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6월 17일 교황 바오로 6세는 수요일 일반 알현에서『하느님을 공경하는 종교적 의무는 봉사해야 할 의무로 전환되고…성직은 자신을 희생하여 남의 유익과 사랑을 위해 바치는 봉사이다』라고 하셨다.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남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지만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가톨릭교에서는 신앙생활을 하는 데 봉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봉사하지 않는 가톨릭 신자는 사이비 신자일 것이고 가톨릭 신자는 봉사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혼히 가톨릭교에 입교한 동기를 살펴보면 천당 가기 위해서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고 하는 말을 듣지만 사실은 봉사를 더 잘, 더 철저하게 더 충실하게 하기 위해서 가톨릭 신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성부를 가르쳐 주신 예수 그리스도는 직접 말씀하시기를『나는 봉사 받으러 오지 아니하고 봉사하러 왔노라』(마테오 20ㆍ28) 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그리스도는 인류에게 봉사하셨고 또 최후성찬 때 사도들의 발을 씻긴 것은 봉사의 모범적 행동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제자들을 교훈하시기를『이 세상 통치자들은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고관들은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중에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에게 봉사하는 사람이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봉사자)이 되어야 한다』(마테오 20ㆍ25~27) 하셨고 또『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다고 하자. 그 종이 들에서 돌아왔을 때에「어서 식탁에 앉으라」하고 종에게 말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도리어 그에게「너는 내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시중 들고 너는 나중에 먹도록 하라」고 말하지 않겠느냐? 명령한 대로 종이 행했다고 해서 주인이 종에게 고마워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을 받은 대로 다 행한 후에「우리는 무익한 종들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하라』고 가르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따르고자 하는 우리에게 철저한 봉사정신을 요구하였고 또 그는 인류를 위한 봉사를 끝까지 행하셨기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이다. 크리스찬의 봉사는 죽음을 통해서까지 해야 할 봉사인 것이다.
사랑의 봉사로서 바친 십자가상의 죽음은 바로 제사이고 우리 종교생활의 원천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십자가상 제사의 재현인 미사도 봉사로서 이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거양성체 후 사제는『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생각하여 생명의 빵과 구원의 잔을 드리오며 우리로 하여금 주의 어전에 합당한 봉사를 드리게 하신 은혜를 감사하나이다』하며 기도드린다. 일상생활 중에서 행한 모든 봉사는 미사 중에 종합되어 하느님께 제물로 바쳐져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하는 크리스찬은 봉사로써 이 세상을 구원하는 하느님의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
구약성경에 하느님의 백성을 위해 특별히 선택된 모이세나 다빗은「하느님의 종 (봉사자)」이라는 호칭을 받았던 것이다. (출애급기 14장 31 성경 78장 70) 이 하느님의 봉사자들은 당신의 구원 계획을 완수하기 위해 선택된 협조자들이었다. 그래서 장차 인류를 구속하러 오실 구세주 역시「하느님의 종」이라는 호칭을 받게 되었다. 이사이아서 49장부터 55장까지는「하느님의 종」에 대한 말씀으로 가득하다. 이 종은 봉사하고 고통을 당하심으로써 인류를 구원하신다. 그래서 봉사는 반드시 희생의 고통이 수반되고 또 고통으로 행하는 봉사는 구원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봉사는 하느님과 인간을 일치케 하고 인간과 인간을 일치케 하는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구약에서 예언한 고통의 봉사를 그리스도는 십자가상에서 실현하셨다. 우리는 물론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주신 구원의 은혜에 대해 감사드리고 이 은혜를 얻어 입어야겠지만 우리 역시 고통의 봉사를 통해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참여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봉사는 종교인에게 있어서 특히 가톨릭 교인에게 있어선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는 임의의 것이 아니라 필수적인 것이다. 봉사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고 본다.
이와 같이 중요한 봉사가 자연적으로 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봉사는 어릴 때부터 익혀져야 한다. 그래서 청소년 교육에 있어서 봉사하는 습성을 불어넣도록 교육자들은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재산을 남겨 주기보다 철저한 봉사정신을 유산으로 남겨 주는 것이 자녀들의 행복과 복지사회 건설에 더 크게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종교생활을 더 성실히 해야 할 것이고 자녀들에게 종교심을 길러 주는 것이 급선무가 아니겠는가 생각한다.
『남이 네게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을 너도 남에게 해 주라』(루까 6ㆍ31)『남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루까 10ㆍ27) 이 교훈들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남겨 주신 생명의 말씀들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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