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는 생떽쥐뻬리의 사상을 그의 작품을 통하여 살펴보겠다.
생떽스의 작품이 다 그러하지만 그 중에서도 「인간의 대지」 「어린왕자」 그리고 그의 만년사상수기 「도성(都城)」을 활동과 명상을 통하여 끊임없이 한 메시지를 파헤치려는 강렬한 의지를 느끼게 한다. 또한 문명속에서 황폐한 인간속성이 여지없이 파헤쳐지고, 파헤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여기서 우리가 어떻게 구원될 것인가에 대한 답을 끌어내려 하고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의 근본적 테마는 인간문제다. 생명보다 더 고귀한 한 목표의 우월성을 인식하여야 하는 이 인간은 일, 타협, 우정, 사랑을 통하여 또한 그의 존재자체를 통하여 서로 끊임없는 유대를 갖고 교환하고 서로의 장단점으로 상보하는 관계속에서 산다. 「어린왕자」에는 순수와 허무 그리고 우수가 넘친다. 여기에 충실한 우수지정(憂愁之情)은 애절하면서도 고귀한데가 있다. 「삶의 이유」를 그리고 「참된 삶을 갈구하는 인간」을 상징하는 「어린왕자」에게 성인으로 등장하는 이 현실은 무엇을 안겨주는가를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생떽스는 「길들이다」는 말을 즐겨쓴다. 피조물은 길들임으로써 서로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대지」에 나오는 「알젠띤의 두 처녀」는 그 고운손으로 모든 짐승을 길들여서 모두 함께 어울려 화목하게 사는 파라다이스를 이 땅에 이루었고, 직업인은 연장을 길들여서 인간대지(人間大地)의 참모습을 찾아내는데 성공하고, 개개인은 자기 육체를 길들여서 자기 소명을 다하는 좋은 노복이 되게 한다.
뿐더러 밤, 사막, 산, 바다같은 자연의 개척 역시 생떽스의 표현으로는 『밤을 길들인다』가 되는 것이다. 인간이 새경험을 통하여 커가는 과정도 길들인다로 표현하고 있다. 견식을 넓혀서 인생의 의의를 터득하려는 열의에서 이 유성 저 유성을 여행하는 「어린왕자」가 노 항공사에게 「날 길들여달라」 애원하는 것도 그 좋은 예라 하겠다.
그러면 왜 길들이는가? 이것은 어디까지나 한 연장일 뿐 인간이 노리는 목표 그 자체는 아니다. 이 연장 너머로 계시되는 인간문제 그 자체가 문제다. 생떽스가 왜 그처럼 자기 직책에 충실했던가의 근본 이유는 어떤 직업이든 그 직업의 위대함은 인간을 하나로 모으는데 있고 인간에게 새 경험을 주는데 있고 또한 이 새 경험은 죽음과 대결하면서 사는 직업을 택하여 살았다. 그가 말한대로 죽음의 위기를 넘길때마다 영혼속 깊이 느끼는 것은 승리, 정복의 쾌감이 아니라 긴장한 신경의 안도의 숨이 있을 뿐이다. 마치 용의 아가리를 살짝 피해서 살아나온 백조의 경쾌감이라고나 할까. 위험을 넘어선 가날픈 인간의 일시적 휴식, 그러나 다시 다가올 다른위험에 대비하려 「하찮은 법의 조절」을 받아야 하는게 인간이다.
그리고 출격시 또는 비행조종시 생떽스는 언제나 사막 또는 해양 혹은 산맥 등을 횡단해야 했기 때문에 인간대지를 고귀하게 만들기도 하고 또한 때로는 위협하는 이 「죽을 운명」이란 문제가 극히 심각한 문제로 그에게 대두된 것이다. 『싸움없는 평화의 때는 인간을 바보로 만든다』는 말도 그가 한 말이라면 생떽스의 생애가 말로처럼 「사색하는 행동인」이 된 이유도 여기 있다 하겠다. 사막의 밤의 침묵속에서도 다가올 밤을 묵상하고 침묵중에 속삭이는 메시지를 듣는 이 신비한 교환은 그에게 인생이 무엇인가를 알게해준 것이다. 그가 「인간의 대지」맨 끝에 썼듯이 묵상 속에서 성신이 작용하고 『홀로 속에서 성(聖)만이 진흙 위를 볼 때 사람은 다시 창조되기』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일견 모순덩어리 같이 인생을 그가 파헤쳐 볼 때 현대인의 가장 큰 병폐는 『인간이 사람된 처지를 망각하는데 있다』고 그는 보았다. 그 결과 인간은 자꾸만 진보하는 세상에서 채 못마친 새 집에 겨우 입주하자 또 다른 새 장난감에 눈이 팔리는 어린 야만인처럼 자꾸만 다른 집에로 옮아갈 궁리를 하는 식으로 살아간다. 이때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되는 이 진보 하나 하나는 우리에게 유익이 되기는커녕 도리어 우리가 겨우 얻은 좋은 습성에서 우리를 조금씩 멀리 쫓아내는 격이 되어 인간은 언제까지나 떠도는 유성위에서 본향을 채 못 정한 한 뜨내기 신세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족속을 엄습하는 생활의 권태 무미건조에서 또는 짜증을 몰아내는 방법은 안일한 처세에 있다는 착각에서 황금이나 권력이나 쾌락의 종이 된다는 것이다. 이 상태가 인간으로서는 얼마나 비참한 가를 그들은 미처 깨닫지도 못하고 그냥 살아가는 가엾은 이 무리 그들에게 황금 성소의 신기루가 사라질 때 노쇠와 죽음이 모두들 파괴할 때 어떻게 될것인가? 생떽스는 이런 인생을 「잠자는 아기 모잘트」 「_害된 모잘트」 속에 묘사하고 있다. 『그들 자신이 자기의 비참함을 못깨치고 편히 있는데 왜 내가 이렇게 苦_하느냐』고 자문하기도 한다. 『자기가 만든 우상으로 성벽을 쌓아올려 감옥을 짓고 바람과 조수와 별들을 막아 자신을 유폐시킴으로써 허무한 인생을 자초하고 만다』(配城에서)는 이 말은 A.Camus가”I`ete”안에 서술한 ”Oran”시민의 愚行과 동일하다. 「어린왕자」가 사사(師事) 하러 찾아다니는 이 땅위의 소위 「훌륭한 인사들」은 하나같이 생활규정의 연속적 반복속에서 또는 쉴새없이 계산하면서 혹은 취중에 또는 권좌에 앉아서 일만을 위한 일만하면서 소일하느라고 「왕자」가 좋아하는 「황혼의 태양의 장관」을 감상할 겨를조차 없는 꼴을 보고 어찌 울음보를 터뜨리지 않겠는가!
생떽스가 찾고있는 것은 이 허무와 비참에서 인간을 구하는 보다 영속성있는 그 무엇이다. 개인행복을 바쳐가면서 물질적 진보를 위하거나 또는 업무수행을 위해 끝없이 노고해야 하는 이 인간들, 때로는 생명까지 내건 모험을 무릅쓰다가 끝내는 죽어야 하는 인간들의 일을 직업생활을 적당화시키는 길을 그는 찾고자 한다. 교량건설로 부상되어 일그러진 이 얼굴, 비행사고로 하나 둘 줄어가는 동료들의 생의 의의를 그는 알려고 한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누구의 이름으로 일하고 또 죽어야 하는가를 파헤치려는 것이다. 그의 묵상을 촉구하는 이 물음들에서 생떽스는 어떤 답을 얻을 것인가를 다음호에서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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