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소중함을 새삼스럽게 얘기할 필요는 없을 줄 안다. 아직은 지식의 전달 수단이 활자이기 때문이다. 요즘 시청각 교육의 개념이 보급되어 이른바 선진국에서는 슬라이드ㆍ영화ㆍ텔레비전을 활용한 교육 수단이 많이 채택되고 있다지만 그것은 손쉽게 접근할 수 없는 관찰이나 실험성이 필요한 특수분야 등에 대한 교육 보조 수단의 구실을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역시 교육 즉 지식 전달 수단으로서의 大宗은 책이다.
우리는 예부터 가을을 燈火可親의 계절이라 하여 책 읽기에 알맞은 철로 꼽아 왔다. 유독 동양에서만 가을이 책 읽기에 알맞은 철일 수 없지만 한 몸의 수양에서부터 입신출세의 밑천까지를 모름지기 독서하는 사념이 등화가친의 말을 만들어 냈을 것으로 안다. 이렇게 독서의 버릇에 젖어 생활해 왔다는 동양, 그 중의 한 구석인 한국에서 요즈음 책을 도무지 읽질 않는다고 개탄하는 소리가 높다. 책을 읽지 않는다는 현상은 막연히가 아니라 구체적인 비교로 잘 나타나고 있다. 가령 일본 사람들은 한 사람이 일년에 평균 3천페이지의 책을 읽는 데 비해 우리는 고작 50페이지 정도밖엔 안 읽는다고 한다.
그것도 출판업계의 동태에서 살펴보면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통계에 따르면 4년 전 56년에 7백49만5백70부이던 원서 발행 수가 67년에 그 66%로 줄어들고 68년에는 그에서 다시 32%가 줄고 69년에는 그에서 또다시 11%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있다. 이것 저것 다 싸잡아서도 우리 국민 한사람이 1년에 인쇄물을 사는 돈이 고작 18원밖에 안 된다는 통계도 나와 있으니 교육 인구는 불어나는데도 원서출판 부수는 줄어든다는 현상을 더 좀 실감 있게 느낄 수가 있다.
원서출판 부수가 줄어든다는 것은 독서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어째서 절대 인구도 늘고 교육 인구도 느는데 독서 인구는 줄어들고만 있는 것인가.
물론『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하는 대답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그럼 왜 책을 읽지 않는 것일까. 책을 읽지 않아도 달리 知讀을 섭취하는 妙方이 생겨서 그러는 것일까. 그러나 모든 구석이 이른바 근대화해서 그 수단 방법이 달라졌다 해도 책을 멀리하고도 知讀을 흡수할 수 있는 수단 방법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지 않는 경향이 짙어진다면 그것은 하나의 사회적인 병임에 틀림없다. 어떠한 병들에 걸려 있는 것인가. 첫째로 사회정의를 믿지 않는 병에 걸려 있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사회가 약속한 정당한 기회와 절차에 따라 사회가 정직하게 운영되고 있다고는 믿지 않는 풍조가 휩쓸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애써 책을 읽고 수의을 쌓으며 지의을 몸에 담아도 그것이 사회에서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패배의식이 우리 독서 인구를 좀먹고 있는 것이다.
끙끙대고 책을 보는 동안에 차라리 손쉬운 기회를 붙잡아 슬쩍 한 자리 얻어 하거나 재빨리 돈벌이길을 뚫는 것이 이 사회에서는 출세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하는 풍조가 사람들로 하여금 점점 책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이 출세주의와 황김만능주의 분자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매년 10월이 되면 정부에서는 독서주간을 마련해서 새삼스럽게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갖가지 행사를 벌이지만 그 주간에 그칠 뿐 그것이 지나가 버리면 우리 주변은 또다시 책이라는 말도 별반 들어 볼 수 없을 정도로 황량한「독서」의 분위기에 휩싸이는 것이다.
이어서 우리는 주장한다. 정부를 비롯하여 사회의 모든 지준적 기능이 우선 독서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데 앞장서 달라는 것이다. 그것은 도서관을 많이 말들고 문고를 많이 펴는 따위의 일로서만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사회 정의가 정직하게 운영되는 그런 기회와 절차가 근본적으로 우리 주변을 다스리도록 환경이 조성돼야만 도서관도 문고도 그 기능을 비로소 발휘하게 될 것이다. 독서주간의 행사 따위는 그 뒤에 따라야 할 문제이다.
다음으로 출판계에 당부하고 싶다. 양서를 출판해 달라는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혐서」풍조에 휩쓸린다고 해도 사회의 양식이 바닥으로부터 죽어 버리는 것은 아니다. 그 사회의 양식들은 읽을래야 읽을 만한 양서가 적다고 탄식을 하고 있다. 지금 우리 출판계(讀書界)에도「악서가 양서를 구축」하는 그래샴 법칙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따금씩 말썽을 빚는 그「해적판」출판의 횡행이 뮛보다도 이를 여실히 말해 주고 있고 에로티시즘의 범람이 또한 그것을 웅변해 주고 있다. 출판업은「지식의 생산업」이다. 그 지의의 생산자가 양식을 상실했을 때 이 땅은「악식」과「무식」의 돗떼기 시장으로 화할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각성이 더 근본적인 문제이다. 우리는 어찌하여 성인ㆍ현자를 존경하고 따르는가. 그것은 그들이 우리가 갖지 못한 가치로운 것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몸으로 실천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저버리고 어찌 우리는 자기 인생과 생활을 조금이라도 보람 있고 살찐 것으로 할 수 있을 것인가.『구하라 길은 열리리라』우리는 제1차로 그것을 책 속에서 구해야 한다. 독서란 가장 평범한 행위이면서도 어렵다. 그러나 그 어려움을 해내야 한다. 왜? 진리란 항상 평범한 어려움 속에 있기 때문이다. (끝)
출판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