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는 자기 침대를 쟈꼬와 쁠랫트에게 양보하고 잠자리를 임시로 꾸며 자기로 했다. 어른 둘만 해도 너무 작은 침대라 애기 샹딸은 피에르가 맡았다. 그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자기가 지킴으로써 어린애가 잠잘 수 있는 것만 같았다.
그의 불면증이 기도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말 한마디 못하고 손 하나 움직일 수 없이 잠 못 이루는 이 밤은 하나의 시련이요, 오뇌의 시간이기도 했다. 어린애는 그의 품 안에 안겨 잠들어 있다. 어느 사랑하는 사람도 차지할 수 없는 이 품 안. 어느 여자도 병든 자식도 안길 수 없는 곳….
피에르는 따뜻한 생명의 향기를 들어마셨다. 머리를 들어 조용히 어린애 머리에 갖다 댔다. 조용한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아직 죽음이 깃들지 않은 생명체의 순수한 숨소리. 나약한 심장의 고동소리. 피에르는 비누와 우유 냄새가 뒤섞인 어린애의 머리칼에 볼을 대고 그 숨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는 두려움과 든든함을 동시에 느꼈다. 지금 이 순간 그는 아버지인 것이다.『나도 이 숨소리를 창조할 수 있었을 텐데… 아니. 창조가 아니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할 수 있었을 게다. 그런데 내가 낳는 것은 사람의 얼굴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충족시켜 주는 사람들은 등을 돌리고 가버린다. 또 그들이 내게서 떠나가 버리길 나는 바라야 하지 않는가. 그들은 내게 괴로움만을 털어 놓는다. 이 어린 샹딸도 나의 권유가 아니었으면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했을 텐데 지금 이 어린애에게 나라는 인간은 아무 의미도 없지 않는가. 내가 온 생애를 바치는 이 모든 사람들 그들에게 나라는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니다』
절망이라는 그림자가 이번에는 사랑의 옷을 쓰고 나타난 것이다. 어두움의 왕자인 절망은 이 석 달 된 어린애의 숨결을 타고 다가왔다.
어린애가 갑자기 꿈틀거렸다. 피에르는 눈물이 한 방울 어린애의 뺨에 떨어진 것을 알았다. 아직도 어두웠기에 그는 눈물이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오래간만에! 참으로 오래간만에 그는 울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싸니」오의 종소리가 얼어 붙은 공기를 헤치며 울려퍼진다. 새 다섯 시. 죽음과 탄생의 시간이다. 피에르는 미소 지으며 인간적인 행복에 결정적으로 작별을 고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아이를 두 팔로 꼭 껴안았다.
여섯 시에 문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났다.
『여보게 일어났나?』
『잠깐만! 곧 나갈게.』
피에르는 샹딸을 타고 너머 밖으로 나갔다. 머리가 흐트러진 앙리가 서 있었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일을 쉬는 날이다. 보통 때 같으면 해가 높이 뜰 때까지 잠자리에서 늦장을 부려보는 그들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아직 동이 트기도 전이다.
『여보게 피에르. 한 가지 해결책밖에 없네. 저 앞에 있는 헛간 말이야』
『나도 그 생각을 했어』
『비어 있나?』
『그럼.』
『오늘 아침이라도 곧 주인을 만나보지. 거절한다면…』
『거절할 거야. (피에르는 그 아들이 어제 저녁에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 생각났다. 그러나 한 번 얘기해 봐야지.』
『그럴 시간이 없어. 오늘 무단 점유를 합시다』
『글쎄…』
『이젠 별 수 없어. 이 모퉁이에 적어도 스무 집은 빈 자리가 있단 말이야. 이젠 결단을 내려야 해!』
피에르는 한참 생각에 잠기더니 결단을 내렸다.
『좋소.』
그들 눈 앞에 붉은 벽돌로 지은 헛간이 차디찬 안개 속에 성(城)처럼 묵묵히 서 있다. 동이 터가는 새벽 속에 서서 두 사람은 행동 계획을 짰다. 이 거리의 친구들은 모두 이웃 사람까지 동원할 것.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열쇠 장수 죠죠는 깨끗이 문을 열 것. 현재 거리에 나앉은 자꼬의 가구를 들어다놓고 쁠랫트와 애들을 데려가고 불을 피울 것. 그리고 나서 헛간 주인과 담판을 할 금액을 책정할 것. 두 사람은 행동 개시 시간을 정했다. 순경들이 점심 먹는 시간이 제일 좋겠다. 그들이 오기 전에 일을 다 끝내야 한다. 설마 한 거리의 주민 전체를 때릴 순 없겠지. 거리 전체가 무언 중에 찬성하고 있으니 말이다. 빈 헛간 하나 때문에 한 가족을 내쫓아 버리진 않겠지. 특히 그들은 상부의 명령 없인 움직일 수 없다. 누가 감히 그런 명령을 내릴 것인가?
그리고 그들이 여기까지 올라면 시간이 걸릴 테니까….
아침 내내 집집이 찾아다니고 창 밑에서 연락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오에 그래. 정오에… 그 시멘트 회사에서 일하는 쟈꼬 알지 않나?…글세. 밤에 불이 났대!…몇 달 전부터 비어 있는 헛간… 피에르 신부도 찬성했대…피에르도 찬성이야…피에르 신부도 찬성이야…』친구들에게 알리고 부인들까지 데려오기로 약속들을 한다.
『여보게 내가 아는 의사가 하나 있는데 그 사람도 찬성할 거야…우리집엔 그전에 치안 판사를 지내던 분이 계신데…애들을 데릴러 가는 길에 교장한테도 알려야지』
정오가 되자 사람들이 묵묵히 거리에 몰려 나왔다. 엄숙한 얼굴들이다.
쁠랫트와 쟈꼬를 위해 나무ㆍ꽃ㆍ통조림 등 조그만 선물을 가져온 사람도 많았다. 죠죠는 자물쇠를 거뜬히 열었다. 헛간은 비어 있었으나 춥고 더러워 보였다. 몇몇이 비와 물통을 가져왔다. 아직 축축한 시멘 바닥에 가구를 들여 놓았다. 동방박사들(리리. 아르뛰르 어머니 베라트 할아버지 등등…)
이 선물을 놓았다. 두 가치의 미모사꽃, 불 위에 얹어놓은 물냄비, 헌 유모차 위에 잠들은 아기, 이 모든 모습이 헛간을 사람 사는 집으로 변형시켰다. 이제 일이 끝난 것이다.
모두 벽돌집 주인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잊어 버리고 있는 듯했다. 처음에는 벽돌집 안에서 다소 소란이 이는 것같이 보였다. 사람의 머리가 여러 번 창문으로 들락날락하고 전화벨이 울리더니 이젠 잠잠해졌다. 쁠렛트는 아직도 다소 불안한 미소를 머금고 문을 닫았다. 이 순간 파출소장이 순경 몇 명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앙리와 피에르가 사건의 전말을 조용히 설명했다. 화제, 비여 있는 헛간. 석 달밖에 안 된 샹딸 등등…
『당신이 노동사제요?』
파출소장은 다소 호기심에 찬 눈초리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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