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戰線(전선)에서] 尙州(상주)
한 본당에 13공소
지도자를 부르고 있다
발행일1960-01-10 [제211호, 4면]
상주땅을 오고보니 자고로 명주(名紬)의 산지로 이름있는 곳인지라 허수룩하게 옷차림한 나그네이지만 무슨 거래나 될 것으로 기대함에서인지 대접이 은근하다. 그러나 객주와 나그네의 심산(心算)은 각도가 엉뚱하다.
『천주교회가 어데있느냐』고 물으니 어리둥절한 객주는 한참만에야 내뱉드시 『서문동에 가서 또 물어보라』는 것이다. 황혼이 짙어가는 밤거리는 그다지 번화하다할 수 없으나 지방도시치고는 깨끗하고 형광등은 여기서도 밤하늘 아래서 피는 꽃이라고나 할까! 명주의 산지로서는 왕자를 자처하는 상주의 중심가는 나이론이 세기의 물결을 타고 위세를 과시하는 앞에서는 한갓 구시대의 유물인듯이 무세하여만 보인다. 물어물어서 성당에 이르렀을 때는 어둠이 짙은 때이다. 두루 살펴보니 이전에 사진에서 보든 것과는 영딴판의 것이다. 웅장한 현대식 성당, 사제관, 강당이 정연히 자리잡고 있다. 주인을 찾으니 이미 환갑을 지낸 노사제 「엘리기우스 코오네르」신부는 『야야 이거 어둔밤에 어찌된 일이냐』고 사뭇 반가워한다.
몸시 마음조리든 첫째과제인 『정기기고(定期寄稿)』로 제법 시간이 소요되었으나 이해깊은 동사제는 출판물에 대한 평소의 관심에서 마침내 수락하여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듯 한결 가슴이 고요해진다. 주고받는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데 동사제는 『나는 1956년 7월 8일 나의 제2고국인 한국에 다시 돌아왔다.
반달남짓해서 이곳으로 발령되어 7월 26일 본당에 부임하였다. 9백명의 신자를 가진 이 상주로! 현재 본당관내 12개면에 13개 송소 2천8백명의 교우를 거느리고 있다. 대개는 5·6십평의 강당들이 세워졌는데 전교하기에 기틀이 잡혀있으나 지도자의 부족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뿌려진 복음의 씨가 성장개화되기 위해서 힘드려야할 것을 열심히 강조한다.
우리나라에 있어서 가톨릭에의 관심과 이해는 고조되어 있는데 이 시기가 무한정 계속된다고 할 수 없으니 이 중요한 시기를 잘 포착하여 결실케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신부님! 사람의 마음은 매한가질터인데 한국땅 생각만해도 몸서리칠 정도가 아니었겠읍니다』하고 지난날 북한에서의 수난생활을 상기케하자 동신부는 홍조를 띄면서 『목자의 일은 모두가 어렵게 마련되었다. 고생이라든지 환대를 받는다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직 염원하는 것은 어떻게 해서라도 여하한 노력을 해서라도 천주의 신민을 한사람이라도 더 증원시키는 일이다. 전교가 잘되면 그것으로서 모든 노고는 다 무소(無消)되는 것이고 또 우리에게 갚어지는 풍복한 보상인 것이다.』라고 들려버린다.
그는 포교생활에서의 가지가지의 사정을 술회하면서 문득 저 종도 바오로의 『바오로는 심으고, 아포로는 물주고, 천주 자라게 하신다』는 말을 상기케 한다.
치운 겨울밤이지만 시간이 깊어질수록 마음은 더욱 흐뭇해진다. 교우들의 생활난을 걱정하는 한편 그러나 신자들이 자기 생활에서 응분(應分)의 성의(敎務金)를 다해야할 교회법규에 입각한 의무를 일깨워주기도 하고.
이 이상 더 시간을 빼앗을 수는 없기에 서운하지마는 하직할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