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구상(본사 론설위원) 씨가 지난 3월에 교환교수로 도미,「하와이」대학 동서문화센터에서 한국문학 논의를 하고 있다. 이 글은 당지의 가톨릭교회 동향을 살펴 본사에 보내 준 것으로 앞으로 3회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 주)
내가 먼저 밝혀 두어야 할 것은 언어의 부자유로 고작 이웃 성당에서 주일미사 참예를 하는 외엔 딴 엄두를 못 내는 나에게 입이 되고 귀가되고 길잡이(운전수)까지 되어 주어서 이 글을 쓸 수 있도록 하신 분이 계시다는 것이다.
이 분은 G. F. 케네디라는 메리놀회의 신부로 우리 충청도에서 12년 동안이나 전교를 하시다가 지금은「하와이」대학 부설기관인 동서문화연구소에서 인류학을 연구하고 계시는 분이다.
그런데 이 신부님이 한국어 강좌로 청강하심으로 내가 뵙게 되었고 더욱 그의 한국 성함이「구진호」라 명색 나와 종 씨인 셈이어서 우리는 쉽게 친근한 사이가 된 것이다. 각설하고 어느 주일 두 구 씨는 어울려서 대학 미사엘 나갔다. 그러나 대학에 부속 성당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학교 옆「메소디스트」교회 학생관 지하 홀을 빌려 신부가 오셔서 제의도 안 입고「장백의」와「영대」바람으로 미사를 지내는 것이다.
「에렉트릭ㆍ키타」의 반주로써 시작된 미사는 초입경을 끝마치자 사제는 오늘의 새 손님인 나를 일동에게 소개하였다.
환영의 박수가 쳐졌다. 그리고 나더니 장내는 일제히 서로 인사를 나누기에 부산해진다.
이렇게 한 5분이 지나고 미사는 계속된다. 이날 강론은 이 역시 미 본토 어느 대학에서 여행온 흑인 교수가 초대되었는데 주로『미국의 당면 사회문제인 흑백 인종문제와 학원 분규를 해결하는 방도도 신앙의 힘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었다.
사도신경 후에 있는 봉헌 기도에는 참석자들이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선창을 하였으며「제헌지례」에 들어가서는 성체를 영할 사람이 한 사람씩 나가서 면병을 바쳤고 영성체 때에는 그 면병을 혀로가 아니라 손으로 받아 영하며 성작에 담긴 포도주도 골고루 돌아가며 마셨다.
한마디로 표현해 자연스럽고 다정하고 즐거운 미사였다. 그러나 이 미사를 지내면서도 내가 생각한 것은 예수께서 수난 전날 베푸신 잔치는 이보다도 더 정겹고 소박한 잔치였으리라는 것이다.
그러한 잔치를 통한 예수의『나를 기억하기 위하여 길이 이 예를 행하라』하신 유언이 어찌하여 금관에 금지팡이를 짚고 금잔에다 비채 같은 면병 또 거기다 요술 보자기를 씌운 듯한 성찬을 준비하기에까지 이르렀을까 하는 지난날에 대한 의혹과 또 앞으로는 아마 고대 교회처럼 회당에 갈 때 도시락을 싸듯 성찬을 준비해 가지고 가서 축성해 나누어 먹으며 미사를 지내지 않을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하였다. 또 이렇게 되면 우리한국은 보통 제사를 드리듯 사제를 모셔다 우리 음식을 가지고 미사를 지내고 음복하게 될 것이라고.
그러나 고국의 친지와 독자 여러분! 내가 이런 소리를 한다고『구 아무개가「하와이」엘 가더니「히피」족이 되었나 보다』고 속단은 말아 주시길 바라며 오직 내가 이런 나의 내면적 발상을 정직하게 꺼내 놓는 것은 이러한 인간의 자연적인 향념이 엄폐되고서는「로마」가 이룩하려는 교회 자체의 혁신 노력에도 타 기독교와의 일치운동에도 또 우리 교회의 새로운 미래상에도 우리 한국 교회는 휘장 친 방속이 되겠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도 이런 혁신과 보수, 개방과 폐쇄의 혼란이 특히 현대를 떠메고 사는 젊은 가톨릭인들에게 갖가지 문제의식을 안겨 주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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