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행인들이 수상쩍은 눈길을 슬금슬금 던지는가 하면 아예 발걸음을 멈추고 서서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버스정류장이라는 장소도 문제였다.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호기심어린 눈길을 주저 없이 던지고들 있는게 아닌가.
이러다간 버스까지 따라 올라와서 이런 식으로 계속할 것이 분명했다.
하는 수 없어 미사는 길가에 있던 다방으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사나이가 뒤따라 왔다.
미사는 사나이와 결국은 마주 앉게 되었다.
『어차피 들어왔으니 차는 시켜야지요?』
사나이는 미사의 눈치를 살피고는 그녀의 의향을 물어보지도 않고 커피 두 잔을 주문했다.
찻잔과 설탕 그릇이 앞에 놓였다. 그러자 사태진은 지체없이 설탕을 퍼넣기 시작했다.
하나 둘 세스푼까지는 미사도 예사롭게 생각했으나 그는 연거푸 지껄이면서 넷 다섯 여섯 일곱 스푼까지 설탕을 넣는다.
그러자 그는 천천히 차를 휘젓기 시작하더니 다시 설탕을 그릇으로 손이 옮아갔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번.
커피 한잔에 도합 열세스푼의 설탕을 넣다니 그제서야 찻잔을 들어서 입으로 가져간다.
무척 맛있어 보였다.
호록호록 호루룩 마치 새처럼 차를 마신다.
『따지고 본다면 아내도 피해자요, 딸도 피해잡니다. 주부를 잃은 가정을 생각해보십시요. 얼마나 살벌하겠습니까? 차라리 아내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더라도 내가 이렇게 격분하지는 않을 거에요. 하긴 남의 품에 안겨서 행복해진 아내를 보았다만 그건 그것대로 못할 짓이요. 눈에 쌍심지를 돋치기는 했겠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이건 남의 아내를 유혹해서 못살게만 만들었지 않습니까? 예가놈이란 참 뻔뻔스러운 놈이죠. 그렇게 해놓고는 지금 서울 장안에서 나오는 왠만한 신문에다가는 자기이름을 대문짝만하게 박아서 조동숙 여사의 행방을 찾고 있습니다 그려-』
『……』
『어디 그뿐입니까. 이렇게 일을 쑥대밭을 만들어놓은 주제에 어쩌자고 한 선생같은 앞날이 구만리 같은 여성에게까지 손을 뻗치는가 이런 말입니다요. 내말은!』
『손을 뻗힌게 예 선성님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미사는 해쓱한 얼굴로 그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렇다면-그렇다면-그럴리도 없겠지만 하루속히 손을 떼셔야죠. 한 선생, 예관수라는 그 사나이를 조심하십시요. 경계하십시요. 우리처럼 비참한 꼴을 당하시기 싫다면-』
『세상에는 비참한 꼴을 무릅쓰고라도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더군요. 댁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분들의 관계가 그랬던 것 같군요. 여러 가지 충고를 해 주셔서 많은 참고가 되었지만 나 역시 사랑을 한다면 그런 식으로 밖에는 할 수 없을 거에요. 손을 댄다거니 땐다거니 그런 차원으로서는 이야기가 안 되겠어요. 다만 여기서 분명히 밝혀둘 것은 예 선생님은 나를 유혹하지 않으셨다는 한 가지 엄연한 사실입니다』
미사는 입에도 안댄 찻잔 밑에 값을 끼워놓고 밖으로 나왔다.
자연히 마음이 급했다
미행자가 있다는 새로운 불안이 싹터버린 것이다.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못했던 순수무구한 바닷가에서의 오열을 남몰래 훔쳐보고 있던 끈질긴 눈길이 있었다는 것에 진저리가 쳐지는 느낌이다.
택시를 몰고 집으로 와서 사방 문을 꼭꼭 잠구었다.
며칠 전에 뜰이 있는 집으로 옮기리라던 생각은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역시 문을 잠구고 앉으면 아무에게도 침범당할 우려가 없는 아파트 방이 최상이다 싶었다.
허전하고도 막막했다.
예관수와 주동숙의 관계를 이리저리 생각해보았다.
세상의 눈으로는 결코 용서받지 못할 사랑이라도 당사자들로서는 온갖 인생을 거는 수가 있다. 목숨을 걸었나 보다.
사랑이 도덕이 아니니 그들은 목숨을 거는 사랑에 서로 몸을 받쳤을지도 모른다.
사태진이 아무리 거품을 물며 예관수를 규탄한다 해도 미사의 마음은 어쩐지 동요가 없었다.
미사의 칠지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일주일에 두 번 유내과로 스트랩토마이신을 맞으러 갈 때 말고는 언제나 아파트 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를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난데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예관수일 것이라는 예감이 그녀를 마구 들뜨게 했다.
드디어 나타난 것이다. 서울에. 그는 여자를 찾았을까. 만났을까.
『여보세요』
자신의 목소리가 기대와 반가움으로 마구 떨리고 있음을 느꼈다.
웬일인지 대답이 없다.
『여보세요. 어서 말씀하세요』
그러자 저쪽에는 뜻밖의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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