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첨탑에서 굴러나오는 청동 종소리가 금속성보다는 또다른 여음을 내고 있었다. 새파란 가을의 유리 하늘을 깨어지지 않을 만큼 두들기면서 그것은 맑고 깊은 영혼의 커렁커렁한 목소리 같이 비신자인 나에겐 들렸다.
누구보다도 고독을 알아야 할 비신자인 나에게도 그렇게 들렸다.
성당 문으로 통하는 아니 바로 저 천국의 문으로 통하는 한 줄기 높은 돌층계 양쪽에는 높은 돌계단보다는 또 다른 높이의 늙은 은행나무가 가즈런히 서서 머잖아 탈락해 나갈 육신의 작은 부분들을 가벼이 부채처럼 흔들고 있었고 고풍한 단삼도 음계의 마사음악이 언제까지나 그 육신을 감싸고 맴돌고 있었다.
스피노자. 고독했던 스피노자.
무신론자였기 때문에 그렇게도 말 못할 욕을 당했던 스피노자.
그러나 누구보다도 신을 숭앙했던 스피노자.
따가운 가을 볕에 혼자 앉아 렌즈를 닦던 스피노자의 주름진 얼굴이 나의 눈 앞에 클로즈업 되어 오는 순간 문득 나는 한 잎의 사랑잎이 돌층계를 밟고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마치 축제가 끝난 10월의 해변에서 순중한 빛을 되받아 바람에 굴르는 비닐 포장지의 허무처럼,
그것이 나에게 숱한 의미를 안겨다 주었듯이 죽음과 삶이 연결된 높은 돌층계를 밟아 내려오는 한 잎 가랑잎의 퇴색한 생명.
몇 계단을 내려오다간 쉬고 쉬었다간 또 몇 계단을 내려오는 가쁜 숨결.
나는 높은 층계를 조용조용 내려오는 가을의 한 노인을 보았다.
그의 발은 이끼 낀 돌층계를 내려오고 있었지만 그의 눈은 돌층계를 올라가고 있었다. 끝없이 끝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언제까지나…
그는 영원의 돌층계를 올라가고 있었다.
외로운 한 잎 가랑잎처럼 언제까지나 영원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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