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의 평신자로서의 봉사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예리꼬」로 가는 길에서「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한 그대로의 사랑의 실천 그것 이외의 또 무엇이겠는가? 장사꾼이 여행을 하다. 불쌍한 사람을 도와 주었다는 이야기, 바로 우리 사회생활 속에서 날마다 다하는 크고 작은 그런 불쌍함에 대한 다소의 희생과 노력, 그것이 바로 우리의 봉사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예리꼬」로 가는 사람은 많았는데「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듯이 그게 참으로 힘드는 일이다. 움기와 희생과 사랑이 없으면 선뜻 이루어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데아인이 아닌 사마리아인이「에리꼬」로 가는 길의 주인공이었듯이 우리 사회에서도 오히려 봉사는 신자들보다도 외인들이 더 많이 하고 있음도 기쁘고도 한심할 노릇이다. 결국 우리가 용기가 없는 것이다.
이제 그 부끄러운 예를 내 자신에서 찾아본다.
수은주가 30도를 훨씬 넘는 노염의 계절이었던 8월 초의 조간신문에서 나는「사기한 아버지를 묶은 인정 형사의 아버지 노릇」이란 기사를 읽었다. 서울특별시의 변두리 15세 소년과 국민학교 4학년 중퇴의 12세 소년과 2살짜리 젖먹이 3형제가 고아 아닌 고아 노릇을 하는 것을, 그 아버지를 잡아 가둔 인정 형사가 눈물겨운 희생과 봉사로 당장은 면해 주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지난 4월에 성북경찰서 형사과 근무의 전재풍 형사는 한 사기한을 묶어 왔다. 그런데 그 이튿날 너무나 단정한 모범 중학생 차림의 소년이 울부짖는 젖먹이를 등에 업고 전 형사 앞에 나타났다. 사기한의 아들이라기에는 너무나 몸가짐이나 말하는 품이 단정하여 전 형사를 놀라게 하였다.
『어머니는 왜 안 왔냐?』전 형사의 물음에 중학생은 고개를 숙였다 사연은 딱했다. 가난과 아버지의 주벽에 시달리다 못해 어머니는 작년 10월에 가출, 그 뒤 한 달 만에 누나(17세)도 아버지의 구박에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가 버렸다.
중학생은 방바닥을 기어다니기 시작한 한 살박이 막내 동생을 젖을 얻어 먹이고 미음을 끓여 먹이는 등 혼자 힘으로 키워야 했다.
그런데 며칠 만에 한 번씩 집에 들리는 아버지는 간신히 입에 풀칠할 정도의 돈을 던져 주고는 또 어디로인지 가버리곤 했다. 그러다가 석 달치 집세가 밀려 셋방마저 쫓겨났다.
하루 200원씩 하는 무허가 하숙집에서 3형제가 이틀을 묵었다. 그날 저녁 하숙집 주인은『너희 아버지는 사기를 하다 경찰에 붙들려 갔다』면서 3형제를 쫓아냈다. 쫓겨난 그들은 근처에 있는 3륜차 주차장에 가 3륜차 위에서 하룻밤을 지새고 날이 밝기가 바쁘게 아버지를 면회하러 전 형사 앞에 나타났던 것이다. 아버지는 어린 것들 앞에서 눈물만 흘리고 할 말이 없었다.
전 형사의 대부 대모 노릇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우선 그들에게 300원을 주어 아침을 사 먹게 하고 밤에는 근처 500원짜리 여관에서 재웠다. 토요일인 다음날 일찌감치 일을 마친 전 형사는 그들을 데리고 북가좌동 판자촌에 살던 집을 간신히 찾아 보증금 1만 원과 월세 1,500원을 집주인에게 주고, 부모 없는 아이들을 잘 거두어 달라고 부탁하고 쌀을 3말과 연탄 50장 현금 1천 원을 주고 갔다.
그리고 그 후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그들을 찾아보고 돌아갈 때면 부엌에 가서 쌀자루를 열어 보고 연탄을 세어 보고 없어진 것만큼 채워 놓고 갔다. 그러나 전 형사의 수입을 가지고 이것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는 일일까….
나는 이 기사를 읽고 우선 전 형사에게 큰 부담감을 느꼈다. 그야말로 착한 사마리아인이 아니었던가. 그야말로 내가 마땅히 했어야 할 일을 대신해 준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전 형사의 봉사에 대한 감사를 드리려고 돈 1만 원을 준비해 가지고 전 형사 댁을 찾아가서 치하의 말이나 전하고 와야겠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그런데 끝내 그게 실천이 안 되고 말았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용기가 없어서였다. 잘못하면 일종의 매명행위가 되지 않을까… 그렇다고 익명으로 돈만 부치기도 너무 무의미하고… 32도의 더위에 집(성북구 삼선동 3가 29)을 찾아갈 일도 용의하지 않고… 그저 한마디로 우유부단히 나를 봉사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봉사란 어떤 정의나「구두선」이어서는 안 된다. 봉사에 대해서는 입술만 놀리는「맆서비스」는 소용이 없다. 봉사에 대해서는 글을 쓸 필요도 없다. 덮어놓고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실천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孔子는 의를 보고 하지 않는 자는 勇이 없음이라 했다. 봉사에 필요한 것은 오직 용기와 희생과 실천에 옮기는 노력뿐이다.
우리는 신문 기사에서 전 형사 같은 분을 많이 발견하고 큰 교훈을 받는데 나 자신 낙제의 표본이니 큰 소리를 칠 수도 없고 다만 부끄러울 뿐이다. 그래서 아마「예리꼬」로 가는 길에서도 사마리아인만이 나왔나 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