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의 날」을 보내면서 언론부재의 우리 잡지계에 저널리즘으로서의 기능 회복을 촉구해본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가치관을 전개하는데 잡지의 제1차적 임무가 비롯된다 할수 있지만 오늘에 와서 한국의 잡지문화는 겉으로 보기엔 퍽 다양해 보이나 내적 빈곤은 갈수록 더해 간다. 그것은 한 마디로 정론의 제시가 없기 때문에 단편정보의 제공에 그치기 때문이다.
현대는 정보의 흥수 시대다. 정보화 시대에 전면정보를 통한 종합적 정리로 그 시대를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해야 할 본래의 기능이 잡지에는 지워져있다. 그러나 언론 통제의 일환으로 잡지가 전면현실에 접근하지 못하고 단편정보를 그나마 감각적 취미기사나 조작해 내고 오락기능에 몰두하게 된 사정은 문화의 병폐현상이 아닐 수 없다. 저속 영합 취미로 잡지의 질적 저하가 현저해졌으며 심지어는 가치관을 포기하고 퇴폐풍조를 조성하는 데 잡지가 앞장서기도 한다. 절박한 현실성이나 당면한 시사성을 배제하고 한갖 도의 교재 구실을 하거나 허황된 미래의 비젼으로 독자를 우룽하면서 시민사회의 발전과 민족의 역사를 저해하기 일쑤라면 사태는 자못 심각하다.
서구에서의 잡지문화는 18세기 말경 시민혁명이 완성단계에 접어들 때 본격적으로 번창해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1896년「독립협회보」를 효시로 해서 개화 이념과 근대화 이념을 구현하자는 거기에 잡지의 사명이 있어왔다. 1920년대「개벽」지로 대표되는 한국의 잡지문화는 개화사상 고취의 근대 이념 정립과 민족자주독립의 민족문화 창달에 핵심을 두어왔다. 잡지의 부르짖음이 신문에 못지않은 영향력을 발휘해 온 사실은 적어도「사상계」지에 이르기까지 실증되어 왔다.
그러나 작금의 우리 잡지들은 저널리즘의 기능을 외면한 채 안일한 잠꼬대를 일삼고 있는 형편이어서 문화적 역조현상을 드러낼 뿐이다. 예컨대 신동아의 경우「사회복지의 조건과 현실」이니「현대국가와 사회보장제도」니 해서 사회복지의 대책을 세워 당국의 국민복지연금제도에 부응하는 성의를 보이고 있으나 대다수 국민이 아직도 생계의 위험에서 해소되지 않은 이때 그다지 실감있는 시도로 여겨지지 않는다. 세대지는 일본에 대한 화살을 던지는 기획을 세워「경제협력인가, 경제원조인가」, 「일본신문의 대한(對韓)잠재의식」, 「보이지 않는 제국의 시대」등으로 새삼스레 민족의식을 고취하려든 흔적이 보인다. 그러나 그 의도 자체부터가 비판의 여지는 있다. 한ㆍ일국교 정상화 때는 국민의 여론을 외면하다시피 하고 이제 와서 항일 논조를 진작하는 이면의 사정은 다름 아닌 김대중 사건에 대한 정책적 배려의 반론으로 여겨진다. 그것이 국위를 선양할 행동도 아니었고 보면 일본으로 부터의 혹평도 어느 정도 감내해야 옳은 일인데 원천적 인원상 복구도 없이 먼저 감정적인 분풀이부터 하자는 인상은 비논리적 착상이 아니랄 수도 없다.
한편 월간중앙은 김윤수(金潤洙) 교수의「이성의 복권은 가능한가」라는 권두의 논문을 통하여『이성의 회복은 오늘날 전세계적 규모로 만연되고 있는 온갖 비이성적인 것 비인간적인 것을 파악하고 대결하는 일에서 구체적인 현실비판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것은 결국 1차적으로는 지식인의 자기 회복에 맡겨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도덕적 재무장의 경구로서 일단 받아들여질만 하다.
그러나 다극화시대의 화해무드 이해에 신동아지의 국제정세를 다룬 글도 큰 도움이 되어 주지만 화해의 성년을 특집으로 다룬「경향잡지」11월호를 읽으면 인간 전체의 쇄신과 모든 관계의 새로운 화해가 무엇이며 어떻게 가능한가를 깨닫게 된다.<내 목숨, 내 전부를 불태워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여 새 인간이 됨으로써 참된 화해와 구원의 길을 찾자는 김수환 추기경의「화해는 순교정신에서」를 비롯하여 성덕의 향기가 풍기는 성직자의 길을 제시한 정신적 주교의 기고, 수도자는 남을 위해 고통받기를 즐기며 화해의 다리 구실을 해야 한다고 한 김승혜 수녀의 다짐, 그리고 자유를 되찾기 위한 화해의 길을 보인 김몽은 신부의「속죄와 화해」, 고귀한 사랑의 실천으로 한국교회의 전통을 계승 발전하자는 이원순 교수의 글 등 인간화해의 복음이 도처에 깔려있어 반추해 볼만하다.
하지만 오늘의 이 역경에 처한 잡지 저널리즘이 회복의 길을 찾자면 무엇보다 지식인의 일대 용단이 요청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용기 있고 슬기로운 사람 앞에 역경이란 없는 법이 아닌가 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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