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음 『포교전선』(布敎戰線)이라는 용어를 많이 듣게되는데 『전선』이란 그야말로 피투성이가 되어 투쟁하는 곳을 말하는 것으로서 현재 전교의 새로운 한면을 개척(開拓)하고 있는 종군(從軍) 신부의 임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또한 현대 사상전(思想戰)에 있어 가톨릭출판물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마치 전쟁터전에 있어 포탄(砲彈)과 같은 것으로 전교에 있어 얼마나 중대한 역할을 하는 필요불가결(不可缺)의 것임은 이제 새삼스리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포교 혹은 가톨릭시즘을 선양함에 있어 출판물을 통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서 가톨릭출판물은 그것이 비록 조고마한 팜프렛이라 할지라도 필자의 권위와 더불어 또 「임쁘리마뚤」을 겪은우수한 내용을 갖춘 것이다. 그때문에 우리는 안심하고 이를 권하며 서슴치않고 내놓을 수 있는 것이다. 교회는 다른 많은 방법을 제쳐놓고 이 출판물의 보급이 곧 현대를 구할 수 있으리라고까지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극히 상식적인 긴급한 교회의 요청에 대부분의 신자들은 아직 아무런 관심도 없는 한심한 현상 가운데서 한가지 아름다운 이야기꺼리가 있다.
즉 대구 계산동(桂山洞)본당 청년회를 구성하고 있는 세포(細胞) 조직의 하나이며 교회행사에 언제나 중요한 역군(役軍)이 되어온 『성우회』(聖友會)라는 그뤂의 전회원과 『십오회』(十五會)라는 그 모임의 멤버 및 사람들은 우리나라 국군에 군종(軍從)제도가 마련된 1952년 4월 이래 8년간을 성실하게 종군신부들의 전교사업을 후원함으로써 회교인들에게 『나 자신이 직접하지 못하는 전교활동을 간접으로라도 한다』는 뜻에서 전회원이 매월 그들의 넉넉지못한 호주머니에서 성금(誠金)을 모아 그 금액으로써 가톨릭 정기간행물(定期刊行物)을 종군신부단에 기증하여왔는데 이에 대하여 한국 종군신부단의 총재(總裁) <바오로> 노 주교께서는 이들의 정성을 가상하시고 그 행위를 찬양하시는 감사장을 보내시었으므로 그 수여식을 겸하여 종군신부들과 후방 후원자들이 자리를 같이하여 군대생활에 있어서 윤리(倫理)화 도덕문제를 지도하며 군대 내의 전교를 담당하고 있는 군종임무의 여러가지 애로(隘路)와 또한 그 자녀들을 군문에 보내고 있는 부형(父兄)으로서의 여러가지 관심을 서로 이야기하는 뜻깊은 모임이 1월 16일 하오 6시30분부터 대구 주교관 회의실에서 개최되었던 것이다.
이 자리에는 종군신부단 종채 노 주교를 대리로 서울교구 경리부장이며 종군신부단의 대표자인 <이시도로> 박(朴喜泰) 신부 육군본부의 군종 <베드루> 안(安達遠) 신부를 비롯한 육해공 3군의 종군신부 6명이 참석하였으며 대구교구장 서리 <벨나도> 서(徐廷道) 부주교를 비롯한 대구시내 각 본당신부들과 평신자 유지 20여명이 참석하여 2시간 이상 시종 하기애애한 가운데 다음과 같은 질문과 종군신부들의 실정보고 이야기가 있었다.
①종군신부 제도(制度)의 역사 ②군종신부가 군대내에서 차지하는 위치(位置) - 장교들과의 관계 및 그 차이(差異) ③현재 우리 국군내의 군종의 현황(現況)- 신부와 프로테스탄트 목사수의 비교, 교파(敎派)별 ④종군신부제도가 생긴 이후의 포교업적 ⑤다른 일반 본당신부들과 전교활동상 다른 여러가지 점-젊은 남자들만의 사회의 특징, 군대에서 영세입교한 자들이 제대(際隊)되어 고향에 돌아가서의 그 신앙생활면, 혼배관계 등 ⑥후방교회와 교우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 등으로 흥미있고 인식을 새롭게 해주는 여러 화제(話題)의 꽃을 피웠는데 반공(反共)이 국시(國是)인 우리나라에 국군이 있는 한 종군신부제도는 계속되어야 할 중대한 사업이며 더욱 이 병역법(兵役法)이 시행됨에 따라 한국의 모든 젊은이들은 군복무(軍服務)를 치뤄야하는데 열심한 교우라 하더라도 신앙생활이 고된 군대에서 신부도 없이 그대로 버려둔다면 그 결과가 어껗게 될 것이라는 것은 생각만해도 두려워지는 일로서 이렇게 할 일은 태산같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성직자의 수 부족으로 인하여 군대 내에서는 목사 52명에 시부 한분의 비율인 적은 수의 신부님들이 그많은 프로테스탄트 목사들을 상대로 포교전의 진을 치고있는 고충은 이루 형언할 수 없으며 또 훈련소 같은데서는 신부 한분이 한시간동안에 평균 100명의 고해성사를 주어야만 하는 기맥히는 과로(過勞), 이러한 종군신부들을 도아주며 지탄(紙彈)의 역할을 하는 가톨릭출판물이 얼마나 긴요하게 쓰여지고 있다는 실정이야기를 들은 모든 참석자들은 전선(前線)과 후방(後方), 군대와 각 가정과의 서로 긴밀한 연락과 유대(유음 『포교전선』(布敎戰線)이라는 용어를 많이 듣게되는데 『전선』이란 그야말로 피투성이가 되어 투쟁하는 곳을 말하는 것으로서 현재 전교의 새로운 한면을 개척(開拓)하고 있는 종군(從軍) 신부의 임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또한 현대 사상전(思想戰)에 있어 가톨릭출판물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마치 전쟁터전에 있어 포탄(砲彈)과 같은 것으로 전교에 있어 얼마나 중대한 역할을 하는 필요불가결(不可缺)의 것임은 이제 새삼스리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포교 혹은 가톨릭시즘을 선양함에 있어 출판물을 통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서 가톨릭출판물은 그것이 비록 조고마한 팜프렛이라 할지라도 필자의 권위와 더불어 또 「임쁘리마뚤」을 겪은우수한 내용을 갖춘 것이다. 그때문에 우리는 안심하고 이를 권하며 서슴치않고 내놓을 수 있는 것이다. 교회는 다른 많은 방법을 제쳐놓고 이 출판물의 보급이 곧 현대를 구할 수 있으리라고까지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극히 상식적인 긴급한 교회의 요청에 대부분의 신자들은 아직 아무런 관심도 없는 한심한 현상 가운데서 한가지 아름다운 이야기꺼리가 있다.
