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메란 아기는 아침, 한낮, 저녁 댕그랑댕그랑 종소리가 세 번씩 울려오는 산골짝 수도원의 앞마을 아이어요.
성모승천 날도 이른 아침 물빛 레이스옷을 입은 아기는 산으로 산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가버린 동무 다시 만날 길 없는 그 친구를 위해 그 숲 그 산 전부를 성모님께 바치고자 성모상을 모시고 올라가는 길입니다.
상아로 만든 쬐끄만「루르드」의 성모상인데 언젠가 주일학교에서 상을 탄 것이어요.
아기의 친구 이름은 뽀삐입니다.
뽀삐는 두 달 동안을 아기와 한 집 한 방에서 살다가 떠나간 다람쥐입니다. 작년 여름방학입니다. 성모승천 첨례를 맞이하면서 주일학교의 마리아 선생님은<하늘로 올라가시는 성모님께 바칠><기도의 꽃다발>을 만들어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봄메에게는 퍼뜩 떠오르는 한 좋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날마다 보내 준다 하면서도 실천하지 못한 다람쥐 뽀삐를 저희 고향 저희 나라로 돌려 주는 것이었습니다. 성모님께 바치는 희생으로 말입니다.
그로부터 두 달 전이었습니다. 어딜 놀러갔다 집으로 오는데 담장 밑에 다람쥐 한 마리가 아장대고 있었습니다.
『어머나 다람쥐!』
그래 집으로 쫓아가면서
『엄마! 엄마! 이것 좀 보셔요 다람쥐 다람쥐에요』
『어디 보자 정말! 정말 아기 다람쥐구나… 아기이니까 네게 붙들렸지』
『엄마 내가 수도원 뒷산에 가서 띄워 줄까요?』
『글쎄? 아니 아니야. 보내 줘도 너무 어려서 족제비 같은 것에 잡아먹힐 거다. 그리고 봄철이니 먹이를 찾아왔는지?』
『그럼 내 방에서 나와 함께 살겠어요』
『그러렴 좀 키워서 보내 주게…』
그날부터 뽀삐는 봄메의 가장 친한 동무였습니다. 어떻게 친했느냐 하면요 봄메는 아침마다 저녁마다 다람쥐의 등어리에 있는 새까만 다섯 개의 줄을 살살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그럴 때면 다람쥐는 네 발을 쫘악 뻗히고 두 눈을 꼭 감고는 온 몸을 봄메에게 온통 맡기고는 마구 어리광을 부리질 않겠어요? 한참 그러다간 훌쩍 무릎 밑으로 뛰어 내려와서는 봄메의 손가락 열 개를 자기 입안에, 한 개씩을 번갈아가며 자근자근 깨물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절대로 아프지 않게 말이지요.
뽀삐가 왔던 첫날 잘못해서 꼬리를 밟았더니 그만 꽉 깨물어 새빨간 피가 퐁퐁 솟아나게 하던 뽀삐이지만 그리고 그 다음날 해가 몇 발이나 떠올랐는데도 제 집인 바구니에서 나오지 않았는데 봄메가
『다람쥐야 배가 고프지? 빨리 나와라! 아이구 참 네가 날 깨물었다고 내가 앙심을 품은 줄 아니? 내가 너를 갈불 줄 알고… 걱정하지 말고 어서 나와 밤 먹어!』
그런 일이 있은 후부터 뽀삐는 봄메만은 절대로 깨물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디엘 가도 같이 붙어 다녔습니다. 수도원에 성체조배를 갈 때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여자 수도원 수녀님들은 살짝 웃으시면서 봄메도 뽀삐도 다 같이 사랑스럽게 보아 주셨는데 언젠가 웬일인지 여자 수도원의 문이 잠겨 있어 산등성이 저 너머 남자 수도원의 성당에 가서 기도할 때 때마침 기도를 하기 위해 성당으로 들어오던 지원수사 몇 사람이 그만『와하하』하고 웃음을 참지 못해 달아나는 바람에 그 다음부터 봄메는 뽀삐를 성당에만 데리고 가지 않았을 뿐 시내 어디든지 데리고 갔습니다. 목에 황금빛 쇠줄을 살짝 매어서 말이지요.
그러면 버스 안의 사람들은 빙그레 웃으면서 바라보아 주든가 뽀삐의 등어리를 살살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남에게 발이 밟혀 아무리 아파 죽겠는 사람들도 말이지요.
그리고 또 뽀삐는 되게 눈치가 빨랐습니다.
밤잠을 자지 않고 싸다니는 게 쥐새끼들이라지만 뽀삐만은 절대로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고 있나 들여다보면 그 긴 꼬리를 돌돌 말아 그안에 폭 얼굴을 파묻고는 두 눈을 말끔히 뜬 채 무얼 생각하는지 그저 가만히 있기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침에도 나오라고 하기 전에는 바구니 밖으로 고개를 살며시 내밀고 그 쬐끄마한 두 눈을 깜빡거릴 뿐 절대로 나와 성가시게 굴지 않았습니다. 뽀삐는 또 어쩌면 식성(음식 먹는 성격)까지 아기를 닮았는지요. 제일 잘 먹는 건 날마다 먹고 있는 우유였습니다. 아예 우유 그릇 안에 퐁당 들어가서 먹어대는 것이었어요. 밥, 국수, 김치, 쇠고기, 닭고기, 원기소, 비타민 모두 모두-그러고 보면<도토리 먹는 다람쥐>란 말은 산에 다른 것이 없기 때문에 생긴 이야기인가 봐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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