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承>그런 후 나는 또 무섭도록 큰 하나의 충격과 만났다. 비바람이 사납게 휘뿌리던 날, 내 병실 창문으로 으스럼한 불빛이 비치고 있었다. 시체실에서 흘러나오는 빛. 정전으로 칠흑 같은 뒷켠에서 괴이한 기성이 들린다. 온 몸이 순식간에 식은땀으로 젖음을 느끼며 나는 벌떡 일어나 달려갔다. 사방은 너무도 고요하고 다만 비바람 소리만 고막을 때린다. 오싹 무섬증이 치밀어 무의식 중에 누구냐고 비명을 질렀다. 기다린 듯 어느 환자의 앓음 소리가 길게 울린다. 초조하고 왠지 찢어지는 듯한 가슴으로 불현듯 시체실 문을 열었을 때 나는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아무렇게나 던져진 6구의 시체를 물수건으로 닦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구슬 같은 땀을 흘리며 혼자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수녀였다. 50평생 처음이기도 하려니와 그렇듯 사나이로서도 벅찬 일을 침착히 해내고 있는 수녀님을 보자 그야말로 오장육부가 찌를 녹는 듯한 급격한 충격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두 눈엔 조그만치의 공포도 번뇌도 없었다. 다소 커다란 눈 속엔 자애와 일하는 자의 정열 같은 것이 가득히 고여 있을 뿐이었다. 나는 부지 중에 부르짖고 있었다.『수녀님, 나를, 나를 도와 주십시오, 인도해 주십시오』그러나 말은 오직 목젖에만 딱 걸려 있을 뿐, 다만 그녀 앞에 푹 엎드려 매달리고 싶은 충동이 치밀고 있을 뿐이었다….
가냘픈 여인을 그토록 강인하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후에 생각해 본 뒤, 신앙의 강력함을 비로소 절감할 수 있었다고 할까. 그 후부터 나는 이전의 압악감을 극복하고 교리나 성경 공부에 몰두해 보려 굳게 작정했다. 내 비록 허무하게 늙어 버렸지만, 가톨릭을 연구하고 익히겠다는 마음엔 추호의 동요가 없게 된 것이다. 이것은 오직 의지와 정력의 문제요 노력의 문제라 생각될 뿐이다. 괴롭고 약해질수록 아름답고 성스럽던 추억들을 되살리며 온 힘을 모아 나아가고 나아갈 일만 남아 있는 것이다.
참으로 나의 귀의는 그 누가 시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내부에서 부단히 내려치는 재촉의 채찍 소리에 밀려 사명처럼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행려환자의 신세지만 이제부터는 내가 살아온 인생에 스스로 만족할 만한 이론적 토대를 가톨리시즘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될 뿐이다. 그럴 때 비로소 삶에 대한 새로운 애착과 보람을 느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밝은 빛은 위인에게만 비칠 것이고 즐거움은 마음이 곱은 사람에게 한층 더한 흐뭇함을 주지 않겠는가.
주님의 은총과 빛이 흠뻑 내리고 언제까지라도 알렐루야의 환성이 나의 마음 속에서부터 하늘 높이까지 메아리치는 때가 머잖아 오리라 믿으면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 속에서 의미로운 여생을 보내도록 열심히 열심히 기도하련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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