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리스도교와 이교
전 호 1ㆍ2 즉「그리스도교와 타종교」및「세례와 입교」에서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교에 대한 교회의 태도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교 이외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만날 때 단적으로 비그리스도 교도로서 만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든지 그리스도와의 접촉을 가진 자로서 대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어떻든 그들이 이교도들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만나고 싶은 사람 혹은 이미 알려지지 않은 그리스도 교도라고 좋을 것이다.
이교도들도 이미 신과의 경험이 있었고 어떤 때는 우리들의 이해를 넘어서 어떤 무한의 세계를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자기 실존의 시야를 넓히고 자기인식의 한계를 넘어선 미지의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럴 때에는 비록 외부에서 복음의 소리를 못 들었다 하드라도 이미 하느님의 계시는 이 사람 속에서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이 은총이 객관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하지만 주관적으로는 항상 의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외적으로 그 사람에게 만나지는 계시는 그 이전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다른 계시가 아니라 개인적인 깊이에서 이미 경험하고 있었던 계시인 것이다. 그것은 다만 객관적인 개념을 가지고 표현된 것에 불과하다. 만일 교회가 복음화 활동의 대상으로 하는 이교도가 그리스도교와 접촉하기 이전에 자기의 구원을 희구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발견했다고 할 때 그것이 그리스도의 구원의 혜택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알려지지 않은 신앙자 또는 미지의 그리스도 교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복음을 전하는 일로써 그 사람은 외적으로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표현되는 것이다. 그 사람들에게는 내적인 여러 가지 조건과 바탕이 이미 그리스도화 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 교리문제가 방법적으로 논의 되어야겠다.
한국의 경우를 생각한다면 지금까지의 교리교수법은 시정되어야 하겠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교리책은 전부가 구라파식으로 엮어졌고 이미 수 세기를 두고 바꿔놓은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전문가들이 한 일이기는 하나 너무 구라파적인 방법이라 아니할 수 없다.
현대한국 복음화의 방법론을 말한다면 그런 이방인적인 방법에서 탈피해야겠다. 그 이유는 이렇다. 이스라엘 땅에서 시작된 크리스찬이즘이 활짝 개화하기는 구라파이고 구라파에서는 2천년 가까운 세월을 이 문제로 애써왔고 그러므로 구주사람들은 이미 오랜 세월을 크리스찬이즘에 젖어왔고 몸에 베었을 뿐만아니라 모든 일상생활에 그리스도교 사상이 스며들어 있다. 속담 하나에도 구약의 성경구절을 인용할 만큼 생활화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대부분이 유아세례를받았고 어려서부터 종교교육을 받아왔다. 그들에게 교리책이라면 그리스도 사상을 보다 실제적으로 생활과 합치시키는데 주력을 두었다.
그들에게는 하느님의 존재 증명보다 어떻게 하면 하느님을 더 착실히 공경하는 것이냐가 문제다. 축첩을 하고 간음하는 것이 왜 죄냐 하는 것 보다 어느 한계까지가 간음의 죄로 판단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들이다.
그렇다면 유일신 아닌 범신론적 사회에서 젖어온 우리가 간음 자체가 왜 죄가 되느냐 하는 이론사상에서 수십 세기를 생활해온 우리에게 지금의 교리교수 방법은 일고의 여지가 있어야겠다. 한국복음화의 실제문제를 말하자면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비록 천주십계와는 좀 다르다 하드라도 유교사상과 불교사상에서 애인사상은 어느 민족보다 우월하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듣도 보도 못한 아브라함 이사악의 말보다 인간의 문제를 말해주는 천주십계부터 시작하는 것이 더 좋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계명이 우리생활과 거리가 멀지않다는 것을 말해줌으로써 친밀감을 주도록 해야겠다. 구약이 중요하고 성경없이 교리도 없겠지만 그것은 원칙론이고 실제 방법문제, 한정된 지역과 민족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복음화의 방법론은 무의미하지 않을까?
지금까지의 교리서보다 그 방법을 반대로 목차를 꾸미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미 해결된 문제이기는 하나 한민족의 조상에 대한 제사문제를 보더라도 그 민족이 가지는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유일신 이외의 것은 전부가 우상이고 미신이라는 단순한 생각 때문에 교회가 얼마나 많은 손해를 보았고 불필요한 잡음을 사회에 던졌던가를 생각해 볼 때 교리의 방법문제도 구주적인 방법이 항상 어떤 민족에게도 맞는다고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이 가지는 선민사상이 신약에 와서 크리스찬들에게도 너무 뿌리 깊게 박혔기 때문에 이민족은 바로 이교도 취급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바로 그런 구주사람들의 방법과 사상을 되풀이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재고의 여지가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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