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자네라면 그럴지도. 그애는 절대로 그런 짓은 안 해. 속힘이 있는 애니까. 그리고 내게 한 말이 있는데…』
『그래서 자넬 보러 온 거요. 자네가 그 애의 친구였으니까.』
『나는 그 애 친구지만 아무 얘기도 없었소』
『피에르, 찾아주게! 그애가 밤거리를 혼자 헤매고 있다는 생각만 해도… 기침을 할 거야… 내일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마흐메드나 집주인이 날 고발할 거고 그렇게 되면 경찰이 와서…』
『그렇게 되면 잘 됐지. 』
『피에르, 꼭 찾아주게. 』
『난 그 애를 찾아내도 자네한테는 안 데려가겠어. 』
피에르는 사나이를 밖으로 밀어냈다.
빗속을 등이 꾸부정해서 처량하게 걸어가는 그를 바라보았다. 하늘까지도 이 사나이를 저버린 양 찬 빗줄기가 세차게 내려쳤다.
『마르셀』피에르는 불렀다.『후회한다고 말해 주게! 이제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말해 주게. 』
『물론이지. 』마르셀은 외치며 물 속에서 그 자리에 무릎을 꿇어 버렸다.
피에르는 황급히 달려갔다. 낮은 소리로 죄를 사하는 경을 외우며 이비와 눈물로 젖은 인간 앞에 커다랗게 성호를 그었다. 그리고 그의 어깨를 부추켜 일으켰다.
『집에 돌아가서 술을 마시지 말고 방구석에 앉아 기도를 드려 보도록 하오. 』
『어떻게? 』
『에띠엔느 생각을, 또 찾아나선 내 생각을 하도록 해요. 열심히 해 주겠소? 』
『자네가 내게 부탁을 하나? 』
『그럼. 자네가 열심히 해 주지 않으면 나는 그 애를 찾을 가망이 없소. 』
한 조각의 구름이 달을 가렸다. 마르셀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그 뜨거운 숨결만은 느껴졌다.
『어두운 밤. 이번엔 어두운 밤이다…』피에르는 외로웠다.
피에르는 어두움 속을 더듬어 막다른 골목길에 이르렀다. 아랍인 방 앞을 지나갈 때다.
『자네 친구 에띠엔느가 어제 저녁에 안 들어왔다며? 』
『닥쳐! 남의 일에 어찌 그리 참견이 많아. 』
피에르는 선술집의 뒷문을 두드렸다.
여주인이 래디오를 들으며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옆방에서 남자 주인 목소리가 가끔 래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를 방해하고 있다.
『안녕하시오. 드니즈하고 얘기 좀 하고 싶은데요. 』
『그 애는 벌써 잠자리에 들었어요 신부님. 』
여주인은 피에르에게 항상 관례적인 존경을 표하고 있었다. 그가 이웃에서 산다는 것이 이 선술집의 격을 높여 주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 애한테 꼭 할 얘기가 있습니다』
뚱뚱한 여주인은 다시 앉으며 대답했다.
『그럼 방에 올라가 보십시오. 오른편으로 세 번째 문입니다』
피에르는 오른편으로 세 번째 문을 열고 거침없이 등불을 켰다. 드니즈는 침대 위에 똑바로 앉아서 겁에 질린 눈초리로 방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나다, 날 기다리고 있었지? 』
여자애는 주저하는 듯하더니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왜 왔는지 알지? 몰라? 드니즈, 나한테는 거짓말하면 안 돼! 그때 빨래통 생각을 해 봐…』
드니즈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온 전신을 떨기 시작했다. 피에르의 웃지 않는 얼굴을 보는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불을 꺼요! 눈이 아파요』
『에띠엔느가 추위와 무서움에 떨고 있는데 넌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니?』
『난…난 그 애가 어디 있는지 몰라요 불을 꺼 줘요』
『매일 밤 어느 곳엔가 유다스가 한 명 있구나. 오늘밤은 내가 그렇지』생각하는 피에르는 입맛이 썼다. 에띠엔느가 드니즈에게 자기 계획을 말해 주었고 드니즈는 절대로 비밀을 지키겠다고 맹세한 것을 피에르는 알고 있었다. 그는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불을 꺼요!』
『에띠엔느가 어디 있는지 알게 되면』
피에르는 부끄러웠다. 불빛으로 눈을 부시게 하는 것, 이것은 경찰이 사용하는 수단이다. 우선 그는 빗속을 헤매는 에띠엔느를 가엾지 않느냐고 했다. 다음에는 그들 사이의 우정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다음에는 절대로 드니즈가 말해 줬다고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모두 헛된 짓이었다. 다문 입은 열릴 줄을 몰랐다.
『얘는 나보다 에띠엔느를 더 좋아하는구나』
피에르는 이렇게 생각하니 은근히 속으로 기뻤다.
그러나 마침내 눈부신 불빛과 견디기 어려운 졸음이 오자 소녀는 입을 열고 말았다.
『리옹 정거장』
그래도 드니즈는 12분 동안이나 견뎌냈으니…
피에르는 택시를 타고 싶었으나 돈이 모자랐다. 더구나「싸니」에서는 어쩌다 택시가 오긴 하나 기다리지 않고 그대로 부잣집 거리로 떠나 버리고 만다.
그는 지하철을 탔다. 초조한 마음에 정거장을 열심히 세다 잘못 세기도 했다. 급한 마음에 계단을 올라가는 사람들을 마구 밀어 제끼며 뛰었다. 도망가는 모양 허둥지둥 숨을 헐덕이며 큰길에 올라왔을 때 정거장의 시계 바늘이 11시 28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기차가 떠나는 시간이 아닌가? 큰일났는데…
그는 큰길을 건너 삼등 대합실 쪽으로 뛰었다.
『제발 아직 떠나지 말고 있었으면…제발ㅡ』
그는 갑자기 발을 멈추었다.
『아, 내가 못난 놈이구나. 믿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애가 거기 반드시 있으리라고 믿을 것이 아닌가.』
그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걸었다. 대합실 문을 열었다. 텅 비어 있다. 저쪽 구석 벤치에 누워서 잠들어 있는 조그만 형체가 눈에 띄었다. 피에르는 휘파람으로 신호를 했다. 잠자던 형체가 이쪽으로 얼굴을 돌린다.
『에띠엔느!』
두 사람 사이에 스무 발자욱의 거리가 있다. 피에르는 하느님에게 감사를 드리고 숨을 돌렸다. 에띠엔느는 미소를 띠운 얼굴이 두려움으로 변하더니 다시 마음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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