즉 대구 계산동(桂山洞)본당 청년회를 구성하고 있는 세포(細胞) 조직의 하나이며 교회행사에 언제나 중요한 역군(役軍)이 되어온 『성우회』(聖友會)라는 그뤂의 전회원과 『십오회』(十五會)라는 그 모임의 멤버 및 사람들은 우리나라 국군에 군종(軍從)제도가 마련된 1952년 4월 이래 8년간을 성실하게 종군신부들의 전교사업을 후원함으로써 회교인들에게 『나 자신이 직접하지 못하는 전교활동을 간접으로라도 한다』는 뜻에서 전회원이 매월 그들의 넉넉지못한 호주머니에서 성금(誠金)을 모아 그 금액으로써 가톨릭 정기간행물(定期刊行物)을 종군신부단에 기증하여왔는데 이에 대하여 한국 종군신부단의 총재(總裁) <바오로> 노 주교께서는 이들의 정성을 가상하시고 그 행위를 찬양하시는 감사장을 보내시었으므로 그 수여식을 겸하여 종군신부들과 후방 후원자들이 자리를 같이하여 군대생활에 있어서 윤리(倫理)화 도덕문제를 지도하며 군대 내의 전교를 담당하고 있는 군종임무의 여러가지 애로(隘路)와 또한 그 자녀들을 군문에 보내고 있는 부형(父兄)으로서의 여러가지 관심을 서로 이야기하는 뜻깊은 모임이 1월 16일 하오 6시30분부터 대구 주교관 회의실에서 개최되었던 것이다.
이 자리에는 종군신부단 종채 노 주교를 대리로 서울교구 경리부장이며 종군신부단의 대표자인 <이시도로> 박(朴喜泰) 신부 육군본부의 군종 <베드루> 안(安達遠) 신부를 비롯한 육해공 3군의 종군신부 6명이 참석하였으며 대구교구장 서리 <벨나도> 서(徐廷道) 부주교를 비롯한 대구시내 각 본당신부들과 평신자 유지 20여명이 참석하여 2시간 이상 시종 하기애애한 가운데 다음과 같은 질문과 종군신부들의 실정보고 이야기가 있었다.
①종군신부 제도(制度)의 역사 ②군종신부가 군대내에서 차지하는 위치(位置) - 장교들과의 관계 및 그 차이(差異) ③현재 우리 국군내의 군종의 현황(現況)- 신부와 프로테스탄트 목사수의 비교, 교파(敎派)별 ④종군신부제도가 생긴 이후의 포교업적 ⑤다른 일반 본당신부들과 전교활동상 다른 여러가지 점-젊은 남자들만의 사회의 특징, 군대에서 영세입교한 자들이 제대(際隊)되어 고향에 돌아가서의 그 신앙생활면, 혼배관계 등 ⑥후방교회와 교우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 등으로 흥미있고 인식을 새롭게 해주는 여러 화제(話題)의 꽃을 피웠는데 반공(反共)이 국시(國是)인 우리나라에 국군이 있는 한 종군신부제도는 계속되어야 할 중대한 사업이며 더욱 이 병역법(兵役法)이 시행됨에 따라 한국의 모든 젊은이들은 군복무(軍服務)를 치뤄야하는데 열심한 교우라 하더라도 신앙생활이 고된 군대에서 신부도 없이 그대로 버려둔다면 그 결과가 어껗게 될 것이라는 것은 생각만해도 두려워지는 일로서 이렇게 할 일은 태산같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성직자의 수 부족으로 인하여 군대 내에서는 목사 52명에 시부 한분의 비율인 적은 수의 신부님들이 그많은 프로테스탄트 목사들을 상대로 포교전의 진을 치고있는 고충은 이루 형언할 수 없으며 또 훈련소 같은데서는 신부 한분이 한시간동안에 평균 100명의 고해성사를 주어야만 하는 기맥히는 과로(過勞), 이러한 종군신부들을 도아주며 지탄(紙彈)의 역할을 하는 가톨릭출판물이 얼마나 긴요하게 쓰여지고 있다는 실정이야기를 들은 모든 참석자들은 전선(前線)과 후방(後方), 군대와 각 가정과의 서로 긴밀한 연락과 유대(紐帶)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앞으로 더욱 협조하고 도우자는 결의를 표명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