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미소로써가 아니라 진리로써 온 거지』
『쓸데없는 소리 말게! 자네가 나보다 더 꾀가 많다는 것뿐이다.』
『천만에. 난 꾀가 많은 것이 아니야. 그만큼 성실하고 그네들 편인 까닭이지.』
『우리 일에 참견하지 말게! 자넨 우리 본당신부들 편이야. 본당신부는 부자들 편이고. 그러니까 우습다는 거지.』
『그럼 결국 나는 거짓 신부고 거짓 노동자란 말인가?』
『그렇지』
『자넨 오늘 아침 우리 공장 주인이 한 말과 똑같은 얘길 하는군』피에르는 나가려고 일어섰다.
『피에르, 내가 한마디 해두겠는데 우리 편이 아닌 자는 모두 우리 적이야』
『그래? 우리는 바로 그 반대로 생각하는데.
우리에게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우리 편이라고』
그는 어두운 마음으로 방을 나왔다. 유일한 희망은 앙리도 자기와 마찬가지로 가슴 아파하길…. 루이가 뽈렛트와 손짓을 하며 얘기하는 것이 보인다.
『잘 있었소 쁠렛트. 무슨 일이 있었소?』
『있구말구』루이의 대답이다.
『그 더러운 집주인 녀석이 뽈렛트네 빨래통을 뺏아갔네. 그것이 문 앞에 있어 귀찮다나… 글쎄 그게 말이라고 해? 그럼 어디에 놓아야 하나? 어린 샹딸의 요 위에 놓으란 말인가? 더러워서 원…』
『그것 때문에 지나다니는 데 지장이 있다는 거예요』
『별 거지 같은 소리! 밤에 고양이가 나다니는 데 지장이 있을까…』
『쟉꼬는 어디 갔소?』
『지금 집주인과 얘기하고 있어요』
『내가 가보겠소』
그들은 선술집 뒷방에 있었다. 서로 상대방을 때려 눕힐 기세로 어느 쪽이 이길지 예견하기 어렵다. 집주인은 평소 영양 섭취가 좋은 신체에 옷을 많이 입고 있다. 마치 곰과 늑대의 싸움판이다. 피에르는 두 사람을 꾸짖으며 쟉꼬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집주인에게 빨래통을 돌려 주도록 타일렀다. 집주인은 쟉꼬가 먼저 시비를 걸었다고 하며
『이제부터 쟉꼬 이름만 들어도 가만두지 않겠다』고 펄펄 뛰었다.
『이젠 그 녀석들이 다 지긋지긋하단 말이야.』
집주인은 증오에 불타며 그 거리에 사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열거했다. -그 더러운 공상당 새끼 앙리 그 거지 같은 뽈렛트년 깡패 같은 쟉꼬 늙어빠진 무정부주의자 루이『그놈은 수녀들을 끌어내고 신부를 죽였다던데』… 그 얘기를 하며 집주인은 피에르의 안색을 살폈다.
『그 따위 소리 해도 놀라지 않소. 사람이 사람을 죽였다는 것이 나쁜 거지 그것이 신부라고 문제가 더 큰 것은 아니오』
집주인은 실망해서 더욱 욕설을 계속했다.
『그 아랍놈은 잊으셨군요?』
피에르가 조용히 한마디 던졌다.
『그 사람을 싫어하시는 모양이군. 그래도 당신네 집엔 항상 북아프리카인이 우글우글하던데요?』
『그 사람들은 모두 우리 친구요. 그러나 그놈은 인종지 말이오』
『좀 지나치게 심하시군요』
『그렇소 내 생각엔 그놈이 좀 지나치게 심한 것 같소. 다만 그놈은 경찰과 친할 뿐이요』
집주인은 얼굴이 홍당무우 같이 시뻘개졌다. 숨을 씩닥거리며
『무슨 뜻이요?』
『그저 사실을 말할 뿐이요. 사실을 말한다는 건 아주 단순한 거요』
『어느 면으로는 그렇지』
『그렇다면…그렇다면 작꼬와 그 밖의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사실을 말해야 할 것 아니오? 왜 그네들을 싫어하시오?』
『그것들은 더러운 자식들이니까』
『그런 말은 통하지 않소』
『마르셀은 술에 취했다고 매일 밤 애를 때리고…! 드니즈(주인은 자기 딸이 듣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얘야 저리 가 놀아라』
피에르는 이 부잣집 외딸, 부모가 먹이고 입히는 데만 정성을 다하는 이 파리한 계집애가 돌아서 나가는 것을 보았다. 주인도 딸이 나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더니 이윽고 되돌아섰다. 그 두 눈에 잠시나마 애정의 빛이 스쳐가는 것을 피에르는 느꼈다.
『그놈들도 말이오』 뚱뚱보 주인이 다시 계속한다.
『당신도 그 사람들을 미워하고. 마치 어린애들 싸움 같군요. 누가 먼저 시작했나를 따지고 있으니… 그럼 누구든지 먼저 화해를 걸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으면 다 망치는 거지요.』
『망치다니? 내게 무슨 상관이 있소?』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당신 따님을 보십시오. 다른 애들과 놀지도 못합니다.』
『잘 됐지. 함께 놀아선 뭘 해!』
『그래서 드니즈가 무척 행복하겠습니다?』
『행복하게 해 주고 싶어서 온 정성을 다하고 있지 않소.』
『많이 먹이고 비싼 옷을 입히고「바이올린」을 가르치고… 이게 애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겠군요!』
『무슨 참견이오?』
『애들은 다른 애들과 놀 수 있고 또 주위의 사람들이 따뜻하게 대해 준다고 느낄 때 행복해질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당신네 집은 그 점에 있어선 영 점이오』
『좀 개량을 해야지…』
주인은 풀이 죽어 목소리가 낮아진다.
『셋방마다 목욕실도 만들어 줄 생각을 하고 있소.』
『아마 당신이라면 그 더러운 셋방에선 하룻밤도 못 잘 거요』
『여보시오, 난 노동자가 아니오』
일순간 피에르는 전신의 피가 모두 치솟는 것을 느꼈다. 이 자의 귓뺨을 후려갈겨야 할까… 그리스도라면… 아니 그리스도라면 때리지 않으셨을 거다. 피에르는 애써 미소지었다.
『노동자가 아니라니 그게 무슨 뜻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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