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다. 어린이들은 매일매일의 규칙적인 생활에서 해방되자 마음껏 놀고 싶고 마음껏 먹고 싶고 마음 내키는 대로 어디든지 가고 싶다. 그런데 좁은 집안에서 어디로 나갈 수도 없고 떠돌 수도 장난도 칠 수 없다면 방학은 어린이들에게 오히려 새장에 갇힌 새만큼이나 답답한 생활이 안 될까. 후암동본당 몇몇 어린에에게 ①방학 동안 부모들께 부탁하고 싶은 것 ②본당에 부탁하고 싶은 것 ③방학 동안의 계획을 물어 보았다.
◆우리들 부탁
늦잠자고·가족여행도
주일학교는 지겹기만, 켐핑갔으면
▲<최임선>
①올해는 할아버지께서 편찮으시니 놀러 다닐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내 생각은 엄마와 같이 시내에 있는 수영장이라도 같이 가서 즐겼으면 좋겠다. ②본당에 대한 부탁도 있지만 주일학교에 먼저 바라고 싶은 것은 주일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주일학교 선생님께 막 덤벼들고 겁이 없고 규율이 없으니 웬일인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나는 선생님께 이런 아이들을 위해 협력을 바란다. ③나는 1학기 성적이 뒤떨어졌다. 그래서 아침 6시에 일어나고 또 저녁 선선할 때 공부를 해야겠다. 그렇다고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오락도 좀 해야겠다.
▲<이선호>
방학 동안에 몸이 건강해지도록 잘 먹고 또 부모들과 같이 놀러 갔으면 좋겠다. ②주일학교를 너무 지루하게 오래 하지 말고 빨리 끝냈으면 좋겠다. (배가 고파서) ③학교 다닐 때 공부하노라 약해진 몸을 방학 동안 신나게 놀아 몸이 튼튼해지고 싶다.
▲<김기영>
①방학 동안엔 늦잠도 자게 하고 낮잠도 많이 자게 놔두는 게 좋아요. 그리고 방학 동안엔 어디 좀 멀리 보내 주었으면 좋겠어요.
②방학엔 미사에 좀 안 갔으면 좋겠어요.
③그날 하루하루의 생활을 미루지 않고 과제도 하루하루 하며 좀 쉬었으면 좋겠어요.
▲<박유정>
①엄마가 공부 좀 안 시키고 놀게 해 주시고 그리고 사탕 사 먹을 돈도 좀 많이 주었으면.
②이번엔 미사리도 가고 수원도 가고 교리 공부 좀 하지 말고 재미있게 놀아요. 선생님 꼭 부탁해요.
③선생님과 수원도 가고 많이 놀고 과자 과일도 많이 먹고 늦잠도 많이 잘래요. 야단치지 마세요.
▲<민금기>
①어머니께서 나를 새싹회에 꼭 보내 주셨으면 좋겠다.
②주일학교에서도 교실을 정해 놓고 또 책상과 의자도 준비해 놓고 교리 공부를 철저히 했으면 좋겠다. 또 모두 캠프도 가고 마음껏 놀았으면 좋겠다.
③성당에서 하는 섬머스쿨도 하고 새싹회에 나가서 여러 가지를 배우고 아침 저녁으로 학과를 공부하겠다. 어머니, 언니 동생과 만리포에도 놀러 가겠다.
◆어머니의 부탁 <김 나타시아-주부>
무질서한 버릇 길러서야
독서에 취미 붙이고 어른들 수고도 돕고
방학이 되자 오늘 아침부터 벌써 석이는 늦잠이구나. 영희는 조금 전에 아버지 옷 찾으로 가라고 억지로 깨웠더니 볼이 잔뜩 부어서 투덜거리며 대문 밖으로 나갔다. 준이는 제법 일찍 일어났다 싶더니 세수도 않고 마당 끝에 있는 감나무 아래 평상에 누워서 하품을 하고 있다.
엄마는 수돗가에서 걸레를 빨고 마당을 쓸다가 석이 발 앞에서 몇 번 일어나라고 해도 아무런 기척이 없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먼저 진지를 잡숫고 출근하시면서 큰 소리로 일어나라고 해야 일어날 모양이다.
