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보좌신부와 열렬한 여교우를 본당에서 떠나게 함으로써 결국 본당은 침해하고 있소. 그리고 당신이 말하는 새 교우들로 말하자면 우리 본당 분위기에 맞지 않을까 염려되오』
『저도 그것이 유일한 걱정입니다. 신부님 그것이 가장 중대한 문제입니다』
『누구의 잘못이겠소?』
『신부님이 말씀하시는 그 교회 분위기의 잘못입니다』
피에르는 일어나면서 잘라 말했다.
『그네들을 다정한 형제의 눈초리로 맞아 주지 않는 교우들의 잘못입니다』
『착한 본당 교우와 신부의 잘못이란 말이겠군』
『어린 아이가 친구에게 상처를 입혔을 때는 그 아버지에게 책임이 돌아가지요. 안 그렇습니까?』
『그렇군요』
수녀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책임은 있지요』
『내가 여기서 내 심판사를 만날 줄은 미처 몰랐군』
늙은 본당신부는 입맛 쓴 듯 내뱉았다. 피에르는 두 주먹으로 테이블을 짚고 서서 본당신부를 바라보았다.
『미안합니다. 그러나 신부님이 여기 오신 것은 절 문책하러 온 것 아닙니까? 심판을 하다니요. 천만에! 난 그네들에게서 결코 남을 심판하지는 않을 것을 배웠습니다.』
『그네들이라니?』
『노동자들이지요』
『그 사람들이 당신을 가르쳐요? (피에르는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세상이 뒤집혔군』
『기독교는 세상이 뒤집히는 겁니다. 이긴 자가 지는 것이구… 우는 자는 진복이요… 부자는 불행할 것이요!…』
『세상이 뒤집히는 것은 좋아도 무질서는 안 되오! 보좌신부들이 떠나게 내버려 두고 본당일이 파멸돼 가는 것을 보고있는 것이 내 의무라고는 할 수 없을 거요. 차차 신앙을 잃어가는 이 세상에서 내 명예를 걸고 이 본당을 이십칠 년 전 인계 받던 그대로 다음에 올 사람에게 넘겨 주려는 거요』
『이십칠 년 전 이래로 본당은 많이 변했습니다. 신부님』
『어떻게 변했단 말이요?』
『제가 알기에도 인구도 두 배로 늘어나고 공장도 세 배로 늘었습니다. 어린애 사망률도 그만큼 늘었고 범죄도 그만큼 늘었습니다…』
『아, 그 얘기요. 그야 이 거리는 변했겠지만 본당은 변하지 않았소. 얼마나 큰 승리요?』
『오막살이 한가운데 세워지는 저 새 집의 승리 말씀이오? 생존자와 승리자를 혼동하시면 안 됩니다. 신부님』
『글쎄 본당을 또 하나 세워야 할지도 모르지만…』
『뭣하러요? 본당 교회가 일요일마다 그렇게 가득 찹니까? 마리아회의 스물두 명밖에는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말씀입니까. 수녀님?』
『추기경님이 하신 것처럼 해야지요. 교구일을 돕기 위해 노동사제 단체를 만드는 겁니다』
『그건 한 가지 실험에 불과하오』
『로마에서는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추기경님이나 그 사명에 몸을 바친 자들에게는 그것이 한낱 실험에 불과한 건 아닙니다.
『추기경 추기경 하는데 우리 대주교가 그 일에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걸 무엇으로 증명하오?』
피에르는 앉아서 조용히 대답했다.
『지난 목요일 저녁 그 분께서 몸소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비밀리에.』
고운 손이 갑자기 화석이 된 듯 얼굴에서도 핏기가 가셨다.
『각하께서 우리 본당엔 한 번도 오시지 않으셨는데』
본당 신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피에르는 이 뚱뚱한 늙은 신부가 측은해졌다.
『신부님…』
갑자기 문이 열렸다. 본당신부와 수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문간에 낯선 사람이 웃는 얼굴로 서 있다.
『조금 전부터 문을 두드렸는데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는군.』
삐갈 신부다.
『안녕하시오 신부님. 이 집은 노크하지 않고 그저 들어옵니다.』
『고맙소. 안녕하십니까. 수녀님, 안녕하십니까 신부님.』
『본당신부님이십니다. 그리고 여긴…』
피에르는 삐갈 신부라는 별명밖에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바르데라고 합니다.』
『!』수녀는 본당신부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저분이 삐갈 신부군요.』
그는 돌아서 나가더니 지저분하게 화장한 여자의 손목을 끌고 들어왔다. 그녀의 몸은 얼굴보다 두 배나 더 늙어 보였다. 그 손에는 낡은 트렁크가 매달려 있었다.
『스잔느를 데리고 왔는데… 마드레느는 없소?』
『곧 올 겁니다』
『아! 난 또… 스잔느를 옆방에서 쉬게 할 수 있겠소? 참 옆방이 있긴 하오?』
『있습니다. 이리 오시오. 스잔느』
어색한 듯 여자는 머리를 한 손으로 걷어 올리며 눈을 내려깔았다. 피에르는 그녀를 방으로 안내했다.
『피곤하면 여기 누우시오. 스잔느』
여기는 친구집이니 마음 놓고 쉬라고 그는 말하고 싶었으나 이 친구라는 말이 창녀가에서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몰라서 그만두었다. 삐갈 신부는 여자를 남겨 놓고 방문을 닫았다.
『벌써 여섯 달 전부터 저 여자를 구해 내려고 애써 왔소. 오늘서야 겨우 성공했소. 오늘 아침 그의 간청에 못 이겨 영세를 주고 당신한테 데려왔소. 피에르 신부 우선 저 여자를 그 거리에서 멀리해야 하오. 다음엔 마음 놓을 수 있는 친구들 사이에서 쉬게 하고 차차 일거리를 찾아 주어야겠소』
『일거리는 찾아 줄 수 있습니다. 잠자리도… 그러나 휴식을 취하게 하긴』
『내 생각엔「쇼아지」에 있는 당신네 집이 어떨까 해서…』
『안 됩니다. 그곳은 적당치 않습니다』
피에르는 다급히 가로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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