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한국 천주교회의 대표적인 성지로 꼽히는 양지(경기도 용인군)와 미리내(경기도 안성군 양성면)를 관할 구역 안에 두고 있는 수원교구는 이외도 수난시대의 교우들이 산골로 피해 집단을 이루어 살던 옹기 굽는 교우 마을들이 곳곳에 산재했던 지역이다.
이곳은 또한 선교사들이 입국하던 길목의 하나로 중국의 상해를 출발, 황해를 건너 충청도 내포를 거쳐 서울로 올라가기 전 수원지방에 머무르며 서울의 동정을 살폈고 따라서 몇몇 선교사들은 이 지방에 자리를 잡아 본격적인 활동을 폈던 무대이기도 하다.
1866년 3월 30일 수난축일에 충청도 본령의 바닷가에서 순교한 다불뤼ㆍ안 주교, 오매뜨르ㆍ오 신부, 유앙ㆍ민 신부 등은 수원 문안의 샘골(泉谷) 과 세거리 등지에서 대원군의 박해를 피해 은신 중 포졸들에 끌려 갔다.
교회 사상 쟁쟁한 인물들이 이 지방에서 많이 배출되었는데 한국 최초의 신부인 복자 김안드레아 신부는 지금 경기도 용인군 남곡리에 속하는「은이」라는 마을에서 충청도 내포지방에서 살다 난 피해 부모를 따라 15세까지 살았다.
「미리내」와「양지」는 복지 김 안드레아 신부와 관련된 성지로 양지는 김 신부가 15까지 살았던 곳이며 미리내는 김 신부의 유해가 묻혔던 곳이다. 지금도 해마다 많은 교우들이 이곳을 찾아 선열들의 죽음을 넘어선 신앙의 의지 속에서 자신의 신앙에 활력을 찾고 있다.
수원교구는 이렇듯 자랑스러운 정신적 유산을 신자들의 신앙 속에 심어 주고자 68년 5월 수원시가 내려다보이는 서둔동 언덕 위에 복자성당 건립을 착수했다.
복자성당 건립을 위해 3년 간 교구의 성직자, 평신자도 합심해 거둔 돈 3백만 원과 교구 보조 4백만 원 도합 7백만 원을 들여 이듬해인 69년 12월에 준공을 보았다.
이 성당이 서 있는 곳은 서울의 절두산이나 새남터처럼 순교와 직접 관련은 없고 다만 신앙의 승리를 상징하기 위해 이곳에 세웠을 뿐이다.
서울공대 윤장석 교수의 설계로 건물은 한국미를 최대한 살려 건물 전체가 풍기는 인상은 마치 조상들의 생계의 수단으로 삼았던「옹기 가마」와 흡사하다.
이 인상은 8각의 지붕 위에 덮힌「청기와」에서 더욱 강하게 풍긴다.
건물 전체의 외벽은 붉은 벽돌로 단장했고 그것은 또「옹기」를 구우며 피 흘렸던 선조들의 옛 생활을 되새겨 주고 있다.
60여척의 높다란 종각은 높은 기대와 불굴의 의지, 내세를 향한 굳은 신념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 성당엔 외모가 풍기는 의미만큼 선조들의 발자취를 신자들에 박아 줄 자료가 하나도 마련되지 않고 있다.
순교자 현양사업이 각 교구별로 이관된 이후 몇몇 교구는 이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자료와 유물 수집에 나서고 있고 더러 성과를 거두고 있으나 순교자의 자료와 유물 수집은 전 교우가 관심을 갖지 않고는 수행하기 힘든 일이다. 따라서 수원지방의 순교자 재현을 위해선 복자성당을 중심으로 교우들의 많은 협조가 있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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