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성경말씀은 예수께서 어느 혼인잔치에 초대(招待)되심을 알려주시며 자세히 음미(吟味)하여보면 그 말씀의 진미(珍味)로움을 알 수 있읍니다. 흔히 생각하기를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값없이 여기거나 경(輕)히 여기는 혹은 가까이 하기 어려울만치 존형하는 사회(社會) 밖에서 살고 계시는줄로 알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술을 마시고 자기 제자(弟子)들과 함께 즐기며 놀고 잔치에 초대를 받아가신다는 것은 평소(平素) 우리들에게 색다른 감(感)을 주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로 인하여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고 우리들이 본받을 수 있는 구체적인 예(例)를 제시(提示)하여주십니다.
이러한 잔치에 있어서 틀림없이 예수께서는 흔히 있는 일로서 동석자(同席者)들이 술에 많이 취하도록 내버려 두었을 것입니다. 이는 어느날 성부(聖父)의 집에서 장사꾼들을 가죽채로 쫓아내던 예수께서 때로는 자비롭게 어떠한 약점(弱點)을 눈감아 주심을 우리들에게 시사(示唆) 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천주 성자이신 동시에 한 인간이시오 착한 사람이십니다.
진실로 위대(偉大)한 인물(人物)은 단순합니다. 예수께 가까이 사는 사람이면 적어도 일상생활(日常生活)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과 같고 평범(平凡)하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성(聖) 스러움은 그 자체(自體) 안에 아무런 유달리 눈에 띠는 것이 없읍니다. 진정(眞正) 한 성성(聖性)은 내적(內的)이며 바깥에 표시(表示)되지 아니하고저 합니다. 성인(聖人)을 찾아내는 법은 성성(聖性)과 양립(兩立) 할 수 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확인(確認)하는 길밖에 없읍니다. 바로 예수께서 그러하셨읍니다. 성스럽다는 것은 매우 가깝고 친절한 것입니다.
성모 마리에께서 예수께 술이 없음을 알려 그의 동의(同意)를 기두리지 아니하고 어떤 강제적(强制的)인 요구를 하신 오늘 성경말씀의 장면(場面)은 만약 우리들이 그 안에 포함(包含)되어있는 상징적(象徵的)인 뜻을 캐어본다면 뚜어나게 뜻깊은 것입니다.
그 혼인잔치에 모인 사람들이 지금까지 마신 술보다 더 맛있는 술을 맛보게 하여 마음끝 배를 불려 모든 사람들을 만족케 하였다는데 그 뜻이 있는 것이 아니오 성경을 쓰신 분들이 그 이름도 기록하지 아니한 어떤 신랑 신부의 결혼을 뜻하는 것도 물론 아닙니다. 성경말씀이 간직하고 있는 상직적인 뜻은 천주님과 교회의 결합(結合)을 뜻하는 것이오 천주님과 한 영혼(靈魂)의 혼인잔치의 기쁨을 뜻하는 것입니다. 물을 술로 변하게 한 것이 아니오 술을 당신 피로 변하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서 우리들은 구세주(救世主)이신 예수께서 첫 영적(靈蹟)을 행하심을 보았고 또 성모 마리아께서 처음으로 천주와 사람 사이의 거간자(居間者)가 되시고 십자가상(十字架上)에 달리신 당신 아들이 교회를 낳으시는 동안 『갈바리아』의 발밑에서 새로 언약(言約) 되는 아들들을 위한 중재자(仲裁者)가 되셨읍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허락된 때(期限)가 차기를 기두리지 아니하셨읍니다. 그는 때가 오기를 기두리고 있을 수 없어 기한이 오기 전에 단번에 모든 것을 다 요구하셨읍니다. 그는 순서(順序)를 따지지도 아니하셨고 요구하시는 목적물(目的物)을 제한(制限)하시지도 아니하셨읍니다. 그는 끝까지 곧게 또 단순하고 솔직하게 모든 성총을 구(求)하셨읍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당신이 돌보셔야 할 모든 아들들의 영혼의 병을 고치고 그 영혼을 구(救)하실 수 있는 성사(聖事)의 언약(言約)을 원하셨고 또 받으셨읍니다.
이 언약이 바로 성체성사입니다.
이 『가나』촌의 혼인잔치 이야기는 결국 가톨릭신앙의 첫 시작이오 근본(根本)이 되는 두 가지 신심(信心)의 출발점(出發点)을 가르쳐 주신 것이니 곧 성체(聖體)와 성모 마리아이십니다.
黃敎仁 神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