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교의 세력이 동과 남에서 유럽의 그리스도교 판도를 위협하자 교화의 종용과 군주들의 협력과 베르나르도 같은 정신계의 지도자들의 권유에 의하여 유럽에는 성지 팔레스타인을 회교도의 손에서 탈환하고 이슬람을 격파하여 그리스도교와 유럽을 방어하자는 종교적 정열과 정치적 야심이 뒤섞인 십자군이 일어났다.
11세기 말에서 2백년 동안 전후 7차에 걸친 십자군의 동방원정은 일시적인 성공을 거둔적도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실패였고, 그 후유증으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반목을 가중시키고 사라센(이슬람) 세력을 크게 물리치지도 못하였다.
포교정신에서 십자군 사건을 분석하면 표면의 실패보다 더 큰 실망을 자아낸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랑과 희생으로 전파되는 것이지 칼이나 군대로써 전할수 있는것이 아닌데, 이 불행한 사건에 인노센트 3세 같은 대교황이나 성 루이 왕이나 성 베르나르도 같은 석학(碩學)이 관련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이런 경황 속에서도 십자군에서 귀향하는 무사들을 통하여 아리스토텔레스를 위시한 희랍철학이 다시 소개되어 스콜라철학이 발생하고, 새로운 정신으로 탄생한 도미니꼬회와 프란시스꼬회 등 탁발수도회의 발전으로 설교와 교육과 학문에 의한 포교활동이 다시 전개되었다. 보나벤뚜라와 토마스 아퀴나스로 대표될수 있는 스콜라 신학은 그 자체로서 거대한 그리스도교 세계관의 정화일 뿐아니라 수많은 포교사들의 정신적 무장의 바탕이 되었다. 이 포교사들은 유럽내부 뿐아니라 멀리서 서진하는 몽고의 세력과도 자주 접촉하면서 포교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들중에 로저 베이꼰같은 이는 학문과 지혜로써 포교할 것을 13세기말에 주장하였고, 14세기에는 현지에 파견되는 포교사들을 위한 동방어학교가 설립되기도 하였다. 이런 추세는 그 당시에 갑작스럽게 팽창한 몽고가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외교적 호의를 보임에 힘입어 자주 선교사들이 몽고에 출입하였고, 나중에 몽고가 중국에 군림하여 원나라가 되었을때 북경에는 최초의 성당이 세워지고 1370년에는 북경에 극동 최초의 대교구가 설정되었고 당시 교세는 3만명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은 정치적 세력에 힘입은 것이었기에 미구에 원이 망하고 명조가 들어서면서 가톨릭의 중국포교는 기울어지기 시작하였다. 14세기에는 수도회 포교사들이 아프리카 서안에 도달하고 당시의 해운국(海運國)인 이스파니아와 포르투갈은 서로 다투어 해외점령지에 포교와 식민세력을 부식하기에 분주하였으며, 이런 정책은 15세기에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되면서 더욱 박차를 가하여 남미대륙은 서ㆍ포 양국에게 분활되어 식민과 포교가 군대와 무역상과 탐험가와 포교사의 합작으로 진행되었다.
16세기에 유럽의 종교개혁은 서방교회를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로 양분하여 서로 세력 확보에 급급한 중에서도 새로 결성된 예수회의 포교사들은 트리엔트 공의회의 정신으로 무장하고 극동에까지 진출했고 「로마」에는 포교업무를 담당하는 부서가 설치되어 다음 세기에 포교성으로 개칭되었다.
17세기에는 라자리스트회가 진출하고 세계 최초의 재속성직자로 조직된 빠리외방 전교회가 극동에 파견되었고 종교 개혁의 여파를 수습한 프로테스탄트도 신대륙과 극동에로 포교의 길을 떠나기 시작하였다. 프로테스탄트의 포교활동을 여기에 소개할 지면이 없으나 영국과 화란이 주동이 되었으며 독일은 좀늦게 참여하였다. 화란이나 영국이 그렇게도 악착스럽게 인도를 착취한 도구였던 동인도회사의 설립목적은 본시 인도인에게 포교하기 위한 조직이었다면 독자들이 놀랄 것이다.
18ㆍ19세기의 포교는 세계적 규모로 커져서 사하라사막에서 알라스카 에이르고 교단별로는 모든 그리스도 교파들을 망라하고 국가별로는 유럽의 모든 그리스도교국과 미국과 카나다까지 합치고 포교지에서 속출하는 본방인 성직자의 증가와 함께 아프리카는 상당한 성과를 내었으나, 전통있는 큰종교와 고유한 문화전통이 뿌리깊은 아시아에서는 들인 노력에 비하여 크게 성공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근세 포교사에 있어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순교까지 한 선교사들의 거룩한 노력을 경탄하고 존경하면서도 그들의 본국인 열강들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착취의 식민정책 때문에 왕왕선교사들의 참된 뜻이 현지민들에게 오해를 산 것은 천추의 한이오 또 신앙생활의 서구적 표현까지 그대로 이식하려는 포교정책 때문에 아시아에서 아직까지도 그리스도교가 외래종교로 머물러 있다는 것은 지극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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