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꼬 10장 46~52절 루까 18장 35~43절」
색채 소개=선뜻 보기에 이 성화는 약간 어둠침침하나마 화려한 느낌을 준다. 그림 전체의 윗부분은 거센 파도물결과도 같은 짙은 푸른색으로 그려졌으며 맹인 뒤에 서있는 성문은 붉은색 검정색 흰색들이 많이 섞여서 어딘지도 모르게 웅장한 성문을 연상케해주는 듯하다. 예수와 제자들의 의복색깔은 대개가 비슷비슷하게 푸른색과 고동색으로 그려졌으나 머리색깔이 각각 다르게 보이는 것이 이색적이다. 예수님 바로 뒤에 서있는 제자는 나이 많은 베드로인지 머리와 수염이 희고 제일위에 서있는 제자는 젊은 요한인지 머리색깔이 검다. 맹인만이 눈을 지그시 내려 감고 있고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이나 그 광경을 뒤에서 보고 있는 제자들의 눈은 모두 경이에 찬 표정의 눈들이다. 또 예수와 함께 제자들을 둘러싸고 있는 후광의 테두리는 검정색으로 선명하고 가장자리에는 흰점이 박혀있고 그 안에는 붉은색의 선으로 그려져 있다. 그들이 디디고 있는 땅은 누런빛의 노랑색깔과 흰색으로 그려졌다.
(역자 주)
주님의 십자가 후광에는 거의 언제나 금빛바탕에 흰 문자가 새겨져있는데 여기 보이는 문자는 아주 선명하고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LVX, LUX, 빛이다. 요한복음에서 그분은 자신을 때때로 이같이 칭하셨고 복음작가 역시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도 그런 뜻에서 말했다. 이미 시레온이 그분을 민족들의 빛(루까2, 32)이라고 불렀으며 교회의 신앙이「빛들의 빛」이라고 고백하였다. 빛은 환하게 비추고, 빛나는 또 빛 속에서 빛으로 변한다.
『여러분은 세상의 빛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여러분의 빛을 비추십시오!』(마테오5ㆍ14와16) 사도들은 신자들에게『여러분이 전에는 어두움의 세계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주님을 믿고 빛의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에페소5ㆍ8)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초대교회에서는 세례를「깨우침, 인식」이라고 불렀으며 복음에서 언급되는 여러 차례의 맹인 치유에서 세례와 다시 볼 수 있게 되는 힘의 상징들을 보았다. 우리는 이러한 정신에서 이 성화「예리고의 맹인이 치유되는」-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공관 복음사가들은 거의 같이「마테오만이 그 맹인이라고 했다」(마테오20, 29-30)이 모습을 썼다. 마르꼬는 이 불행한 자가 티매오의 아들 바르띠메오라는 이름까지 알고 있다. 마르꼬는 이 사실이「예리고」에서 떠날 때에 있었다고 말하며 루까는 예수가「베타제」와「베타니엔」으로 가시기 전에 벌써 이 맹인을 만난 후「예리고」에 이르러 세관장인 자케오의 집에 들어가셨다고 말한다. 아무튼 이 일은 성문 앞에서 있었음이 분명하다. 성문 앞은 그늘이 져있고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지나는 곳이니 이 맹인인 거지는 좋은 자리를 찾은 것이다.
그곳을 지나는 모든 이들에게 그는 구걸을 했다. 어느 날 그는 나자렛 예수가 그곳을 지나간다는 소리를 듣고 예수께 메시아라고 부르며 돈을 달라고 하지 않고『다윗이 자손이신 예수님 제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요』라고 소리질렀다. 그러자『내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요?』하고 예수가 묻자『주님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하고 그는 대답했다.
그가 바라는 것은 다윗의 자손인 메시아의 자비였다. 이제 주는 참으로 머리를 두르고 있는 후광 속에 쓰여진 황금색 문자처럼-「빛」으로써 자신을 보여주신다. 그리고 그는 다 낡아빠진 누더기를 걸치고서 작고 가련하고도 흉악한 얼굴을 하고 서있는 그에게로 향해 손을 들어 강복하면서『눈을 뜨오.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살렸소』하고 말씀하신다. 사람들이 서있는 흰색과 노랑색의 땅바닥이 희미하게 보일뿐 다른 모든 세부적인 것은 묘사되지 않았다. 푸른색 바탕의 성문에 금색으로「예리고」라고 쓰여진 거창하고도 아름답게 꾸며진 성문과 조망이 없이 겹쳐서 있는 집들과 지붕들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또 왼편에 주님을 동반한 여섯 명의 사도들이 몰려 서있으며 제일 앞에서 기적을 보며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있는 베드로조차 그리 중요시 되지 않고 있을 만큼 치유된 맹인의 표정의 의미는 큰 것이다. 뒷배경은 푸른색으로 경계선이 그려져 있고 절벽은 성문의 붉은 벽돌 옆과 두 주인공이 서있는 가운데에 비올렛 색깔의 언덕위로 더욱 더 찬란히 빛나고 있다. 주님 자신이 빛이시고 또 빛을 가져다주시는 분이다. 그럼으로 그분을 따르는-제자들-자들은 빛 속에서 거닐며 그 빛이 그들의 머리를 환하게 비추어준다.
바로 이 같은 빛이 성문의 어두운 곳을 떠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는 맹인의 눈으로 비춰지고 있다.
맹인은 마치 죽은 자와 같다. 다시 보게 된다는 것은 그에게 생명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이 기적의 경위가「나자로의 부활」을 묘사한 것과 비슷하다.「나자로의 부활」에서 죽은 자가 무덤에서부터 수건과 붕대에 감겨진 채 나오던 것처럼 여기서도 맹인이 손으로 앞을 더듬어가면서 성문에서부터 빠져나오고 있다. 나자로에게는 생명이셨던 그분이 맹인에게는 빛이시다『그리고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1ㆍ4) 이 같은 빛과 생명은 부활의 원천이며 교회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이시다. 그는 수난의 길로-예리고전에-가는 도중에 소경을 만나서 그를 완치시켜 주셨다. 이 성화의 복음전파는 그분이 우리가 그이 안에서 빛의 아들이 되기 위해 승천하신 인자로서 우리에게 오시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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