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해대책위」가 1단계「식량보조사업」에 이어 수해농토를 수해 이전 상태로 복구하는 2단계「생산기반 조성사업」을 벌인다는 소문이 전해지자 수해마을들은 다투어 보조를 신청해왔다.
물이 빠지고 난 후 무릎까지 올라오는 감탕으로 변해버린 농토를 복구하는 일이야말로 농민들에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작업이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수해지역의 군수 면장들도『왜 우리는 보조를 신청치 않느냐』는 주민들의 성화에 평소 생각지도 않았던「원주 가톨릭센타」(재해대책위 사무실이 있는) 출입을 해야했고 원주 인근의 원성군 주민들은『타도(他道)까지 도와주면서 우리는 모른 채 하느냐』고 은근히 불만이었다.
수해참상을 적어 원조를 청하는 서신이 하루에도 10여 통씩 날아왔고 어느 본당 신부는『내 본당 구역의 이 마을만은 꼭 대상에 넣어달라』고 압력(?)을 가해오기도 했다.
달라는 곳은 많고 자금은 한정되어 있어 자칫 비난이 일기 쉬운 선정작업은 각 도(道)사회국장 가계인사로 구성된 중앙위원회가 지연이나 혈연 종교배경을 초월한 최종결정을 내림으로써 별 마찰 없이 마칠 수 있었다.
「재해대책위」는 일단 대상이 결정되고 주민들의 사업계획이 통과되면 즉시 자금을 지출, 한시라도 빨리 복구작업을 펴도록 해주었다.
이런 일이라면 번거로운 행정 및 사람절차에 익숙해온 농민들인지라 으레 있기 마련인 인사치례로『점심이라도 같이하자』고 제의 했다가『그런 돈 있으면 공사에 보태 쓰시라』는 점잖은 핀잔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웃어넘기는 것이 편한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던 것.
점심대접은 커녕 오히려 가톨릭센타에서 파는 50원짜리 칼국수 한 그릇식 얻어먹고 돌아갈 때 농민들이 느낀 감회를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필요한 사람에게 한푼이라도 축내지 않고 전해주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에서 보여준「재해대책위」의 이 같은 배려를 농민들이 모를리 없고 나아가 그들이 받은 사업자금에 더욱 큰 책임감을 느낀 나머지 마을이 한 덩어리가 되어 일을 하고 있는 것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충북 중원군 소태면 복태리 마을은 3단계「부락개발 사업」대상 마을로 선정되어 산양 양어 한우 3개 사업 지원자금 5백70만원을 받아 지금 산양 2백두 한우 20두 양어장 2개소를 90호가 협업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 중 15호가 산양 작목반을 구성, 산양목장을 돌보고 있는데 처음해보는 일인데다 여기저기서 양을 구입해온 때문에 풍토에 익숙치 못한 양 4마리가 시작 후 3개월 후에 죽었다.
처음 두서너 마리가 죽자 조합원들은 사료관계로 생각 당번이 아닌데도 나서서 고운 풀을 베어다 먹이고 축사를 청소해주는 등 정성을 기울이는데도 계속 죽어가니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밤마다 조합원 회의를 열고 대책을 숙의 끝에 그 중 약한놈 20여 두를 집에서 기르기로 하고 나누어가졌다. 어느 회원은 20여 일간 방안에서 돌보던 양이 죽어가자 조합장집에 떼먹고 와서『어쩌면 좋으냐』고 대성통곡을 하더라는 것.
그런가하면 수로복구 사업비로 1백30만원을 타갔던 강원도 원성군 어느 마을은 1주 만에 30만원을 되돌려왔는데 이유인즉『사업계획을 다시 검토한 결과 1백만 원이면 충분해 30만원을 더 빚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수해농토 복구사업에서 한걸음 나아가 수익사업을 지원, 자립터전을 마련해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 3단계「부락개발 사업」역시 아직 큰 차질 없이 이런 분위기 가운데 진행되고 있다. 대상마을은 강원 경기 충북 3개도에 걸쳐 38개 마을.
이 38개 마을에 한우 양돈 양초 양어 산양 부녀구판사업, 마늘재배 농기구 뱀사육 등 9개 사업별로 102개 조합이 구성되어 있다.
사업별 조합수와 규모를 보면 한우조합 30(421두) 양돈 12(289두) 산양 4(406두) 양어 2(잉어 4만마리) 구판조합 7개소 약초66(24, 675평) 농기구18(경운기 48대) 마을재배3(2처접)으로 조합원은 총1702세대.
여기에 투입된 자금은 9천6백23만원으로 자금면에서 4단계 사업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2월말로 마무리된 1단계사업 이후 현재 벌이고 있는 농민지원 2ㆍ3단계 사업과 광부지원 사업 대상 마을 수는 63개 마을에 달하고 있는데 마을을 순회하는 상담원 4명을 합해 12명 직원이 감당하느라 눈코뜰새 없는 형편이다「재해대책위」집계에 의하면 지금까지 11만9천여 명이 식량지원을 받았고 1만4천8백92세대가 농토복구와 부락개발 사업의 지원혜택을 받고 있다. 사업실행을 맡고 있는 집행위원장 김영주씨는 이 사업의 전망에 대해 농민들의 진지하고 성의 있는 태도로 미루어보아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면서『금년 말까지 3단계 사업을 일단 마무리되어 종합평가를 내린 후 4단계 사업의 진로를 최종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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