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후 뽈렛트네 집에는 열여섯 명이나 모였다. 새로 꾸민 방을 축하하며 함께 저녁식사를 나눈 것이다. 이웃집에서 그릇 테이블 의자 등을 가져와야만 했다. 오랫동안 공론한 끝에 집 주인을 초대했으나 주인 또한 오랫동안 망설이던 끝에 거절했다.『일이 바쁘다』는 구실로 거절한 주인은 그래도 드니즈를 참석하게 하고 붉은 포도주 네 병을 보내왔다. 나중에 빈 병을 돌려 보내라는 조건부다. 아랍인 마호메드를 제외한 골목길 친구들이 모두 와서 귀엽게 잠들고 있는 샹딸을 위해 건배했다. 드니즈도 얼마 안 있어 에띠엔느 어깨에 기대 졸고 있었고 알랭도 루이 무릎에서 잠들었다. 앙리가 온 것은 꽤 늦은 시간이었다. 동맹 파업자 회의에서 돌아오는 길이다. 그는 피에르 옆으로 다가왔다. 입술을 꾹 다물고 눈빛이 흐려진 그의 얼굴은 마치 곧 토할 것만 같았다. 말 못할 비밀을 털어놓고 싶은 사람의 얼굴 표정은 언제나 같은 모양이다.
『공동 요구서 건이 해결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어. 그때까진 파업하는 것을 찬성할 수 없다구…』
『그자들은 어떻게 결정했나?』
『지금 투표하고 있는 중이야』
『그래 자넨 기다리지 않고 왔단 말이군?』
『난 내버려 두겠어. 이렇게 되든 저렇게 되든 속상하긴 마찬가지니까.』
피에르는 미소지었다.
『얼마 안 있어 자넨 상관들한테서 숙청 당하겠는 걸!』
『그러는 자네는?』
앙리가 대답하며 쓴 웃음을 짓는다.
피에르는 미소가 사라지고 말문이 막혔다.
『상관들한테서 숙청 당한다…』
어느 목요일 저녁미사에 왔던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이 생각났다.
『내 걱정은 말게!』
좌중의 화제가 없어지자 남자들은 하품을 하고 여자들은 시계를 보았다. 그리고 모두 루이에게 스페인전쟁 얘기를 해 달라고 졸랐다. 그것은 그네들의「일리아드」였다. 벌써 좌중의 사람들은 잔을 다시 채우고 테이블에 기대 앉았다.
『쉬… 조용히 해!』
루이는 앙리 쪽을 힐끗 쳐다보고는자기 무릎 위에 잠들고 있는 어린 알랭을 바라보며 다소 쓸쓸하게 대답했다.
『아니야 잠든 아이를 깨울 만큼 대단한 얘기가 못 되니 그만두지!』
피에르의 침대는 아무렇게나 만들어 놓은 야영침대 같았다. 아침마다 열심히 정돈을 하긴 하나 하루에 이십 명 이상이 그 위에 앉고 나면 말이 아니다. 근심과 고독에 짓눌린 사람들, 피로에 지친몸, 텅빈 영혼들이 앉았다 나간 이 침대는 이미 잠자리라기보단 여러 가지 사건의 보금자리다. 그러나 이 침대는 피곤한 피에르에게는 언제나 단잠을 이루게 하는 곳이다. 자리에 누워서 어린 때 하듯이 성호를 긋고는 바로 잠이 든다.
그런데 오늘 밤은 그렇지 않다. 두 마디의 말 때문에 그는 잠들지 못한다.
『그러는 자네는?』
피에르는 어두움 속에서 눈을 번쩍 떴다.
고독한 행로에 잠시 발길을 멈추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그러는 자네는?…』
『구질구질하게 생각하지 말자.』그는 소리 내어 말했다.
그러나 피에르는 눈을 뜬 채 냉정히 지난 6개월 간의 일을 되돌아보았다.
그래 벌서 6개월이구나. 지하철 입구에서 베르나르를 기다리던 날 저녁부터 아직 초면인 루이한테 담배를 한 대 주던 그날부터 6개월….
그런데?-그런데 현재 나는 공장 주인과도 잘 지내지 못하고 본당 신부하고도 사이가 나쁘고 이 거리에서 판을 치는 공산당하고도 다투고… 그래 그것이 어떻단 말이야? 난 가난한 사람, 버림 받은 사람들을 위해 여기 온 것이 아닌가?
좋아! 그렇다면 그들에게 뭘 가져다 주었지? 베르나르 신부는「쇼아지」의 공동 휴식처를 마련했고 앙드레 신부는「바뇨레」의 공동 식용품 상회를 만들었고 로베르 신부는「끄리쉬」의 공동택지를 마련했겠다…그런데 난, 피에르 신부는? 아무 것도 만든 것이 없다. 기구(機構)라는 것을「가장 위험한 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나 거지나 절망에 찬 버림 받은 사람들, 매일 이「조라」거리의 집을「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조심하지 않았다. 찾아오는 사람을 돌려보낸다는 것은 도저히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 벌써 빈 손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만도 어려운데 하물며 빈 마음으로 돌려보내다니!… 그런데 무엇을 그들에게 가져다 주었나? 일거리, 집, 임시변통 다 좋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를 주었는가?
『그렇구 말구. 그 분은 여기 계시니까!』
피에르는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그것은 공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앙리도 그것을 느꼈다. 직공들 사이에 새로이 싹튼 믿음. 상조정신, 화해, 단합 등…이 풍조는 가정에 퍼지고 셋집에도 번져 다른 공장에까지 전파되었다.
이 모든 것이「조라」거리 친구들의 힘이었다. 피에르가 여기 처음 도착했을 때 그렇게도 감탄한 것은 이 사람들 간에 이루어지는 무사무욕(無私無慾)한 생활 태도, 그 깊은 형제애였다.
『구찮은 일이 생겼나? 돈이 없나? 일자리를 잃었어? 우리집에 오게. 함께 끼어 자지… 집의 애가 병이 났다고? 우리 어머니가「브로아」에 사는데 내 친구가 트럭 운전수니까 그리로 데려가지…』
아직 이들은 복음은 모르고 있었으나 그것을 생활하고 있었다. 그래서 베르나르는 항상 이렇게 말하곤 했다.
『우리가 이 사람들 생활 태도에 개종을 해야 하네』
그런데 매일 조금씩 그것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활기 없는 긴 하루 하루! 죽음과 같은 지루한 나날이 이미 그들에게는 전 인생이 아니게 되었다.
거의 매일 밤 어느 한 친구네 집에 모인다. 우선 정치 얘기와 조합 얘기의 꽃을 피우지만? 이것이 오랜 습관이니까? 피에르가 다른 얘기를 하면 그들은 귀를 기울였다.
이「싸니」에 다른 또 하나의 주민이 있으니 그는 그리스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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