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이면 생생한 빛깔로 마음에 젖어들곤 하는 한편의 추억, 그것은 25ㆍ6년 전-정신을 못 가눌 정도로 달리는 현 세대에 비쳐 볼 때는 참으로 옛 이야기 같은 것이다.
별들과 파도 소리, 눈물의 수박, 영세 첫 고해 그리고 이별, 다시 만남, 이런 것들이다.
7월 중순 그때 나는 친구와「시찌리가하마」라는 곳에 있는 요양원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그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언니 격(동갑이었지만)이었고 그는 완고한 하버지 몰래 영세 준비를 하는 女醫 인턴생이었다. 휴가를 이용해서 실습을 한다는 구실로 아버지를 설복시켜 성데레사 요양원에 와 있었다.
교리 공부의 마지막 매듭을 짓는 피정의 고요한 시간과 영혼의 힘을 최대한으로 획득해 보려는 욕심에서였다.
그는 영세의 허락을 얻기 위해 아버지와 큰 용기로 대결을 해야 할 최후의 장애 앞에 속으로 무척 떨고 있었으니까.
하늘에는 고요히 속삭이는 별들, 그별들의 다정한 얘기를 정다웁게 경청하며 화답하는 은근한 파도 소리 이 자연의 신비롭고 엄숙한 대화 안에 파묻혀 우리는 바다를 향해 자연스레 자리잡은 언덕에서 밤 깊는 줄 모르고 앉아 있곤 했다. 방에 들어가도 파도 소리는 우리를 따랐다. 그리고 우리 마을 기슭까지 젖어와 자장가처럼 꿈세계로 우리를 밀어 주곤 했다.
마침내 허락을 받으려고 아버지를 찾아 집으로 가는 날, 나는 병환 중에 계시다는 아버님을 위해 수박을 사 준다고 따라 나섰다. 그러나 그날은 잘 되는 일이란 없었다. 나는 발병으로 구두를 못 신고 샌들로 다리를 약간 절며 나선 길인데 샌들 끈이 끊어져 애를 먹고 수박을 찾아 다니다 지갑까지 잃어 7월의 염천에 몸과 마음이 지쳐 버려 끝내는 단념하고 빈 손으로 가게 되었다. 나는 우울한 나머지『오늘의 어려움을 기쁘게 주님께 바치자』고 한마디 했을 뿐이었는데 그는 나에게 눈물을 반짝이며 말했다.『어려움이 이렇게 기쁘게 받아들여지는 이 교회는 참으로 기묘하고 훌륭하다』고.
아버지의 허락을 얻은 그는 눈물의 수박이 아버지의 마음에 기적을 일으킨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발이 중천에 뜬 것 같은 기분으로 이틀이 지난 7월 25일에 프란치스꼬 수도원에 가서 깊은 감격 중에 성세를 받았다.
그 후 그는 얼마나 조심스럽게 생활하는지 딴 사람 같은 인상을 주었다.
그 후로부터 7일후 다시 프란치스꼬회로 가서 첫 고백을 했을 때 그의 얼굴에는 평화가 물결쳐 넘치는 듯했다.
그리고 가슴 메이는 듯 속삭이는 말은『가톨릭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은 몰랐다』고. 그리고 우리가 평소에 어려워하던 이별을 참아 견딜 용기가 생겼노라고 덧붙이는 것이었다.
그의 영세를 앞두고 있었던 가지가지 일을 생각할 때는 오늘날까지도 감격스럽고 감사했던 그때의 내 마음을 생생하게 해 준다. 나는 이렇게도 한없이 좋기만 한 주님에 대한 신뢰가 결코 변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고 또 나의 일생을 통해서 마음이 메말라 주님께의 신뢰가 엷어질 때는 언제나 이때의 감격을 새로이 하며 내 마음을 불타게 하자고 다짐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의 추억이 조금도 흐려지지 않고 새로와져서 감사의 정을 가득하게 한다.
그로부터 23년 후 7월 하순 나는 그를 다시 만났다. 이제는「요꼬스까」항구가 발 밑에 내려다 뵈는 언덕에 자리잡은 성요셉병원 원장수녀로서의 모습이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옥상에 올라가, 멀리 퍼지는 항구의 번득이는 불들을 바라보며 지난 오랫동안의 얘기로 한없는 회포에 젖었다. 지난날 별들과 바다의 신비스런 대화에 잠겨 영세를 앞두고 예수님의 얘기에 열중하던 두 소녀는 이제 나이 먹은 수녀의 눈으로 앞날을 바라보며 도회와 수도회 안에서의 우리들의 갈 길을 진지한 대화로 모색하는 것이었다. 시종일관 우리 두 마음은 주께 대한 사랑과 감사로 가득 넘쳤다. 그 오랫동안의 파란 굴곡 중에서 우리를 당신 성심 안에 보존해 주신 그분의 자애하심을 오직 침묵의 찬미로만 그릴 수가 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보고 맛들여라 복되도다. 그 님께 몸을 숨기는 사람이여(시 34ㆍ9)』
이 노래가 우리 두 마음에 꼭 같이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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