여름 이른 아침 단잠에서 일어나기란 참으로 힘들다. 더구나 오랫동안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에 가야만 하는 규칙적인 생활에서 이제 완전히 해방됐으니 이젠 정말 마 음놓고 푹 늦잠도 자고 낮엔 실컷 낮잠 자고 마음 내키는 대로 놀고도 싶겠지. 그러나 방학이라고 해서 집에서 밥 때가 되어도 다 같이 밥도 먹지 않고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고 그렇게 무질서해서야 방학은 너희들에게 나쁜 버릇을 길러 주기 위해 있는 것밖엔 안 된다.
그것보다는 일 년 내내 너희들 학교 다니는 뒷바라지 하느라고 추운 겨울이나, 여름이나 새벽부터 일어나서 부엌일에 얽매어 있는 부엌 언니와 어머니를 도와서 평소와 마찬가지로 일어나 저마다 자기 방도 깨끗이 쓸고 닦고 또 마당도 쓸고 아버지 구두도 닦고 영희는 애기도 봐 주고 할 것이다. 아니 방학엔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 집에서 조금만 걸어 나가면 유원지 호숫가로 산보를 가든가 앞산에 올라가 운동을 하고 오는 길엔 식물 채집 같은 것, 또 좋은 정원 돌 같은 것도 주워 오면 얼마나 좋겠니.
아침 이슬이 맺힌 들길을 걸으며 그날 하루의 일을 계획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늦잠을 자고 몸도 마음도 텁텁하고 찌뿌둥한 기분으로 떳떳잖게 따로 밀어놓은 밥상머리에 앉기보다는 일찍 일어난 이런 아침의 기분은 얼마나 상쾌하며 식욕도 날 것인가.
특히 석이는 공부 안 하면 들어앉아 텔레비를 보고 밖에 나오기를 싫어하니 몸이 쇄약해지고 짜증이 날 수밖에. 학교의 학과 공부도 중요하지만 이 방학엔 학과 이외의 독서를 해야겠다. 벌써 중학교 2학년이면 독서에 취미가 생길 때도 됐다. 독서를 누가 시켜서 하기보다는 자기 스스로 주위의 책에 관심을 가지고 읽다가 취미를 들이고 나중엔 책을 손에서 뗄래야 뗄 수 없을 만큼 책을 좋아하는 학생 시절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처음엔 무조건 많은 책을 읽은 끝에 나중엔 차츰 재 나름으로 책 읽는 방법이나 또 책을 가려서 읽고 자기 나름으로 정리가 될 것 같다.
그리고 이 독서를 통해서 차츰 어떤 사물에 대해서 생각을 갖게 된다. 즉 사람은 왜 살며 또 어떻게 살아야 하며 왜 착해야 하며 거짓말을 말아야 하며 이런 생각하는 사람이…. 너희들 열심히 공부하고 주일마다 성당에 가고 그런 것이 다 생각 없이 단지 부모들이 하라고 해서, 남들이 하니까 습관적으로 해서야 이건 얼마나 뜻 없고 개성도 없는 행동이겠느냐?
8월 중순엔 아버지가 휴가를 얻으시면 우리 식구 모두가 한 닷새 피서를 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땐 너희들 마음대로 바다로 가든지 산으로 가든지 갈 작정이다.
내 생각엔 너무 사람이 많이 모여드는 이름난 해수욕장보다는 조용한 어촌에 가서 시골 토방 하나를 얻어 우리 식구끼리 밥 해 먹고 고깃배도 타보고 어촌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 모습 같은 것도 알아보고 너희들에게 많은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었으면 싶다. 해변가에서 너희들 형제들은 그곳 아이들과 같이 조개도 줍고 해수욕도 하고 그땐 마음껏 뛰놀 수 있을 것 같은데 너희들 생각은 어떨까? 미리 꿈을 꾸다가 실망하지 않도록 엄마 아빠는 힘을 다해 그날을 마련하려 한다.
무엇보다 이번엔 몸이 건강하고 어디 가나 무슨 일에나 떳떳한 말씨 태도 행동을 하는 소년 소녀가 되어야겠다. 그리고 생각할 줄 아는 아이들이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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