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향잡지편
우리나라에서 가장 단명(斷命)한 것으로 잡지(雜誌)를 첫손 꼽는다.
지금도 753종의 각종 잡지(이 중 426종이 월간지)가 여기저기서 발간되고 있지만 조금만 기억을 거슬러봐도 창간호가 바로 폐간호가 된 것들이 수두룩 하다.
지난 70여년 동안 한국 가톨릭 안에도 많은 잡지가 성쇠를 거듭하여 부침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경향잡지」 「가톨릭 연구」 「가톨릭 조선」 「가톨릭 청년」 「가톨릭 소년」 「창조」등.
이 가운데 정기간행물로 오늘날 교회안은 물론 한국에서 가장 장수(長壽)를 누리고 있는 것은 1906년에 창간된 「경향잡지」다. 지난 66년 동안 교회 기관지로서 그야말로 「준 성서」의 지위를 누리며 절대적인 권위 아래 막강한 영향력을 구사해온 「경향잡지」의 역사는 바로 한국 가톨릭의 근대사이기도 하다.
구한말 일본을 비롯한 열강의 집요한 개국(開國)요구에 나라안에 자못 어지러운 반면 신문화에 대한 인식이 높아갈 즈음인 1906년 10월19일, 한국 가톨릭은 출판 특히 교회출판물의 불모지였던 이 땅에 교회 경영신문의 효시(효矢)요 당시 3대 신문중의 하나인 주간 「경향신문」을 창간했다.
이와함께 부록으로 「보감」이라는 회보를 발간 「경향신문」과 함께 교우들에게 배부했는데 이 「보감」이 오늘날 「경향잡지」의 전신인 것이다.
「보감」은 국판 8페이지밖에 안되는 보잘것없는 회보였으나 신학문에 대한 무지를 조금이나마 깨우쳐보겠다는 의도아래 법률해석 생활상식 등을 싣고 국내외 교회소식 호교문제 특히 순교사를 빠짐없이 실었다.
「보감」 제1호 권두에 실린 「요긴한 지식이라」는 제하의 창간사는 그때 이 잡지의 계몽적 성격을 잘 나타낸다.
『(전략(前略))이 세상에도 강한 나라도 있고 약한 나라도 있어 약한 나라는 매양 노복이 되고 차차 없어지는지라 강하고 약한 인민의 분별을 말할진대 참개화를 한 나라는 강하고 개화를 취하지 못한 나라는 약하니 그 개화를 이루는 것은 지식이다』
그러나 「보감」은 「경향신문」이 한일합방 되던 해 12월 일제(日帝)에 의해 폐간되자 4년만에 같은 운명을 겪게 되었다.
1908년 「경향신문」 발행부수는 4천2백부였다.
그러자 교회는 「경향신문」과 「보감」을 대신할 새잡지를 구상 제호를 「경향잡지」로 바꾸어 1911년 1월부터 24면으로 늘려 격주(월2회)로 발간하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경향잡지」는 「보감」의 내용과 「경향신문」의 체제를 섞어 탄생한 두 간행물의 아들인 셈이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잡지로 출발한 「경향잡지」는 몇차례의 수난을 제외하곤 오늘에 이르기까지 최장수의 월계관을 쓴 채 유일한 교회 대중지로서 지난 7월로 통군 1264호를 기록하고 있다. 창간 이후 이 잡지에 대한 신자들의 신뢰는 거의 절대에 가까웠다.
「경향잡지」와 비슷한 성격의「가톨릭 연구」가 1934년 평양교구에서 발간된 일이 있지만 이 잡지는 몇 년 못가 폐간되고 오직 「경향잡지」만이 가톨릭 조직을 타고 벽지공소까지 전달되었던 것이다. 아무리 촌공소일지라도 「경향잡지」한권만은 거의 의무적으로 읽어온 때문에 지금도 신자들은 다른 간행물은 몰라도 「경향잡지」만은 읽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할 정도로 그 권위가 대단하다. 마치 신공책을 대하듯 성호를 긋고 잡지를 펼쳤다는 일화는 이 잡지의 권위가 어떠했음을 잘 말해준다. (최고 발행부수 4만) 이러한 권위는 교회가 발행하는 가장 오래고 유일한 잡지라는 배경에도 크게 힘입고 있지만 창간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관해온 편집이 거둔 결과로 볼수 있다.
초기(1911~1930)의 편집내용을 보면 교리와 신학에 입각한 「논설」 「성인론」 「순교사기」 등이 큰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교회소식도 성사(聖事)와 성직자 위주의 것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기관지였음으로 교회 당국의 모든 공지사항(그것도 극히 제한된 부분이었지만)을 알기 위해서도 읽지 않을수 없었다.
순탄한 발간을 계속해오던 「경향잡지」도 대동아전쟁 발발 이후 일제의 통제로 격주발간에서 월간으로, 24페이지의 지면을 12면으로 줄여야했고(1914) 통제와 종이사정이 악화되면서 1944년에는 격월간으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해야만 했다.
그러다 1945년 5월15일호(8페이지)를 끝으로 폐간당하고 말았다. 이것이 첫번째 수난이었다.
두번째는 6ㆍ25동란으로 인한 부득이한 휴간으로 50년 7월부터 53년 6월까지 만 3년간 발간치 못했다. 「경향잡지」의 공헌은 그것이 교회 기관지로서 신앙교리에 입각한 신자들의 교도와 호교의 1차적인 것 외에 우리말을 고수하여 한글 보급의 선도적 역할을 해온 점을 들수 있다.
「보감」시대 이후 일관해서 한글만을 사용, 한글을 통한 지식보급에 가늠할수 없는 공헌을 하는 한편 한국 가톨릭을 정신적으로 하나로 묶는데 있어 매스ㆍ콤으로서 역활을 훌륭히 해왔다.
1956년 5ㆍ15정, 부통령 선거때는 14면을 할애하여 자유당 치하에서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위세가 당당하던 이기붕과 맞선 장면 박사를 지지하는 기사를 실어 신자들을 한곳으로 몰고 가는데 선도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지금도 한국 가톨릭의 근대사를 알아보려면 「경향잡지」를 한번쯤은 들추어봐야 한다.
그러나 오랜 연륜이 주는 권위와 안정감 뒤에는 타성이 붙게 마련.
「경향잡지」의 환갑을 축하하면서 한 평신도의 『60년 역사 밑천의 이자만 가지고도 먹고 살만한 위치에』있는 이 산문화재에 「스태미너」를 보강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금도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들을수 있다. 비단 「경향잡지」에 대한 요구만은 아니지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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