從軍神父(종군신부)의 하소연
발행일1960-01-03 [제210호, 2면]
예수께서 『너희는 보천하에 가서 만민을 가르치고 세를 주라』고 당신 제자들에게 분부하셨읍니다.
전교(傳敎)의 방법은 보다 더 효과적이고 보다 더 현실(現實)적이라야 그 소기의 목적을 최대로 달성하게 될 것은 재언(再言)을 요하지 않읍니다.
오늘날 인간의 영성(靈性)을 부인하는 유물(唯物) 공산주의와 인간의 존엄성을 절규(絶叫)하여 기본권리와 책임을 그리스도교적 민주(民主) 정신에서 발휘하려는 민주주의와의 대결(對決)에 있어 가톨릭시즘이 강력(强力)한 원수로 공산주의자들에게 적대시(敵對視) 될 뿐 아니라 북한(北韓)을 비롯한 쏘련 위성국가(위星國家)들에서 박해를 받는 것은 바로 인간의 영성과 존엄성에 대한 타렵할 수 없는 교리(敎理)에 기인(起因)한 것입니다.
8.15의 해방이 제국(帝國)주의 식민정책에서 민족자결(民族自決)의 결과를 초래하였으나 사상(思想)의 이대조류의 혼란을 채 소화(消化) 시키기도 전에 6.25의 동란으로 또다시 가정과 사회에 처참한 파괴와 무질서를 빚어내었던 것입니다.
휴전(休戰) 후 급속도의 복구와 재건은 민주우방(友邦)의 다대(多大)한 원조에 힘입은바 크거니와 불질적인 면에서만이 아니라 한편 종교적 면에 있어서도 장족의 발전을 한 사릴은 신앙의 자유를 구가할 수 있는 시기일뿐 아니라 우리나라가 자유세계와 호흡을 같이하고 향상(向上) 발전하려고 노력하고 있게 때문인 것입니다.
회고하건데 지금으로부터 백5·6십년 전에 이땅에 전교하려 입국한 신부들은 처참한 백해중에 상복(喪服)을 입고 남몰래 죽음을 무릅스고 비밀히 천주의 복음(福音)의 씨를 뿌렸으나 신앙의 자유룰 누리는 오늘날에는 「헬멭」을 쓰고 찌차를 몰아 부대(部隊)내에서도 신자를 모아 설교와 각종 성사를 거행하게 된 이 놀라운 현실에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겠읍니까
1년간의 한국의 발전상이 외국의 몇십년의 발전상을 능가함을 볼 때 이에따라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이 한반도(韓半島)에 전파할 것이며 수많은 우리의 순교선열(先烈)들은 좋은 조건아래있는 오늘날의 우리들을 나려다 보시며 그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책(責)하고 계실 것이며, 최대의 효과적인 수단과 방법으로써 전교하기를 바라실 것입니다.
우리 국군(國軍)에 군종(軍宗)부가 마련됨으로서 종군신부(從軍神父) 제도가 생겨난 것이 동양(東洋)에서는 최초로 된 사실이며 한국교회사(韓國敎會史) 상에도 획기적인 일입니다.
전란(戰亂) 중에는 많은 신부들이 종군함으로서 다대한 전교의 성과를 군대내에서 거두었지만 휴전(休戰)함에 따라 극소수(極小數)의 적은수가 아직도 군대내에 남아 전교에 종사하고 있지만 육군(陸軍)만 하드래도 1대 100이 훨씬 넘는 「프로테스탄트」목사(牧師)들과 같이 7.8년 포교하며 생활을 하고 있읍니다.
병역법(兵役法)이 정식 통과시행(施行)됨에따라 한국청년들은 누구나 군복부(服務)를 치러야 합니다. 현재 한국교회의 교세(敎勢)가 1년간에 몇만의 신자의 증가를 보나, 그 반면 청장년(靑長年)과 그들의 종교교육을 고려해 볼 때 열심한 신자도 신앙행활이 고된 군대에서 몇해동안이나 신부도 없이, 그대로 젊은신자 장병(壯兵)들에게 견전(堅全)한 신앙생활을 바란다는 것은 기적(奇跡)을 바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국가의 장래를 생각하고 교회의 장래를 생각할 때 어찌 이런 상래로서 젊은 신자들을 군문에 보내고 그 가족들이나 본당신부님들이 마음이 아프지 않겠읍니까.
