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야고보는『너희 중에 만일 앓는자 있으면 교회의 사제들을 저에게 오게 할 것이며 이에 저들은(사제) 주의 이름을 인하여 저를 위해 기도하며 기름을 바를 지니라. 이에 신앙의 기도는 병자를 가볍게 할 것이며 주께서는그를 위안하실 것이며 저 만일 죄 중에 있으면 용서하심을 받으리라(5ㆍ14~15)』말씀하셨다.
여기서 이 성사에 관한 모든 문제를 다루기란 어렵고 다만 지금까지 이 성사를 집행하는 데 따르는 실천적인 문제를 간략하게 다루어 보고자 한다.
(가) 종부성사라고 한 이유
우선 이 성사는 지금까지 일컬어오던 종부성사냐 혹은 병자성사냐가 문제다. 지금까지 교회에서는 이 성사는 죽을 위험에 한 번만 받는 성사라고 가르쳐 왔다. 그 유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중세에 신학자들은 성사의 목적이 은총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죄에 대한 효과만을 인정하고 몸에 대한 효과에는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들은 성사를 다른 약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하고 또 이 성사의 효과가 건강 회복이라면 그 성사는 자기의 본(本) 효과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성사를 베푸는 자는 불사신(不死身)이 될 것이니까. 이런 여러 가지 추리 끝에 병자塗油의 주요한 결과는 죄의 사함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이 사죄의 역할은 이미 성세와 고백의 성사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가? 그래서 그들은 도유는 죄의 마지막 찌꺼기를 다 없애는 결과를 내는 것이라고 주장하게 되었다.
여기서 이 성사를 되도록 늦추어야 한다는 결론을 짓는 것이 논리적이었다. 그래서 이 성사를 임종자들의 성사로 하고 종부 또는 종유(終油)라 부르게 되었다.
도유의 육체적 효과에 대해서는 때로는 그것이 영혼에 유익하다고 생각될 때 하느님은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이 성사를 이용하실 수 있다는 것뿐이다』(성사란 무엇인가? 128면)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이 오늘날까지 뻗어 내려왔기 때문에 이 성사는 죽게 되어야만 받게 되는 것으로 알고 가르쳐서 이 성사를 받게 하려면 참 어려웠다.
임종이 가까운 병자는 이 성사를 받으면 꼭 죽는 것으로 알고 이 성사 받기를 주저하거나 심지어는 완강하게 거부하는 때도 있다.
혹은 최후 순간까지 미루고 미루다가 할 수 없이 받거나 또는 신부가 불려가면 의식이 전혀 없든가 아니면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 매우 의심스러운 때가 많다. 이왕이면 병자가 효과적으로 이 성사를 받을 수 있게 또 이 성사를 설정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업이 드러날 수 있게 미리 받거나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도 이 성사를 받을 만하지 않는가?
(나) 어디까지나 병자성사다
다행히도「교회 용어심의위원회」에서는 종부성사를 병자성사로 바꾸어 놓았다. 이 성사는 명실공히 병자성사다.
①먼저 성서적으로 볼 때 위에 인용한 사도 야고보의 말에도『앓는 자 있으면』하였지『죽을 자 있으면』하지 않았다.
이에 앞서 예수님은『성한 자는 의사가 필요치 아니하고 오직 병든 자가 필요하니라』 (루까 5ㆍ31) 고 말씀하시고 당신 사도들을 전교 보내실 때는 병을 고치는 것을 하나의 임무로 주시며 이를 위한 권능까지 주셨고 사도들은 예수님 분부대로 하였다.『마귀를 많이 쫓아내며 많은 병자를 기름으로 발라 낫게 하더라』(마르꼬 6ㆍ13).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직전에도『병자를 손으로 덮으매 곧 나으리라』(동 16ㆍ18) 하시며 사도들의 병자에 대한 임무를 재확인하셨다.
그러면 임종자는 방치하라는 것인가? 넓은 의미로 보면 임종자들도 결국 병자들이다.
