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이 영화는 처음부터 주어진 한계점 위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해야겠다. 엄숙한 종교영화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일반적인 통념의 흥행작품이라는 관점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왜색 사무라이 영화류의 발상 위에 줄리아라는 신앙적 절개를 조립시킨-따라서 위주가 되어야 할 줄리아의 신앙은 뒷전에 처지고 오히려 스토리의 운반을 위해 설정돼야 할 검술장면과 도꾸가와 이에야쓰(德川家康)의 병적인 엽색행위가 과다하게 등장함으로써 이 영화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세속적인 영화를 버리고 천주의 품에 귀의하는 한 성녀의 이야기가 밀도가 얕고 생동감이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성구 감독의「줄리아와 덕천가강(德川家康)」은 임진왜란 때 소서행장(小西行長)에 붙들려 그의 양녀가 된 줄리아(신숙 분)의 신앙적 고행을 그리고 있다.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면 덕천이 득세하자 그의 시녀가 된 줄리아는 천주교도들을 탄압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절개와 신앙을 지킨 나머지 신진도(神津島)로 유배돼 일생을 마친다는 이야기다.
영화는 줄리아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일본 신진도 현지에서 반 이상 촬영 비교적 템포가 빠르지만 도꾸가와에 항거하여 말발굽에 희생되는 미카엘 신부의 트릭(머리) 등은 아직도 우리 영화기술의 후진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대로 그 밑바닥에는「성 베드로가 죽음이 기다리는 로마로 돌아가듯」「골고다를 오르는 예수님처럼」피의 귀양길을 밟는 한 여인의 순결함이 짙게 묻어나고 있다. 그것은 도꾸가와의 표현처럼「한겨울 서리 속에 피어난 국화꽃」과도 같은 고귀한 순교였다.
이 영화의 주축은 줄리아, 덕천가강(허장강 분) 소서행장(김진규 분) 그리고 줄리아 대신 몸을 바친 크라라 등이 이루고 있으나 부리부리한 눈매로 지하전도를 하는 또 하나의 신앙적 분신인 미카엘 신부(한재수 분) 꼭 필요할 때 나타나 줄리아를 돕는 정체불명의 자객 등이 상징적인 월견초의 비유 등 세련된 대사와 함께 한층 빛나고 있다.
『죽음은 한때의 고통이 아닙니까. 영생과 바꿀 수는 없습니다』- 도꾸가와의 잔혹한 보복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은 줄리아ㆍ이 영화의 테마는 이 마지막 대사에 집약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줄리아 역의 신숙양 메이크업이나 풍기는 인상이 너무나 일본적이다. 운반된 이야기의 분위기가 없었던들 저항감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각각 다른 인물이지만 묘지 참배신과 중반부에 나오는 이향자 오랜만이고 첫 장면에 잠시 등장하는 작가(이형우)는 애교가 있다.
「장군의 수염」등 가작을 내놓은 이성구 감독 좀 외도를 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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