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구원의 대업을 위해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되신 성자 그리스도는 직접 인간으로 강생하시었고 강생 후 인간으로서의 수업을 노동자로 시작하셨다.
■목수의 아들
「목수의 아들」로 목수의 수업을 하심은 메시아로서의 그리스도께서 분명히 노동자이심을 강조하신는 것이고 이는 또한『나는 복 사함을 받으려 오지 않고 복 사하려고 왔노라』하신 봉사저 시범을 노동자로서 시작하셨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사회 안에 그 사명을 다하려고 할진대 봉사자로서의 모습을 충분히 나타내야 함을 본란에서 상세히 논술되어 온 줄 안다. 교회를 하나의 종합된 봉사자라고 한다면 신비체의 각 부분은 부분적 봉사라고 볼 수 있겠다. 교회 안에 부분적 봉사자의 하나로 노동자를 지적한다면 혹시 과소평가일지도 모르겠으나 크리스친적 노동자임을 자부하는 젊은 노동자들은 그들의 위치에 신경을 쓰기보다도 그들이 처한 환경에 대해서 더 신경을 쓰고 있기에 그들에 대한 평가에 과도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무엇보다도 그들의 형제요 어버이로 모시고 따르고 있는 그리스도의 숨은 노동생활에 대해서 더욱 큰 매력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긍지
노동을 통한 노동자의 봉사는 그것이 힘도 없고(금력과 권력에 눌렸으므로) 아주 적은 것임을 너무나 잘 알지만 크리스찬적 노동생활을 통해서 비로소 그 자체로 가치 있는 봉사의 생활을 하고 있음을 깨닫고 긍지를 갖게 된다. 그러나 무형의 각종 억압을 당하고 있는 현 사회 체제 하에서의 노동자들이 크리스찬이라고 해서 자연적으로 위에 말한 긍지를 가지게 된다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렇게 되기 쉬운 것도 아니다.
■나쁜 노동 환경
여기에 한 가지 조그만 예를 들어본다. 도시에 있는 커다란 직물공장에 다니는 몇 명의 여직공들이 있다. 조건이 좋지 못한 환경과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과중한 노동시간에 쫓기면서도 그들은 일 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모임을 가지고 있다. 한창 발랄하게 피어오를 젊은 여직공의 모임은 남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그런 모임이 아니라 의외로 진지하고 때로는 심각한 모임이 되기도 한다. 그들이 진지하게 나누는 대화는 주간지나 대중잡지에 나오는 최신 유행이나 관능을 자극하는 내용들이 아니라 각 사람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요 직장 환경에 대한 이야기, 더 나아가서는 교회 안에서 그들이 할 일에 대한 이야기이다.
■서로 돕는 모임
각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또 다른 이의 소문에 관한 것이 아니다. 각자 자신들의 생활 반성을 솔직하게 털어 놓음으로써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일에 대해서 동료의 협조를 구하는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듣는 편에서도 다른 동료의 이야기를 호기심으로가 아닌 자신의 일로 생각하고 걱정하면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직장 안에서의 이야기도 비슷하다. 나 하나만 편하기 위해서라던가 기분 좋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관심한 직장 동료와 함께 편하고 기분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환경 소개와 대책 등을 논의하고 있다. 그들은 또 교회의 일원임과 하느님의 백성임을 자각하고 복음 전파와 그들이 처한 조그만 환경 안에서 환경을 변화시키고 그리스도를 심는 일에 있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며 어떻게 실천하는가를 진지하게 토론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의 이야기들이 오고가는 동안에 그들은 노동을 통한 노동자로서의 책임을 깨닫고 자칫 떨어질 뻔한 열등의식과 체념에서 자신을 구하고 노동을 통한 사회 봉사에 그들 자신이 참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도와 함께 생활
더욱이나 노동생활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더욱 가깝게 의식하게 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먹고 그리스도와 함께 일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쉰다는 믿음은 바로 크리스찬적 애덕의 실천을 더욱 쉽게 또 더욱 행동적으로 옮기게 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상에 예거한 것은 단순한 이상이나 비현실을 현실화해서 말한 것이 아니다. 또한 그러기를 바래서 꾸민 이야기가 아니다. 위에 예거한 모임은 자발적인 것이고 봉사하는 교회의 뒷받침을 바라는 모임이다. 지금까지 많은 지방에서 이러한 젊은 노동자들의 모임이 만들어졌고 앞으로 계속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봉사하는 교회는 그 안에 봉사정신에 사는 신도들을 요구하게 된다. 이렇나 신도들은 행동적이어야 하며 여기에 가장 알맞는 이들이 바로 노동자들이다. 왜냐하면 노동자는 대부분이 젊고 단순하며 잘만 살게 해 준다면 그 기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젊은이에게 용익를 잘못 넣어주면 만용이 되기 쉽다. 그러나 알맞게 넣어주는 용기는 영웅을 만들고 세상에 대목을 만든다. 이 역할은 교회만이 할 수 있고 교회에서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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