②『교회의 전통적 또 보편적 관습대로는 병자성사의 본질적 목적이 사죄와 따라서 임종자의 성사라는 데에는 반대하고 있다. 그리고 죽을 것이 확실하지만 병자는 아닌 사형수나 파선을 당한 자, 또는 돌격 준비 중에 있는 군인들에게 이 성사를 베푼 일이 없다. 어떤 병자는 병자성사를 여덟 번 받았는데 여덟 번째에 성사의 효과를 보았다. 그러면 전에 받은 일곱 번은 확실히「종부」가 아니었다. (성사란 무엇인가? 129-130면)
③이 성사의 인효성으로 보아도 병자가 이 성사를 의식적으로 받고 안 받는 데에 따라 그 효과에 차이가 있을 것은 틀림없다.
이왕이면 유효하게 이 성사를 받게 하는 것이 정상적이 아닐까? 그래서 이 성사가 병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 자발적인 의뢰지 신부가 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억지로 베푸는 무슨 마술적 약이 아니다.
④이치로 생각해 보아도 앓기 시작할 때 이 성사를 받게 해야 한다. 혼인성사의 예를 들어 이 성사는 결혼생활을 한참 하고 나서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생활 시초에 받아서 결혼생활과 가정생활에 필요한 은총을 받게 하고 이로써 그 생활을 잘 하게끔 한다면 병자성사도 오래 앓고 나서 비로소 무슨 최후의 비방처럼 받을 것이 아니라 앓기 시작할 때 이 성사를 받음으로써 앓는 동안에 필요한 은총 즉 병고에 대한 인내심, 인내할 힘, 건강 회복, 마음의 안정 그리고 죄의 사함까지도 얻게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⑤또 병의 치료나 완쾌에는 의사들의 인술이나 약도 필요하지만 그것보다도 병자 자신의 심리적 정신적 자세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아 이 성사는 시초에 받게 해야 한다. 만일 완치가 안 되고 드디어 운명을 하게 된다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안심하고 태연하게 죽음을 맞이하며 주 앞에 나아갈 수 있어 구원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⑥실지로도 이 성사를 미리 받게 하는 데에는 유리한 점이 많다. 다급해서 신부를 청하러 가면 공교롭게도 부재중일 수도 있고 그 때문에 그냥 운명하면 신부를 원망하게 되며 신부 자신도 미안한 감과 가책마저 느끼게 된다. 그러나 미리 청하면 신부나 환자나 서로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가 준비를 갖추어서 성사의 효과도 풍부해질 것이다.
한편 가족들도 다 모여서 신부와 함께 병자를 위해 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면 환자에게 얼마나 위안이 되겠는가?
(다) 그러면 어떤 병자가 이 성사를 받나?
이를 규정하기란 매우 애매하고 곤란하나 대체로 다음과 같다. 죽기 직전이 아니라도 죽을 병자, 죽을 위험에 있지 않더라도 살지 못하리라 생각되는 병자, 나을 가망이 없는 병자, 장기간 앓는 병자, 대수술을 받을 병자 그러니까 간단한 수술을 받는다든가 위험하다고 생각되지 않는 병자들은 이 성사를 베풀기가 의심스럽다.
(라)끝으로 구체적인 실천 사항을 대강 말해 두는 것이 좋겠다.
위에 말한 병자가 생기거나 입원했을 경우 반드시 본당 신부에게 보고한다.
본당 신부나 교리교사는이 성사에 대한 교육을 잘 시킨다.
병자를 그렇듯 돌보시고 사랑하신 예수님을 본받아 본당 신부는 자기 구역에 있는 병자를 자주 돌보아 준다. (예. 월 1회 문병하거나 봉성체) 이들은 소외감마저 느끼고 신부는 이들에게 대한 책임도 있으니까.
본당 신부는 병자성사 요청이 있을 때 절대 거절하지 말고 속더라도 응한다.
병원 지도신부는 입원 신자들 그 본당 신부에게 알리고 이 통지를 받은 본당 신부는 적어도 한 번쯤 문병을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퇴원 후 신부와 이 신자가 더 가까워지게 된다.
병원 지도신부는 위에 말한 환자가 입원했을 때 입원 수속 중의 하나로 무조건 이 성사를 받게 하고 이를 본당 신부에게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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