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봉사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봉사는 인간생활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철학자들은 말하기를 모든 인간은 행복을 추구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 행복을 찾아 주는 것은 무엇이든지 인생의 목적이 되는 것이다. 인간이 행복감을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는 때는 보람 있는 일을 했을 때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보람 있는 일, 가치 있는 일은 인간의 속성이 최선으로 이용되었을 때일 것이다. 책장은 책을 꽂아 놓았을 때 가장 보람 있게 사용되는 것이고 신장이 된다면 평가체하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속성 중 사회면이 있다. 즉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혼자서 살지 않고 반드시 남과 함께 살아야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세회면을 무시하고 혼자서 혼자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인간은 자기 속성을 무시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본능 중에 자연적으로 남을 위하는 에너지가 잠재한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은 봉사했을 때 어떤 보람을 느끼고 생활의 진미를 맛 볼 수 있는 것이다. 남에게 봉사하고 또 이 봉사가 남을 기쁘게 해 주었을 때 느끼는 즐거움 이것은 참으로 값진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봉사하지 않는 인간 봉사할 줄 모르는 인간은 완전한 인간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흔히 봉사를 습관적으로 거절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철저한 타산가, 절대로 손해 볼 줄 모르는 사람 소위 최고로 똑똑한 척하는 인간들은 인간으로 보이지 않고 비인간적인 기계로 보이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다. 그런데 사회란 개개인이 집합해서 이루어진 것이기는 하나 보존함으로써만이 아닌 상호간에 유대를 이루어 공동체를 형성해야 한다. 사회는 개개인이 모여「우리」라고 할 때 성립된다. 그런데 육신은「우리」라고 주장할 수 있는 힘을 가지지 못하고 오직 정신만이「우리」를 부르짖을 수 있다. 동물은 우리 가족, 우리 민족, 우리나라라는 의식을 갖지 못하나 인간은 이러한 공동체 의식을 가질 수 있다. 그러기에 사회를 구성하려면 정신의 유대가 필요하며 남을 위하는 봉사정신이 필요하다.
그래서 봉사는 인간정신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정신이라 할 수 있으며 정신은 봉사하기 위해 있고 또 봉사로써 양육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써 봉사정신이 결핍되고 순전히 자기 중심으로만 생활하는 사람은 건전한 정신의 소유자가 못 된다.
인간은 본능으로 봉사하게 돼 있는데 이 본능을 활용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비정상적인 정신상태를 가지게 된다. 그래서 그 누가 말하기를『봉사 없는 사회에는 정신병원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인간은 또 자기 자신이 자기의 최후 목적이 될 수 없다. 죽음을 면치 못할 나를 위해서 내 일생을 바친다는 것은 무의미하지 않는가. 인간은 하느님을 알고 공경하고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께로 귀의해야 한다. 즉 인간은 하느님께 봉사하고 그럼으로써 하느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이것이 인간의 참된 행복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봉사하는 것만이 참된 봉사이다. 그러나 볼 수 없는 하느님에게 우리가 어떻게 봉사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봉사는 남을 위하고 남의 뜻을 채워 주는 것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어떤 때 남의 원을 거절해야 할 때가 있다. 중병으로 고통을 받는 甲이 乙에게 그 고통을 면하기 위해서 죽여 달라고 요청한다고 乙이 甲의 뜻을 채워 주기 위해서 죽일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甲의 뜻을 반대해서 그가 죽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봉사란 하느님을 위해서 해야 하며 하느님께 바치는 봉사만이 참된 봉사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을 위하는 것이 봉사라면 참된 봉사는 하느님을 위하는 그 자체라 하겠다. 곧 하느님을 통해서 남에게 봉사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신앙으로 하느님을 믿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일 무신론자였다면 하느님을 위하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기 때문에 남을 위해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게 될 것이다. 무신론者는 봉사를 주장할 수 없을 것이며 인생을 봉사라고 말하지 않고 따분하다고만 할 것이다. 봉사를 내세우는 유신론자는 낙관적이나 그렇지 못한 무신론자는 비관하고 만다.
우리는 하느님께 봉사함으로써 남에게도 올바로 봉사할 수 있고 또 따라서 봉사는 정신활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봉사는 어떤 외부 행동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관심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봉사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마음으로하는 봉사만이 진실성이 있고 효과적이다.
속담에『남의 일을 봐 주려면 3년상까지 보아 주라』는 말이 있듯 봉사는 마지막까지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인간은 봉사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으며 이 봉사는 직업을 통해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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