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바로 죽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그
러한 죽음을 순간순간마다 의식하기보다는 죽음을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 없는 남의 것처럼 외면하고 삶에만 열중한다. 어떤 성현의 말처럼 철학, 그것은 바로「죽음」에의 사유며 추구라고 했다면 삶은 바로 올바로 죽기 위한 구도일 수밖에 없다.
죽은 이를 생각하고 장차의 죽음을 생각하는 위령성월, 뜻있는 이들의 한 체험을 기저로 한「죽음」에 대한 묵상을 해 본다.
11월은 연령의 달로서 죽은 이들을 위해 특별히 기도하는 때이다. 그러므로 이 때에 죽음에 대해 새삼 묵상해 보고자 한다. 죽음이 무엇이며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의문은 이미 교리문답에서 익혀 아는 바다.
그러나 누구든지 남의 죽음을 자주 보았지만 자기가 죽어 본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죽은 후에 어떻게 된다는 것은 교리대로 믿기는 하지만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유교의 스승이신 공자님도『미지생이니 위지사리요』라고 하여 죽음에 대해서는 모르겠다고 실토하고 있다. 따라서 5百 년 이래 유교사상에 젖어온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공자님의 말씀대로 죽음에 대해서는 덮어놓고 모르겠다는 식으로『죽으면 그만이다』의 한 마디 말로써 해결해 버린다. 그들은 죽음은 종말이라고 단장한다. 善終, 善終, 終天 등의 용어도 그런 사상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이 과연 끝(終)이겠는가. 아니다. 주를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죽음(끝을 의미하는)이 아니고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 분명하다. 즉 죽음은 사람의 삶(全生)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잠시인 이 세상 삶에서 영원한 저 세상 삶에로 옮아가는 디딤돌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을 하나의 문장에 비한다면 죽음은 피리어드(ㆍ종지부)가 아니고 콤마(、구두점) 같은 것이 아닐까? 또 죽음은 종결이 아니고 새로운 영생에로 가는 관문이기에 거기는 희망이 깃들어 있다. 즉 그리스도는 부활이요 생명이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죽었을지라도 다시 살아날 희망이 보증되어있다.
그리고 또 이 세상에서 깃들이던 집이 흐느진 다음에 깃들이던 집이 흐느진 다음에는 천국에서 영원한 거처가 마련돼 있는 것이다. 우리는 죽음으로 인해 천국에서 행복의 거처를 얻고 또 거기서 부활의 희망을 찾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굳게 믿는 우리들은 죽음을 슬퍼하는 동시에 영복을 약속하는 위로을 받게 된다. 문득 하나 생각이 떠오른다. 몇 해 전 일이다. 저명한 화백 故 고휘동 선생이 80 고령으로 세상을 떠나서 명동대성당에서 장례미사를 드릴 때였다. 조객은 문화계, 정계 등 많은 인사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숙연한 미사 중에 뜻밖에 젊은 사제 박도식 신부의 추도 강론이 시작되었다. 박 신부는 거두절미하고 성삼문의 시 한 구절을 외우고 있었다. 그것은「황천 가는 길에 주막 하나 없구나 길에 주막 하나 없구나 오늘 밤 어느 뉘 집에 잠들까?」(黃泉無一店 今夜宿誰家)라는 사세시의 한 구절이었다. 사육신의 으뜸으로서 갖은 혹독한 국문을 당하고 이 세상을 하직하려는 절박한 순간에 토로한 처절한 시구이다.
나는 깜짝 놀랐다. 이 구절이 미사 강론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하는 걱정에서였다. 그러나 그 다음에 이어 나온 박 신부의 말씀에는 다시 감탄했다. 즉『성삼문 같은 위대한 분도 자기 스스로 금치 못하고 죽어가는 앞길에 아무런 의지할 곳이 없는 것을 한탄해마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여기 계신 고 선생님은 이미 영원한 거처를 마련해 두셨다』고 갈파하였다.
다른 많은 조객들도 이 절실한 표현에 대한 깊은 감동과 놀라움을 금치 못한 것을 나는 하고 많은 장례미사 강론 중에서 이와 같이 간결한 말로써 깊은 감명을 느껴 본 때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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