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인생의도 정에서 하느님께 귀의해야 한다는 생각을 잊어본적 없으면서 그 길에 가로놓인 조그만 장애때문에 『나는 죄인이다』고 괴로워하던 한 성실한 영혼. 폐암이라는 사형선고와 같은 진단에도 초연한 자세로 투병 8개월만인 4일 오후 별세한 대한 상공회의소 의장 박두병(朴斗秉)씨는 그러나 죽음에 앞서 자신의 모든 허물을 벗고 「바오로」란 이름으로 세례받음으로써 자신의 오랜 소망을 이룩한채 하느님의 품에 안겼다.
성실한 인품과 함께 한국의 대표적 기업인으로 알려진 박두병씨의 사망 뉴스와 함께 각 신문에 실린 그의 부고에서 「바오로」란 세례명을 발견한 사람들은 『그가 천주교인이었구나』하는 새로운 사실을 단순하게 받아들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바오로」란 이름을 얻은 것은 박두병씨의 오랜 소망이었다고 그를 아는 주위사람들은 말한다.
박두병씨의 종교적 배경은 10년전 사망한 부친 박승직(朴承稷)씨가 「베드로」란 본명으로 대세를 받았고 모친은 『내가 죽더라도 꼭 영세를 받으라』는 유언을 남길만큼 가톨릭에 관심깊은 집안이었다.
박두병씨도 늘 가톨릭에 입교하겠다는 뜻을 주위사람들에게 말하곤 했는데 그와 오래전부터 접촉해온 노기남 대주교에 의하면 단 한가지 성사관계 문제로 스스로 입교를 주저해 왔다고 한다.
노기남 대주교가 가끔 『큰 문제가 아니니 이젠 영세해야지요』하고 권하면 『저는 죄인이라 괴롭습니다』고 말하면서도 부모의 기일이면 빠지지 않고 연미사를 청하곤 했다고 한다.
1963년 노 대주교가 공의회 참석차 「로마」에 머무르고 있을때였다. 마침 세계일주 여행중 「로마」에 들른 박두병씨는 노 대주교가 「로마」에 체류중이라는 소식을 듣곤 꼭 만나뵙고 싶다는 연락을 해왔다.
그의 요청인즉 「로마」에 가거든 「베드로」대성당에서 부모님의 추도미사를 드리도록 해보라는 누님의 간곡한 청을 받고 왔는데 주교님이 미사를 봉헌할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노 대주교는 그의 성의에 감동, 「베드로」대성당 무덤 제대에서 추도미사를 봉헌했고 박두병씨는 귀국길에 많은 성물을 들고와 친척과 친지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박두병씨의 오랜친구인 김용관씨(63ㆍ미카엘)가 작년 11월 수술후 다시 입교를 권하자 『해야지요』하며 밝은 표정이었는데 이때 마음을 결정하듯 3일 오후 8시에 반경 찾아간 종로본당 백일성 신부가 세례를 주자 고통중에도 백 신부의 두 손을 꼭 잡으며 안도와 만족이 깃든 표정이었다고 한다.
세상에서 부러울것 없는 명성과 재물 그리고 훌륭한 업적을 남긴 그였지만 오랜 바램끝에 맞은 세례의 기쁨은 그 모든 것을 덮고도 남았을 것이라고 그를 아는 사람들은 말한다.
8일 오전 10시 명동대성당에서 김 추기경 노기남 대주교 집전 영결미사에는 2천여 조객이 참석,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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