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하는 교회』라고 했을 때 봉사를 의무로 하며 생활하는 교회의 양상을 말할 수도 있으나 또 한편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와 목적이 바로 봉사라는 뜻도 될 것이다. 즉 교회란 봉사하기 위해서 모인「하느님의 백성」이라는 뜻이 된다.
한국의 근대를 역사적인 입장에서 볼 때 경제 개발의 시대, 중공업화의 시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은 고층 건물이 밀립하고 경부 간에는 고속도로가 뻗고 곳곳에는 공장 굴뚝이 치솟아 새로운 풍경을 이루는 등 우리는 조국의 급속한 경제 발전을 보고 있다. 그뿐 아니라 개인 생활이나 가정생활에 있어서도 많은 변화와 발전을 가져 옴으로써 모든 것이 편리해져만 간다.
이런 물질적인 발전에 비해 정신세계는 어떤가? 정신세계를 조금이라도 간파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말한다.『경제 발전은 이루어지고 물질은 풍부해졌으나 정신은 빈약해져 가고 있다』라고. 정신 빈곤의 결과는 바로 부정부패를 비롯한 우리 사회에서 빚어지는 온갖 惡이다. 우리 기억 속에 아직도 생생한 와우아파트 붕괴, 정녀인 살해 사건 등은 그 중에도 표본적인 사건들일 것이다.
그러면 정신이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아무도 이 질문에 만족한 대답을 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신이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하며 정신이 결핍되면 인간은 한갖 육신만 가진 동물에 불과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정신의 가치로써 평가되는 것이다. 이렇게도 중요한 정신이 우리 사회에 결여돼 있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시급한 문제는 정신문제가 아니겠는가.
인간생활에 있어 근간이 되는 봉사정신을 진작하고 실천하는 데 일익이 되고자 본보는 앞으로 몇 개월 간「봉사정신」에 관하여 본란을 제공하고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기로 한다.
그러면 먼저 봉사란 무엇이며 인간은 봉사하기 위해서 태어났고 인간이 수행하는 직책과 직장은 봉사이고 종교도 봉사를 주요소로 삼아야 한다는 뜻에서 앞으로 봉사에 대해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나누어 살피기로 하겠다.
①봉사란 무언인가? ②인생은 봉사 ③직업은 봉사 ④종교는 봉사 ⑤맺는 말
봉사란 무엇?
봉사는 남의 뜻을 받들고 남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남이 없으면 봉사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남을 위해서 생각하고 남에게 관심을 갖고 남이 원하는 것을 해 주고 남의 앞날을 위해 도와 주며 남의 인격을 존중해 주는 것이 봉사이다. 그래서 봉사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와는 상반된다. 남을 위한 행동과 노력이 봉사이기 때문에 봉사는 또 사랑의 표현 그 자체이다. 인간의 사랑은 입으로나 마음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봉사로써 해야 하는 것이다. 봉사로써 구체화되지 않는 사랑은 참된 사랑이 될 수 없고 또 사랑이 결여된 봉사는 품팔이처럼 상품화될 우려가 많은 것이다.
봉사는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에 자발적이며 조건이 없고 항구적이다. 그래서 봉사는 남에게 요구할 수 없다. 내가 너에게 봉사했으니 이젠 네가 나에게 봉사하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또 봉사는 끝까지 성의를 다하는 데 그 정가가 있다. 어느 정도까지 봉사하고 이젠 이만큼 했으니 봉사 받아야겠다고 생각한다면 그때부터 봉사한 가치는 물거품처럼 단번에 스러지고 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내가 10년 동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했는데 이제는 봉사 받아야겠다』고 했다면 이 사람의 봉사는 아무런 가치 없는 장사꾼의 속셈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봉사는 조건이 없고 자발적이어야 하며 끝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봉사만 하고 살 수는 없다.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나의 모든 시간을 제공한다면 나는 생활의 위협을 면치 못하며 먹고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기 때문에 봉사는 일방적이어서는 안 된다. 봉사는 언제든지 상호관계를 이룬다. 서로가 다 남을 위한 봉사를 한다면 생의 위협을 받을 리가 없지만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법과 질서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법만 갖고서 사회 질서와 정의를 구현한다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법 자체가 봉사정신에 의해 실행되어야 올바른 사회 평화와 질서가 유지되는 것이다.
법이 아무리 좋아도 준법자들이 이기주의적으로만 사용한다면 사회악은 근절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남을 위하는 정신으로 법을 실행해야 법은 참으로 제 구실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봉사는 상호관계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노동자와 고용주간의 관계를 살핌으로써 알 수 있다.
먼저 노동자는 자기의 노동을 봉사로써 바쳐야 할 것이다. 자기의 기술과 재능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참으로 좋은 물품을 생산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감독이나 파면이 무서워서 마지못해 노동하거나 억지로 시간이나 채우는 것은 벌써 봉사정신에 어긋날 뿐 아니라 자신의 인격을 스스로 비하하는 결과밖에 안 된다.
이에 따라 고용주는 노동자를 인격적으로 대해 주어야 한다. 노동력만 착취해서 자기 이익만을 위한다는 것은 봉사정신에 위배된다. 노동자에게 적절한 임금 즉 자기와 가족이 생활할 수 있는 임금과 또 장래를 위한 배려가 포함돼야 한다. 노동자를 위한 봉사정신이 고용주에게 있어야 하며 그래야 올바른 경영과 인사 관리가 수행될 것이다.
봉사가 남을 위한 것이라면 인간은 남을 위해서 태어났고 인생은 바로 봉사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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