리의 문을 밀고 들어왔다. 마치 어쩌다 밝은 곳에 발을 내디디는 숲 속의 짐승처럼 조심조심 겁이 나는 모습이었다.
『저…집에 있나…그 피에르라는 사람?』
『없어요. 공장에 갔어요. 』
마드레느가 대답했다.
『신부라던데!』
『노동사제지요.』
『마찬가지지』
『그렇다고도 안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요. 여섯 시경에 돌아올 거예요. 』
『그럼 다시 보겠소.』
돌아올 시간이 되자 모두 모여들었다.
피에르는 집안에 가득 찬 사람들을 보자 마드레느에게 걱정스런 눈초리를 던졌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잘 곳을 찾아 줘야 하나?』
아니, 이들은 평화를 위해 서명하러 온 것이다. 그리고….
『그리고 자네하고 함께 얘기도 하고 싶은데. 사람이 너무 많군. 하루 저녁 우리집에 와서 저녁이라도 먹읍시다. 내일은 안 되고…내가 야근을 하는 날이니까…목요일은 어떻소?』
『목요일 자네가 여기와서 먹으면 어떤가? 몇 사람 모일 테니까!』
『벌써 약속이 돼 있다면 안 되겠군…』
『천만에! 먹을 것이나 좀 가져오시오』
『아니예요 안 가져와도 어떻게 될 거예요』
마드레느가 가로막았다.
『항상 도중에서 어떻게 해결되게 마련이지』
쟝은 웃으며 마드레느를 쳐다보았다.
『당신네들은 이상한 사람들이오. 항상 웃고 있으니!』
서명을 하러 온 사나이 한 사람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우리들이라니 누구 말이오?』
『기독교 신자들 말이오』
『난 아직 신자가 아닌데…』
쟝이 대답한다.
『그럼 아마 전염하는 모양이지…평화 모양으로!』
『웃는 얼굴을 보면 기독교 신자라는 것을 알지. 그러나 당신이 당원이라는 것도 곧 알아볼 수 있소』
쟝이 대꾸한다.
『뭘로?』
『당신 눈초리로! 공산당 눈초리를 하고 있어. 냉혹하고 엄격한 눈초리를』
옆에서 얘기를 듣던 루이가 끼어들었다.
『그럼 내 엉덩이는 진보주의자야? 여보게, 신부 저 사람들 말 좀 들어보게. 사냥개처럼 냄새를 잘 맡는군. 「너의 웃는 얼굴이…너의 눈초리가…」해가며…그건 토론이 아니야 유행가지!』
『바보 같은 것이!』
사나이가 기분 상한 듯 내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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