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에서는 죽었다고 하고 한쪽에서는 살았다고 우기는 주동숙을 예중위는 실성한 사람처럼 찾아 다녔다. 서울 시내의 동적보를 모조리 들추어보는 강행군도 감행했다. 그는 주동숙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밤에 잠을 잘수도 없었고 음식을 먹을수도 없었다.
갑자기 터진 전쟁으로 서울 길이 막혀버린 그가 대구에서 수원까지 올라갔다가도 강을 단념하고 대전으로 남하했다가 대구에서 학도병으로 입대하던 경로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때 어떻게든지 서울로 숨어들어와 약혼자를 보호하지 못한 책임을 그는 결코 전쟁에다 돌리지를 않았던 것이다.
그는 마침내 각혈하고 말았다. 쿨룰쿨룩 기침을 할 때마다 선지같은 피가 쏟아져 나왔는데 그것을 원고지로 닦아가면서 동적보 조사를 계속했다. 자기가 아니었다면 그는 이미 그때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유 박사의 지론이다.
『우선 사람부터 살려놓고 보자 해서 내가 강권발 등으로 그를 마산요양소에다 강제 수용해 버렸지요. 그러니 어찌겠소. 도리 없이 한 2년 요양소 생활을 했지요. 요양소에서 나온 예형은 이제는 주양을 죽은 사람이라고 체념하고 있었어요. 하긴 그럴 수밖에요 그가 사람을 찾는 방법에는 그야말로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이란 모조리 동원했으니까요. 심인광고비만 해도 몇 년 동안 엄청나게 탕진했을 겁니다. 서울로 올라온 예형은 서서히 자신을 되찾기 시작했을 거 아닙니까. 그 무렵 H신문과 인연을 갖게 되었고 신문사에서 한날 미미한 존재이던 외신기자가 일약 외신부장이 되더니 잇달아 논설위원이 되는 등 눈부셨지요. 그러자 해외특파원으로 위촉되어 그의 르뽀기사를 우리가 서로 다퉈가며 읽기도 했지요. 예관수의 이름은 식자 간에서 상당한 중량을 가지고 크로즈업되기 시작했소. 그 무렵인가 봅니다. 난데없이 죽은 줄만 알았던 주 여사가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어느날 마감시간에 맞춰 분주하게 원고를 쓰고 있는데 아래층 수부에서 전화가 왔다.
『예 선생님 손님 오셨습니다.』
『지금 일손을 놓을 수가 없다고 한 시간쯤 후에 연락 바란다고 일러주시오』
『그렇게 말씀드렸지만 시골에서 일부러 오셨다면서 한마디만 하시면 된답니다.』
『그래요? 그럼 전활 바꿔주쇼』
예관수에게는 아무런 예감도 없었다.
시골에서 누가 왔다면 요양소 시절의 지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피득 떠올랐을 뿐이다. 그런데 전선을 타고 오는 여인의 목소리는 그의 온몸의 피를 일순 멈추게 하고도 남았다.
『무척 오랫만이에요. 저 아시겠어요?』
이것이 무덤에서 울려오는 목소리가 아니라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그리고 주동숙의 실종 후 이미 10여년이 지나있었지만 어찌 그가 그녀의 목소리를 잊을 것인가?
『아니? 꼼짝 말고 그 자리에 있어요!』
그는 미친 듯이 펜대를 집어던지고 층계를 뛰어 내려갔다.
그리고 입구 수부곁에 오두마니 서있는 중년여인이 이미 남의 부인임을 한눈에 알아차리는 몸가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사람출입이 빈번한 입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작정 그녀에게 달려가 끌어안았다.
『동숙이, 동숙이, 그대가 살아있었다니…』
그는 몇번이고 몇번이고 그녀를 멀찍이 바라보다간 다시 끌어안곤 하였다.
동숙의 눈에서는 빗발치듯 눈물이 쏟아져 나와 야윈 두 뺨을 적셨다. 그 자리에 있던 누구라도 그들이 오래 헤어져있던 내외간이라고 믿었지, 그가 남의 아내가 된 약혼자를 그토록 반기는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 순간 예관수는 그녀가 남의 무엇이든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거지요.
다만 죽은 줄로만 알던 약혼자가 살아서 눈앞에 있으니 그저 무의식적으로 그랬을 밖에요. 중인환시리에 그는 약혼자를 끌어안았던 거지요. 그리고 마감시간이고 뭐고 대충 정리해 놓고 약혼자를 근처의 어느 식당으로 이끌어가지 않았겠소. 미사씨도 아시는 진 모르지만 10여 년 전 H신문 언저리에는 열빈누라는 중국집이 한 집 있었을 뿐이에요. 마음이 급한 예형은 우선 주 여사를 열빈누로 데려가 가장 조용한 방에 좌정했지요. 그것이 이를테면 화근의 실마리가 된 셈이오. 사실은 모두 계획적인 장난이었지만…. 그 조용한 방에서 예관수는 비로소 약혼자가 결혼을 했고 딸까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하지만 그때는 이미 그녀와 따로 떨어져 산다는 데는 익숙해 있었다고나 할까. 별로 낙담이 되지도 않더라는군. 다만 누이동생처럼이라도 좋으니 그녀가 살고 있다는 사실만이 대견해서 못배기겠더라나. 그런데 난데없이 문이 열리고 사진이 찍히우고 주동숙의 남편이라는 한 사나이가 눈앞을 가로막드래요』
『사태진이었군요!』
『그는 아내를 이용해서 예관수를 끌어내어 사진을 찍어가지고는 유부녀 유혹이라는 어마어마한 죄목을 씌우며 협박하기 시작했지』
『아니 그런 유치한 협박에 넘어가다니요』
미사는 소리쳤다.
『넘어간 게 아니지. 주동숙을 위해서 넘어간 척 했던 거예요. 주 여사는 혀를 깨물고 죽을 자유마저도 없는 몸이었거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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