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숙의 남편이 어째서 자기를 불러 세우는 것인지 또 어떻게 자기가 예관수를 안다는 것을 낯선 사나이가 알고 있는 것인지 미사는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용건은 뭐시죠?』
미사는 송곳처럼 파고드는 사나이의 끈질긴 시선을 피하면서 약간 짜증 섞인 말투로 물었다.
사나이의 방약무인의 눈초리가 오싹할 정도로 싫었다.
『여기서 말씀드리기는 좀 난처한데요 어디 이 근처 다방에라도 가서…』
사나이는 사방을 휘돌아 보면서 말했다.
사람들의 눈의 띄는게 언짢다는 것인지 헤아릴 수가 없었지만 미사는 그를 따라 다방 같은 곳까지 갈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전 그럴 시간이 없는데요. 하실 말씀이 있으면 간단히 해주세요』
『한 선생은 혹시 주동숙이란 여자 이름을 들으신 적이 있습니까?』
『없는데요. 주동숙씨가 누구신지 저는 금시초문이에요』
미사는 아까 유 박사가 보여주던 신춘광고란을 통해 처음으로 주동숙의 이름을 알기는 했으나 사나이의 태도가 하도 수상쩍어 아예 모르는 척 해버리기로 했던 것이다.
『그 이상한 일이로군요』
사나이는 또다시 송곳 같은 눈길로 미사의 눈 속을 파고든다.
『이상하다니 뭐가 이상하다는 거에요. 내가 주동숙씨를 모른다해서 이상할게 뭐겠어요』
『그것이 바로 예관수라는 사나이의 술책이다. 그런 말씀이지요』
『네?』
『몹시 불쾌하신 표정을 지으시는군요. 그럴만도 하지요. 비단 한 선생이 아니더라도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숨겨진 여자가 있고 숨겨진 사연이 있다는 걸 곧이 듣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요』
미사는 하도 기가 막혀 서서히 걸어가던 발길을 우뚝 멈추고 사나이를 정면으로 쏘아보았다.
『댁은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겁니까 첫새벽에 정신병원에서 탈출해온 사람처럼…』
『허허 역시 흥분하시는군요. 세상 사람을 다 속여도 이 사태진이만큼은 속이질 못 합니다』
『속이고 말고가 어디 있어요. 나는 예 선생님과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이에요. 예 선생님과는 그런 깊은 사연을 털어놓을만한 시간도 아직 못가진 형편이군요』
『이거 왜 이러십니까. 며칠 전에 인천 바닷가에서 밤이 깊도록 두 분이 서로 얼키고 설키면서 통곡하는 모양을 못 본줄 아십니까? 아무런 관계없는 남남이라면 감히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인적도 없는 바닷가서 말이에요』
이래도 나를 속이겠느냐는 듯이 사태진은 자신만만한 태도로 미사를 건너다본다.
그 입가에는 역력히 냉소마저 감돌고 있었다.
미사는 잠시 아랫배에 힘을 주고 심호흡을 했다.
이런 사나이에게는 섣불리 변명을 늘어놓았다가는 도리어 성가시게 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남이야 무엇을 어떻게 하든 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이에요』
미사는 더 듣기도 싫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관계가 있으니 하는 소리가 아닙니까. 나는 한 선생님마저 나같은 피해자로 만들기 싫어서 이러는 겁니다. 이건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오직 인간적인 충고일 따름입니다』
『피해자요? 나는 피해자가 아닌데요』
『누구라도 피해를 입고 있는 그 당장에는 피해자라는 자각이 없기 마련이죠. 스스로 피해자라는 것을 자각한 후에도 이미 때가 늦었다. 이런 말씀예요』
사나이는 추근추근 뒤따라 오면서 열변을 토한다.
미사는 못 들은척 그대로 가다가 버스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렸다.
사나이는 거기까지 쫓아왔다. 쫓아오는 동안 줄곧 무엇이라고 주워 섬긴다.
『아내를 빼앗긴 남편의 심정을 짐작해 보십시요. 저는 아내를 빼앗긴 못난 놈이에요. 못난 놈이지만 또 다시 그 자의 마수에 걸려드는 순진한 여성을 보니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이 말입니다. 아시겠어요?』
사태진은 자기의 가슴팎을 앙상한 주먹으로 퍽퍽 쥐어박으며 정녕 안타깝다는 듯이 오만상을 찡그려 붙였다.
『피해자야 어디 나뿐입니까? 아내는 지금 행방마저 묘연합니다. 그 가엾은 것이 어디 가서 개죽음을 당했는지 그걸 누가 압니까? 어째서 선량하고 순진한 내 아내가 집을 버리고 나갔겠습니까? 집에는 꽃다운 딸도 있습니다.
결혼생활 17년이라면 누구도 감히 어쩌지를 못 하는게 상식이 아니겠습니까. 네? 안 그렇습니까? 그런데 그 예가란 놈은…』
사나이는 이를 바드득 갈면서 치를 떨었다『아내를 잃은 나는 정신적으로 폐인이나 다름없어요. 아 그렇고 말고요. 한 선생도 내 몰골을 보시는 순간 내가 폐인이라는 것을 느끼셨을 겁니다. 세상에서 둘도 없는 아내가 외간남자와 정을 통하자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죠. 생각해보십시요. 어떻게 제정신일수 있겠습니까. 나는 직장에서도 쫓겨났습니다. 나는 대체 어떻게 하면 된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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