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집 셋방살이
몇년 전 일이다.
갖 임관된 한 군종신부가 짊어진 군인 보따리만큼이나 큰 의욕과 포부를 안고 전방 임지에 도착했다.
이때만해도 군종신부들 특히 전방 신부들에겐 마음놓고 짐을 풀만한 집이 마련돼있지 않아 각기 사정에 맞춰 전세나 삭월세 방을 한칸씩 얻어 살때였다.
그런데 이 지역은 10여년간 군종신부가 거쳐간 적이 없는 곳이어서 전임신부가 있을 턱이 없고 따라서 당장 그날 저녁잠 잘 일이 막연했다.
그렇다고 신부가 지저분한 여인숙에 들수도 없고.
생각끝에 조금 떨어져 있는 성당으로 주임신부를 찾아가 당분간 숙소가 해결될때가지 사제관에서 묵게 해주길 청했다.
외국인 주임신부는 한참 생각하더니 서투른 한국말로
『방이 여럿 있으니 신부님 여기 계시는것 어렵지 않지만 신부님 때문에 한국말 잘 못하는 나는 신자들에게 별 쓸모없는 신부되니 곤란합니다』고 잘라 거절하는 것이었다. 그럴듯한 이유였지만 더 할말없어 그 길로 뛰어나와 급한김에 어느 초가집 골방 하나를 얻었다. 이튿날 아침 궤짝위에 제대를 차리고 미사를 드리는데 난데없이 안방에서 징소리 북소리가 요란하더니 주문이 터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알고보니 그 집은 일대에서 알려진 무당집이었다.
그 후 이 신부는 재임 1년만에 부대와 몇몇 독지가의 후원으로 20여 평짜리 사제관을 짓고 「집없는 설움」을 씻었다.
지금도 전방 신부 반 이상은 부대 주변에 방 한칸씩 얻어 홀아비 냄새가 물씬나는 생활들을 하고있다.
운 좋으면 공소를 차지하고 공소회장 노릇을 겸하기도하지만 신부생활이란 알뜰히 뒷바라지를 해주어도 어딘가 냄새가 나기 마련인데 전방 신부들은 그런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어떤 신부는 어머님을 모셔다 안됐지만 식모(?)살이를 시키기도 하고 비공식이지만 자기 부대의 군인 신학생을 데려다 당번삼아 부리기도 한다.
다행히 어머니가 누이동생이 뒤를 봐주면 괜찮은데 남자가 어물거리는 손으로 해내오는 밥을 먹는다는건 피차 괴로운 일이지만 어쩔수 없다.
자연히 의식이 많게되고 때로는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조금 후방인 춘천, 가평 등지에 있는 「군종 사제관」으로 동료신부를 습격하면(전방 신부들은 이렇게 말한다)집쓰고 사는 군종신부는 「전방동료」를 홀대할수 없어 주머니를 털어서라도 대접해야 한다.
전방으로 올라갈수록 군종 살림살이는 초라한 대신 할 일은 태산같다. 한 젊은신부, 일요일 오전 6시부터 오후 7시까지 약 3백리 길을 왕래하며 4대의 미사를 드리곤 1년 전 2만원에 산 두칸짜리 판자집 툇마루에 털썩 주저앉아 『냄새나지만 내 집에 오니 살것 같군』하면서 군화를 벗는다.
▲군종신부와 군목(軍牧)
군종신부와 군종목사는 군내에서 얼핏보아 구별하기 어려우리만큼 같은 분야에서 같은 일을 하는 사이.
교파가 다르다는것 뿐이지 이들은 군종 참모실에서 늘 얼굴을 맞대고 군종활동을 계획하고 실천한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동료이면서 협조자이어야 할 이들의 사이란 실제 그렇지 못할때가 많다.
군종분야의 책임자는 대개 군목들이 차지하고 있고 그 수에 있어서도 군종신부를 압도하기 때문에 신부들은 계열상 군목의 하위에 속하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어떤 계획을 세우는데 있어 책임자인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조정하는 예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군목중에 장기근무자가 많고 실적이 평가기준이 되는 군대이고 보면 같이 군인교회 하나를 세워 낙성식을 해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행사를 짜는 경우를 보게된다.
작년 진부령 정상에 군인교회를 짓는데 3분의 2쯤은 신부가 공을 들였다.
군목 한분이 상주하면서 관리하고 있는데 오전 10시로 합의된 미사시간을 9시로 옮겨줄수 없느냐고 수차 얘기해 오고 있다.
병사들이 많이 참석할수 있는 10시에 예배를 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군종신부는 우리도 장기 복무자가 많아야겠다고 투덜댄다.
지금 군종신부 목사 법사(불료)들은 재작년부터 일기 시작한 「전 군신자화 운동」으로 어느때 보다 좋은 여건 아래서 「이삭」줍기에 바쁘다.
원래 이 운동은 장병들에게 신앙에 바탕을 둔 확고한 死生觀을 심어주자는 취지에서 나왔으나 하다보니 더러 부작용도 웃지 못할 일도 생기고 있다.
군종의 입장에서 보면 이 기회야 말로 자기교파 신자를 취득하는 절호의 기회라 근래 사상최대를 기록하는 진중영세식이 줄을 잇는 형편이다.
금년 야전군 신자화 목표는 65%인데 예하 부대의 신자유을 집계해보니 벌써 90%가 넘더라는 어느 군종신부는『좀 과열하는것 같다』고 우려를 나타낸다.
어떤 부대서는 군목이 정신훈화 끝에 모인 장병들에게 무더기 세례를 주었다.
그래서 개신교 세례를 두번씩이나 받은 군인 신학생이 나오는 웃지 못할 일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끝<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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