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실에서는 미사가 나타나자 곧 사장실에 알렸다.
미사보다 먼저 와 기다리던 손님을 제쳐놓고 미사를 우대하는것만 보더라도 사전에 단단히 지시가 있었던 모양이다.
미사는 그러한 모든 특별우대가 자신의 권고사직과 연관이 있는것 같기만 하여 비서실장의 호의도 마음속으로는 그리 달가운 것이 못되었다.
사장실에서 곧 손님 하나가 나오자, 비서실장은 미사에게 들어가십시요 하는 눈짓을 보냈다.
어떤 기막힌 최후통첩에 접하더라도 결코 당황하거나 실망하는 몸짓을 짓지 말자고 생각하면서.
사실 조광관광안에서는 태 사장에 대한 평가가 사뭇 높은편이다. 인간미에 넘친 기업주 혹은 이상적인 기업정신을 지향하려는 기업주로서 과대평가하는 경향마저 없지 않았으나 미사는 특별히 그 인간미 넘치는 기업주로도 이상적인 기업정신을 펴보려는 기업주로도 생각한적은 없다.
『한미사씨의 건강에 대해서 회사로서는 큰책임을 느끼고 있소』
미사를 자리에 앉히면서 태 사장은 운을 떼기 시작했다.
<완곡한 우회작전이로군>
미사는 속으로 생각하면서 왜 갑자기 자신의 건강문제가 태 사장 입에 오르 내리게 되었는지 알수가 없었다.
성미가 급한편인 미사는 완곡한 화술을 즐기지 않으며 더구나 마음속에 이중삼중의 복선을 깔아놓고 이리저리 우회하는 화술을 싫어한다.
『그동안 우리가 미스 한을 너무 혹사한 것만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일이오』
『혹사당했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특근을 원한건 오히려 저의 개인사정 때문에…』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소. 허지만 나로서는 각오를 안할수가 없소』
『결국 저에게 사직하라는 말씀이시군요』
미사는 결론부터 내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 좀 성급한 느낌은 없지 않았으나 태 사장이 말하고자 하는 요점을 미리 짐작한대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태 사장은 잠시 자기 귀를 의심한다는 듯이 미사를 정면으로 쳐다 보았다.
『논리의 비약이 심한 사람이로군. 어째서 지금 사직 운운의 말이 나오는지 알수가 없소』
태 사장은 약간 시무룩해지는 어조로 미사의 경솔함을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
『사실은 미스 한의 X레이에서 흠집을 발견했어요』
『네?』
이번에는 미사도 적지 아니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지난번 보사부에서 실시한 신체검사에 응했더구먼』
『네』
미사는 자기자신을 술꾼으로 간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간장에 대한 우려가 없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간장검사를 받으러 일부러 병원으로 찾아갈 정열도 없어서 차일 피일 미루어 오다가 보사부에서 직장인의 신체검사를 실시한다기에 열일 제쳐놓고 검사에 응했다.
우려했던 간 반응은 정상이어서 미사는 한시름 놓이는 기분이었다.
다만 X레이 결과만은 그 자리에서 볼수가 없었지만 미사는 X레이 걱정은 꿈에도 해본적이 없다.
그런 염려가 없었던만큼 지금 미사가 받은 충격은 자못 심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집단 검진이라는 것이 어느정도의 신빙성이 있는 것인지 나로서는 의문이요. 보사부에서 이런 소릴 들으면 덜 좋아하겠지만 말이야…그래 나는 미스 한의 문제를 유 박사에게 상의했지. 유 박사 미스 한도 아시지?』
『네』
『우리 회사 지정 병원의 원장이기도 하지만 마침 그가 결핵전문의라는 점이 안성맞춤이지 뭐겠소. 우선 유 박사한테서 정밀검사를 받아본 다음에 의심할 여지없다는 진단결과가 나오면 거기에 따라서 6개월이고 一년이고간에 치료비를 별도로 포함하는 유급휴가를 드릴 작정입니다』
미사는 잠시 멍멍한 기분이 되었다.
생각지도 않던 결핵환자로 지목을 받았는가 하면 갑자기 6개월, 1년을 가리지않는 유급휴가를 주겠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것이다.
『사실 결핵이라면 전에는 치명적인 선고가 되던때가 없지 않았지만 요즘에 와서는 약이 좋아서요. 의사 지시대로 섭생만 잘하고 규칙적인 치료만 게을리 하지 않으면 거의 완치됩니다.
사실 미스 한의 X레이 결과가 나쁘다는 보고가 총무부에서 올라왔을때 나는 놀랐습니다. 미스 한을 혹사한 죄가 있으니 말이오』
『제 가슴이 그토록 나쁜 것일까요?』
미사는 갑자기 감상(感傷)에 빠지면서 자기 가슴을 좀먹고 있을 결핵균을 상상하고 절망적인 기분에 사로잡혔다.
『유 박사도 X레이를 직접 찍어보지 않는 이상 무어라고 말할수가 없다고 하더군. 다만 아까도 말했듯이 지금은 결핵을 무서워할 시대는 아니니까 그 점은 안심이지만 그렇다고 결코 얕잡아볼 병이 아닌 것만은 사실이요. 아무 걱정 하지말고 좋은 약 먹고 쉬면서 영양보충을 게을리하지만 않으면 백프로 완쾌 가능성이 있어요. 나는 미스 한을 우리 팀에서 제외한 관광사업을 상상할수도 없소. 아무쪼록 조속히 완쾌해주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이 길로 곧장 유 내과로 가서 진단을 받기 바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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