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까 7장11-17절)
색채소개=그림 전체가 거의 검붉은 핏빛과 약간의 푸른색으로 그려져서 어둠침침한 느낌을 주는듯 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환한 기분을 주며 사람들의 표정과 그들이 입고 있는 옷들의 무늬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다. 그리스도가 입고 있는 속옷 색깔은 연한 푸른색 바탕에 금줄이 그어져있고 만또는 연하고도 우아한 보라색에 금박이가 박혀있다. 그분이 디디고 있는 땅은 짙은 푸른색 바탕에 검은 선들이 있다. 사람들은 모두들 놀란 눈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으며 죽었던 자도 다시 살아나서 눈을 뜨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다. 부인은 흰옷을 입고 있는데 역시 머리에 두른 베일에는 검은 점들이 무늬처럼 총총 있고 의복에는 금박이가 박혀있다. 뒷배경은 대단히 어두우나 오른편 구석에 있는 집들과 성(城)은 굵은 흰 선으로 그어져서 이 어두움을 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역자주>
이 성화는 생명의 빛이 더욱 더 빛나도록 밤의 광경을 그렸다. 화려한 비단처럼 검고 붉은 색깔의 하늘은 왼편을 밝게 해주며 첨탑처럼 생긴 성은 마치 춤추는 듯 하다.
그 앞에는 가로, 세로형의 집들이 빽빽하게 서있고 어두운 성문 앞에는 거의 늙은 남자들이 상여를 메고 어둠침침한 푸른색 고르지 못한 땅위에 발들을 내디디고 있다. 두 젊은이들이 비단처럼 화려한 염포로-길게 아래로 늘어뜨려진-휘감은 죽은 청년을 두 장대위에 얹어 매려고 쳐들고 있다. 그곳에서부터 좀 떨어진 곳에는 부인이 연한 푸른색과 약간 검은 색깔의 머리 수건을 두르고 겸손되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땅위에 꿇어앉아있다. 그러나 부인은 감히 청할 용기조차 없는 사실이 그녀의 뒤에서 이미 이루진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곧『울지마시오』하는 그분의 말씀을 들을 것이며, 또 전능하신 분으로서 그의 오른손을 쳐들고 생명을 주시려고 강복하시어 과부에게 둘도 없는 젊은 외아들을 죽음에서 부활케 하심을 알게 될 것이다. 루까는 예수가 그의 사도들과 많은 사람들과 함께「나임」으로 가셨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성화에서는 성으로 둘러싸여진 도시와 장례행렬에 끼여 가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예수가 혼자 서계신다. 빛이 발하는 그의 머리는-십자가형 후광 안에는 LVX란 말이 적혀있다-
밤과 죽음의 세력이 멈추도록 명령하신다. 그분의 눈길과 강복과 말씀은 앞에 꿇어 앉아있는 부인을 지나쳐 버린 채 죽은 자에게로 향하고 있다.
『젊은이,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시오!』그러자 죽은 자가 일어나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 과부를 보시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그렇게 하셨다고 텍스트에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주님의 동정은 쉽사리 일어나는 감동이 아니고 깊이 알으심에서 오는 동정이다. 예수께서 친구의 죽음에서 자신의 참혹한 죽음의 운명을 미리 체험하셨기 때문에 나자로의 무덤 앞에서「마음에 충격을 받으시고 감동」하셨듯이(루까11장 33과38절) 그분은 이제 외아들을 잃고 고통스러워 슬피 우는 과부의 눈물을 보시고 곧 십자가상에서 외아들을 잃어버리실 자신의 어머님의 고통을 생각하셨다.
예수님이 당신 어머니에게는 해주실 수 없는 바를 즉 그에게 생명과 어머님의 사랑에 돌려줌을「나임」의 젊은이의 어머니에게 대신해주시는 것이다. 과연 예수께서는 다른 이에게 베풀 수 있는 바를 정말로 당신이 어머님에게는 거절하는 것일까? 어머님에게 그분은 고통과 슬픔의 장례 후에 당신 자신을 살아있는 자와 생명을 주시는 자로 다시 주시지 않았는가? 성화의 왼편만을 바라본다면 마치 마리아 막달레나가 부활날 아침 정원에서 정원직이로 생각하고 이름을 부르며 부활하신 자 앞에 엎드린 광경을 보는 듯하다. 혹은 복음에서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부활하신 주님이 어머님께 나타나는 만남을 보는 듯하다.
부활의 성화는 주님의 개인적인 부활만이 아니고 전 신비체와 그의 모든 지체들의 구원신비이다. 교부들은「나임」의 과부에서 주님으로부터 죄의 죽음에 대한 자녀들에게 새 삶을 위해 재생의 은총을 빌어주고 또 받게 하는 교회의 모범을 즐겨 본다.
그분은 아들을 살려「나임」의 과부에게 주시고, 당신의 어머님에게는 자신을 죽은 자들 가운데 부활하신 자로서 어머니인 교회에게 주고 죽음으로부터 수많은 아들 딸들을 보호하시고 구해주시는 위로를 주신다. 그의 복음을 잘 알아들을 수 있기 위해서는 이러한 여러 가지 점들을 염두에 두며 성화를 감상해야 한다.
그러면 성화는 우리에게 마지막 질문에 대한 해답을 줄 것이다. 22개의 코텍스 성화 중에 부활그림은 하나도 없고 마지막으로 십자가 죽음으로 끝난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모든 성화는 부활의 신앙을 전파하고 부활하신 자를 가리킨다.
왜냐하면 예술가가 주님의 생애에서 일어난 부활전의 사건들까지도 부활의 빛 속에서 보았고 또 이미 그가 신앙에서 알고 있던 바 즉「DOMINUS EST-그분은 주님이시다』(요안 21장7절」를 전파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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