이러한 딱한 사정을 신자군인장병들은 나에게만 하드라도 무려 수백통의 하소연과 또는 원망의 말을 해오고 있는데 이는 당연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어린때에 열심히 듣고 배운것이 나이가 차서는 회의(懷疑)와 태만으로 변해가는 것이라면 확고한 신앙이 없이 군대라는 특수사회에서 신앙을 표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또 다른 종파(宗派)의 교도들과 미신자와, 계급(階級)의 사회라는 점 등을 생각할 때, 죄악에의 유혹이 많고 종교면에 있어서는 비교경쟁(比較競爭)이 심할뿐 아니라 목사들도 독점(獨占)되다싶이된 현실정을 볼 때 종군신부의 한사람으로서는 교우 장병들이 원망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고 단언할 수 있읍니다.
『포교전선』(布敎戰線)이라는 말을 흔히 듯게되는데 전선이란 싸우는 곳을 말하는 것이며, 천주께로 이끄는 싸움이란 종군신부들에게 있어서는 문자 그대로 최전선(最戰線)이요 백설의 고지(白雪高地)가 바로 이 군포교(軍布敎) 전선일 것입니다. 달리말하자면 환경과 주위와 침식(寢食)과 언행(言行)이 박해시대의 전교신부들과 흡사한 것이며 더욱이 목사들과 기거(起居)를 같이 함에 있어서랴.
한국 각 본당과 공소(公所) 모든 가정의 젊은 자제(子弟)들은 다 한번은 이 군문을 거치게 된다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해보아 주십시오.
어떻게하면 최소로서 최대의 효과를 얻을가? 교우 여러분이나 본당신부님과 회장님들은 이와같은 일을 하며 이와같은 형편 중에 있는 종군신부들의 전교사업을 도와서 성과를 거둘 수 있는가? 하는 것을 한번 생각해봐 주십시요.
이 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방법이 많을 것입니다.
그 한 례로서는 대구 계산동(桂山洞)본당 아래있는 몇몇 인사들과 어떤 그룹에서는 자기들이 자발적으로 의연금을 계속적으로 거출하여 그 돈으로 가톨릭 출판물을 몇천부씩 사서 여러해 동안 꾸준하게 종군신부들에게 기증(寄贈)해 주고 있읍니다.
미국에서는 『종군신부 후원회』가 조직되어 적극적인 원조를 몇십년동안 계속 하고 있읍니다.
다행하게도 각 교구장(各 敎區長)께서 금년 주교회의에서 1월 3일(1월 첫주일)을 『종군신부 사업후원회의 주일』로 정하여 각 본당신부님들의 설교(說敎)말씀과 교우들의 정성어린 헌금(獻金)으로서 제1차의 거국적(擧國的)인 후원운동을 이르키게 되었읍니다.
이제까지 여러종류의 교회단체나 신심회들을 통하여 많은 좋은 일들이 시행되어 왔지만 종군신부를 돕는다는 색다른 활동은 없었던 것으로서 그 사명의 중대성에 비추어 오히려 시기가 늦은감이 있지만, 반드시 또, 효과적으로 이행(履行)되어야 할 신심활동의 하나라 하겠읍니다.
금년도의 구체적인 사업은 장래에 군의 자도자를 양성하는 육군사관학교(陸軍士官學校)에 성당을 세우자는 것입니다.
전국 40여만의 교우들이 자진하여 헌금(獻金)하여 남부럽지 않은 성당을 건립하여야만 한국교우들의 체면이 설 것입니다. 대외(對外)적인 사업이요, 한국 천주교회사(史)에 있어서도 획기적인 사업 하나가 더 생기는 것이라 하겠읍니다.
전국의 교우여러분과 회장님들 그리고 본당신부님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으시기를 비는바입니다. 또, 많은 기구(祈求)가 이 사업을 오나수에로 이끌어 갈 것이니, 예수님께서 명하신 전교는 이 사업으로서 더욱 원만히 이루워 갈 것이 아니겠읍니가.
군인(軍人)은 전투를 해야하고 전투에는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군인은 행동으로서 승리를 획득해야 할 것입니다.
최전선 백설(白雪) 고지에선 경비의 보초(步哨)를 생각하면서…
육군본부 군종실에서 안 베드루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