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몰라 물으시오? 당신네들은 품팔이해서 하루 먹고 살 만큼씩 번단 말이오. 장래를 준비할 필요도 없고…내일을 모르고 살지 않소』
『그렇소. 우리는 내일을 모르고 삽니다. 그러나 당신은 또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이라는 걸 모르고 있소』
『당신네들은 많이 벌지 못하지만 그만큼 위험성도 없단 말이오…』
『닥치시오… 그만 입 닥쳐요』피에르는 여전히 입가에 미소는 잃지 않았으나 단호하게 명령했다.
『내가 왜… 잠깐만!』
텅 빈 홀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주인은 천천히 걸어간다. 정중하게 수화기를 드는 것이 보였다.
『여보세요… 네 접니다. 누구요? 셋방살이 연맹이라고요? 그래서요? 네 그렇습니다. 그건 내게도 관계가 있습니다. 와서 장부를 보면 알 겁니다. 아무라도… 여보세요! 물론이지요… 아니오… 그건 대단치 않은 일입니다. 여보세요.
난 모든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물론이지요!…모두 인정해 줄 겁니다.… (그는 피에르와 눈이 마주쳤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전해 주십시오
화가 난 주인은 수화기를 내려놓고 피에르 쪽으로 얼굴을 들렸다.
피에르는 문간으로 걸어나갔다. 주인은 갑자기 유리컵 찻숟가락 등을 부산하게 설거지통에 집어넣고 씻기 시작했다.
『난 귀찮은 시비를 하기 싫으니 빨래통을 갖다 주시오. 오른쪽 창고 구석에 있으니…』
주인은 쳐다보지도 않고 소리쳤다.
피에르가 나오자 주인은 맥주컵을 하나 들어 타일 바닥에 내동댕이를 쳤다.
그리고 또 하나를…
창고는 가난한 사람의 이삿짐 같이 음산해 보였다. 십 년 묵은 먼지와 썩어빠진 물건을. 조그만 드니즈가 빨래통 위에 올라앉아 훌쩍훌쩍 울고 있는 것이 보였다.
『왜 우니? 아, 참 왜 울고 계시오? 』
『나두…알고 있었는데…』
훌쩍거리며 그 애가 대답한다.
『무엇을 알고 있었소?』
『여기 있다는 걸. 그런데 일러 주지 못했어요…』
귀걸이를 하고 머리에 커다란 리본을 단 여자애는 가난한 오막살이에 잊어버리고 간 크리스마스 케이크 같았다. 피에르는 가슴이 저려오는 아픔을 느꼈다.
『드니즈, 나하고 함께 들고 가자!』빨래통과 드니즈, 피에르 셋이서 길을 건너가는 광경은 이 거리에 새로운 경이를 불러일으켰다. 모든 얼굴이 유리창에 붙더니 다음에는 문간에 나와 섰다.
모두 말없이 드니즈를 바라보고 있었다. 볼렛트만이
『아이구 찾았구나』
할 뿐이었다. 그 한마디가<고맙다>는 말 이상의 것을 표현하고 있었다. 피에르는 어떤 소녀의 손을 잡고「공원」문을 열었다.
『에띠엔느, 드니즈와 함께 놀지 않겠니?』푸른 눈이『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하고 묻는다. 『정말 그래 줘』미소가 대답했다.
『그럼 드니즈 이리 와. 난 지금 루이의 고양이를 길들이는 길이다. 셈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어』
빵을 사러 막다른 골목길을 나오던 피에르는 앙리를 만났다. 잠바 깃을 세우고 헝클어진 머리에 손에는 우유를 들고 있다.
『자네가 집주인에게 빨래통을 돌려 주게 했다면서?』
『아니 그저 얘길 했을 뿐이야. 그리고 나서 주인이 돌려 주더군. 그런데 그 사이에 셋방살이 연맹에서 전화가 왔지. 』
『내가 다른 선술집에서 전화한 걸세』
앙리의 입이 약간 벌어졌다.
『그것 보게. 공갈이 설득보다 낫지』
『빨래통을 돌려 주게 하기 위해선 그렇겠지만 인간성을 고치기 위해선 그렇지도 않을 걸.』
『자넨 집주인의 인간성을 고쳤다고 생각하나?』
『자네는 당 세포회의에서 이 세상을 언젠가는 고쳐 놓겠다고 생각하지. 나는 씨를 한 알 뿌렸을 뿐이야. 』
『그 씨앗이 잘 나오겠군. 똥구더기 같은 놈이니 거름이 잘 돼서… 하하…여하튼 이래 봬도 난 멋진 놈이란 말이야. 전화 얘기는 한마디도 안 할 테니까.
그러면 모두 생각하길…』
『아직도 자넨 내가 남이 어떻게 본다는 것 따위에 무관심 하다는 걸 모르겠나? 사실만이 문제야 내게는! 』
『이리 오게 우유도 좀 더 사고 치즈도 한 통 샀으니…함께 가서 먹세. 내가 잘못했어. 자넨 내 친구야.』두 사나이는 팔을 끼고 함께 걸어갔다. 피에르는 빨래통 생각을 하며 미소지었다.
『모든 전쟁이 하잘 것 없는 일에서 생겨나듯이 이 두 사람 사이의 화해도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말해?』
『여보게 피에르, 자네집의 목요일 회합에 내가 간다면 어떤 얼굴을 하겠느나?』
『일찍 오게나. 미사 봉독을 들어야 할 테니』
『아! 이게!』
유쾌하게 웃는 앙리는 하도 웃어서 기침이 나 잠시 걸음을 멈춰야 했다.
쟝이 제일 먼저 오더니 평화를 위한 서명 명단을 내놓으라고 했다.
『이젠 결정했어요?』
장은 중대사를 오랫동안 심사숙고하고 난 것처럼 정성을 들여 서명을 했다.
그리고는 한숨을 훅 내쉬고 담배 한 대 피어물었다.
『이때까진 서명할 수 없었소. 걸리는 일이 있어서. 도무지 보기 싫은 놈이 하나 있었는데 그 놈과 화해하는 데 사흘이 걸렸지요. 이젠 서명할 수 있습니다』
그는 마드레느를 바라본다. 그녀는 미소지었다.
『흡족합니다』
쟝이 말했다.
옆방엔 피에르가 있고 마드레는 여기서 물을 데우고…자기 자신도 온 세상과 화해를 했고…정면 벽에는 하얀 나무로 만든 십자가가 걸려 있고-말없는 친구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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