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김 신부는 제주교구 상서국장 겸 신성여고 교장 발령이 내려 곧 제주시로 영전하게 되었으므로 그곳을 떠나기 전에 기어이 그 무덤을 찾으려고 매일 증빙서류에 적힌 모슬봉 동쪽 아랫편 들을 헤매다가 한때 오토바이에 발까지 상하면서 그 노인과 함께 무덤을 찾기에 노력한 결과 결국에는 동쪽이 아닌 북쪽 아래 편한 굴발을 찾게되었다. 제주 방언에 묘지를 밭이라 하고 둘레를 돌로 쌓아 남자는 돌담 왼편에 구멍을 내고 여자는 오른편에 구멍을 내는 관습이 있으므로 여러무덤중 돌담 왼편 구멍을 찾다가 결국 정씨 부인 무덤을 대강 찾기는 했으나 신부의 생각에는 백수십년이나 된 무덤이 봉분한지도 오래지 않고 환경정리 같은 것도 너무나 말쑥했기 때문에 반신반의하면서 그 무덤 간수자란 현직 남제주 군수 형제에게 그 진위를 타진하였던바 그 형(현직 모학교장 )의 말이 자기 선대부터 그러한 무덤을 간수해오는 사실은 있으나 자기 아우 군수가 직접 그 무덤 간수자란 것을 알려주게 되었다.
이리하여 김신부는 군수를 통하여 그 무덤을 (위에 처음 발견한 무덤) 바로 찾게 되고 봉분의 새로움과 환경정리의 말쑥함도 군수의 치밀한 처사였음을 알게 되었다.
김서연(瑞연) 군수는 즉시 필자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와 함께 가첩 초본까지 자세히 적어 보내왔다. 편지에는 『전략…회장님께서 김요한 신부님에게 문의하신 정씨 부인 묘에 대하여 소생 문중에 유사한 사실이 있습니다. 조상님들은 그 묘소(한굴발)를 一세기 동안이나 간수하였고 현재도 소생 형제가 성묘 보호하고 있습니다 부친 생존시에 이 묘에 대하여 소생이 문의한 바『우리 김해 김씨 세보에는 없으나 유배된 귀부인이시며 우리의 척이니 성묘를 잘하고 대대로 보호하라』는 구전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하였고 세로 사본에는 김상집 (尙集1808년생= 1878년졸) 그 맏아들 시백(時伯) 둘째아들 시원(時元) 시백의 아들 형제 영수(永秀) 영호(永好) 시원의 아들 형제 영학(永鶴) 영관(永寬) -영학의 아들 형제 경창(景昌) 두창(斗昌) -경창의 아들 형제 동연(棟燕) 서연(瑞燕=군수본인)이라 하였다. 이상 그 세보에 나타나있는 영수 영호 영학 영관 이름이 김상집씨가 고문헌에 남겨놓은 그대로 였었다. 그 이상 더 알 필요 없이 정씨 부인의 무덤은 확인하게 되었고 김상집씨와 정씨 부인과의 관계는이 다음(?) 사료 사실란에 말하겠다.
이러한 경위로서 정씨 부인의 묘소를 찾게되므로 필자는 직접 제주도로 가서 그 묘소를 참배하고 거기에 관련돼있는 사료적 혹은 유물같은 것을 발굴함과 동시에 추자도로 가서 경헌의 묘소와 그 후손들과 또 들은바에 의한 그 후손 가문에 보존되어 오는 고문헌 혹은 유물같은 것을 알아보려고 지난 6월 10일 성신강림 주일에 제주도로 비행하였다.
평소에 보고 싶었던 제주 남국의 정서가 담뿍 담기고 신화적 전설로 꾸며진 별유 세계 호남사(湖南史)를 쓸 때 느꼈던. 제주도 복음 전파의 경위와 1901년에 있었던 피비린내 나는 천주교인 학살사건 역대 거물급들의 유배지이던 고도(孤島) ! 여러가지 착잡한 심경으로 제주도에 발을 들어놓게 되었다. 그 이튿날 상서국장 김 신부의 주선으로 현 대주교님의 자가용 승용차로 제주 한바퀴를 돌며서 정씨 부인 묘소를 감개무량한 눈물로써 참배하고 그 무덤을 알뜰히 간수해온 김씨 문중에게 감사를 드리면서 남제주 군수 김서연씨를 찾아 사례하고 이튿날 오후에 추자도로 항해하였다.
유명한 황사영님의 외아드님인 경헌이 두살때 귀양가서 살았는지 그만 죽었는지 알길이 없었던 사료의 수수께끼! 천만 다행으로 그 후손 중 한사람을 만나 게되어 비로소 이 오랜 수수께끼를 풀게 된 추자도의 항해는 필자의 사료발굴의 의욕과 갈망을 풀어줄수 있는 길임을 느꼈다.
풍풍거리는 작은 발동선에서 오르내리는 풍낭과 함께 3시간 동안 춤도 추고 딩굴기도 하면서 어둡사리 감도는 고도에 도착하였다. 성창에는 제법 큰 동네가 보이는데 면소재지라고 한다.
제주 중앙본당 보좌신부님의 소개장을 가지고 황씨부인 누시아( ) 씨를 찾아 추자도에 대한 예비지식을 배우고 그분의 알선으로 황씨 직계손인 황이정(利正)군을 만나 경헌의 묘소가 있는 예초리(禮草里)로 가서 경헌의 묘소를 참배하고 같은 선영에 묻힌 그의 자손들의 무덤을 둘러본 뒤에 경헌이 친히 살던 옛집 지금의 5대손 인수(寅壽)군이 살고 있는 유서깊은 고옥(古屋)을 찾았다.
거기서 떠날때 대구 신암동에사는 4대손 황찬수씨에게서 들은 문중 전래의 고문헌을 찾았으나 (제주 정씨 부인한테서 아들 경헌에게 의복을 보내면서 보낸 친필편지)발견 못하고 사료될만한 다른 몇가지만 추려 품에넣고 그곳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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