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어조와 시선으로 미루어 보아 그가 남의 앞에서 그 이유를 말하기 싫어하는 것을 삐갈 신부는 눈치챘다. 본당신부도 무엇을 안 듯 일부러 놀란 눈을 하고 입을 열었다.
『당신이「쇼아지」에서 징발한 성(城)에는 당국의 눈을 피해 다니는 사람들이나 또는…』
피에르는 시뻘개졌다.
『또는 폐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도 있지요. 일요일에는 미사 참예를 꼬박꼬박 하는 공장주에게 한 달에 1만2천 프랑밖에 안 되는 월급이 적다고 요구했다고 쫓겨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밖에 신부님은 상상도 못하는 갖가지 사람들이 있지요. 그 집의 책임자는 옛날에 감옥살이한 사람입니다. 그는 7년 전에 순경을 죽였습니다. 이렇게 가기각색의 사람들이 섞여 있어서 스잔느를 그곳에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회복기에 있는 사람을 좋은 공기를 마시라고 지하철에 보낼 순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느님의 집에도 여러 종류의 사람이 섞여 살고 있을 겁니다』
삐갈 신부는 이 말이 모두 자기에게 한 얘기처럼 조용히 대답했다.
『잘 알겠소. 그러나 혹시 본당신부님이나 수녀님이 우릴 도와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소. 스잔느를…? 』
『안 되겠어요. 당신네들이「쇼아지」의 분위기가 그 여자에게 나쁠까 걱정하신다면 난 우리 처녀들에게 나쁜 물이 들까 염려됩니다』
수녀는 퉁명스럽게 거절했다.
『나쁜 물이 들어요? 』
삐갈 신부는 외쳤다. 성난 그의 얼굴에서는 관자놀이가 무섭게 뛴다.
『누가 나쁜 물을 들인단 말이오? 오늘 아침에 새로 영세 받은 그 여자가? 모든 것을 끊어버리고 자기 생명까지 걸고 나온 그 여자가 말이오? 그렇소. 수녀님, 자기 생명을 걸었소! 그리스도에게 오기 위해서 그는 마리ㆍ막달레나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 여자를 쫓아내는 거요? 조심하시오, 수녀님, 그 여자는 당신보다 먼저 주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오. 이건 그리스도의 말씀이오』
본당신부는 수녀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천주께서 우리를 심판하실 거요. 적어도 그분은 당신이 때묻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죄 말씀이요? 그건 둘째 문제 아닙니까? 친구 신부가 있어 대담해진 피에르가 계속했다.
『전 벌써 몇 달이나 고해성사를 보지 않았습니다. 어떤 때는 이 주위에 일어나는 모든 비참한 상태를 바라보며 나 자신 아무런 힘도 없는 것을 알 때 그래도 잠을 잘 수 있는 나 자신을 벌하기 위해 미사를 드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자격이 없는 거지요…』본당신부는 두 팔을 쳐들고 하늘을 바라보며『성인(聖人) 같은 신부가 어떻게…』『난 성인이라고 부르는 신부는 필요없소』
삐갈 신부가 잘라 말했다.
『그런 말을 어떻게 하시오? 』
『그건 추기경 말씀입니다. 내가 하는 말이 아니오.「보통 남들이 성인 신부라고 부르는 사람은 흔히 독신을 지키는 관리에 지나지 않는 수가 많소. 나는 당신들의 불길이 필요하지 그들의 종부성사가 필요한 게 아니오. 한 영혼을 구하는 것과 기도서를 읽는 것, 두 가지를 다 할 시간이 없을 때는 주저할 필요가 없소…」추기경님이 내 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난 두 눈이 뜨거워졌습니다. 전연 전도되지 않은 거리를 지나실 때 추기경님은 가슴이 아파 숨이 막히신답니다.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이 모든 영혼들을 생각하실 때…본당신부님,「싸니」의 어느 공장 속을 지나갈 때나 그 초라한 셋집에 들어가 볼 때는…』
『난 아직 본당 교우의 4분의 3이 공장에서 일하고 셋방에 살고 있습니다』
피에르는 조용히 말했다.
『미안하지만 난 하루 종일 못을 박으려고 신부가 된다고는 생각지 않소』
본당신부의 퉁명스러운 대답이다.
삐갈 신부는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나는 애들과 축구나 하고 본당 영화실에서「파비오라」성녀 영화나 돌리기 위해 신부가 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는 노동자의 손을 하고 계셨습니다. 피에르 신부의 손 같은, 당신이나 내 손 같지는 않았습니다. 』
『다시 말하지만 천주님이 우리 심판을 내릴 것이오.
하느님은 추기경 위에 계시오.
수녀님, 가십시다. 』
피에르는 그들을 가로막았다.
그는 마음이 무척 아팠다.
『잠깐만, 신부님 다시는 여기 안 오실까 걱정인데 저는 서로 오해를 갖고 싶진 않습니다…본 화제로 다시 돌아옵시다.
르바쐬르 신부는 자유입니다. 마드레느도 자유입니다. 그리고 절대로 영향을 끼치지 않겠다고 약속드립니다.
그러나 저도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매일 밤 대여섯 명의 갈 곳 없는 사람을 재울 집이 필요합니다. 실직자, 또는 감옥에서 나온 사람, 애기 밴 여자도 있고 때로는 온 가족일 때도 있지요. 본당신부관에는 자리가 넓은 줄 아는데 방 하나만 필요할 때 쓸 수 있게 해 주실 수 있으면』
『글쎄 도와 드릴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아랫층은 모두 나와 내 동생이 쓰고 이 층은 보좌신부가 쓰고 있소』
『그 윗층은요? 』
『그건 본당의 고문서를 두는 곳이라 손을 댈 수 없소. 그런데 참 당신네 건너편에 있는 새집이 우리 본당 교우네 것인데 그집 헛간이 비어 있소. 내가 한 번 얘기해 볼까? 』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
피에르는 맥없이 대답했다.
바람이 흰 눈송이를 뿌린다. 문이 다시 닫히고 두 신부는 말없이 서로 쳐다보았다. 피에르는 손등을 이마에 가져가며 털썩 주저앉았다.
『스잔느를 어떻게 한다? 』
삐갈 신부는 목쉰 소리고 물었다.
『나도 모르겠소…나도 모르겠소…』하려는 피에르의 시선이 벽에 걸린 그리스도와 마주쳤다. 그는 조용히 대답했다.
『걱정 마시오. 어떻게 될 겁니다』
삐갈 신부는 방문을 열었다. 스잔느가 손에 트렁크를 들고 서 있었다. 나자로처럼 두 눈을 크게 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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