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리스도교와 타종교
오늘과 같이 타종교에 대해서 관심이 큰 때도 일찍이 없었다. 그러나 거기에 비해서 종래의 복음화활동에 어떤 차질을 가져오지 않나 하는 의심마저 든다. 교회의 지금까지의 역사를 본다면 비록 밀어닥치는 여러 가지 반교회적 반복음적 세력의 요소가 본래 교회가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하더라도 교회는 그것을 시인하지 못할 때는 적어도 그것을 이해할려고 노력해 온 것 같다. 다시 말한다면 그런 외적 반교회적 처지를 초월한, 보다 더 고차원적인 태도를 임해야할 과제를 지니고 있지 않았나 싶다. 현대의 여러 가지 사상의 억센 물결의 다원성은 단적으로 무시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입장에서 아무리 그것이 반교회적 요소를 지녔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우리들의 반성을 촉구하고 실존의 그리스도 교적으로 이해하는 폭넓은 시야를 가지고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는 확실히 다원적 사회에 살고 있고 그 사회가 묻는 물음에 그리스도인으로서 대답해야 하고 해결해야하고 보여주어야 한다. 그 많은 물음 속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가장 곤란한 것은 그리스도교가 2천년이란 긴 세월을 통해 복음화를 노력하고 있으나 오늘 역시 많은 신생종교가 발생하고 있고 이미 있었던 종교들의 세력이 그렇게 약화되지도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는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종교의 완전한 결여와 그의 전면적인 부정이고 따라서 거기에서 일어나는 세속화된 신생종교들이다. 그리스도교 부정의 가장 큰 원인으로 생각되는 것은 아무래도 오늘의 종교계의 일치의 부족이 아닌가 싶다. 특히 타종교와 달리 정당하고 유일한 계시종교라는 의미에서 절대적인 종교로 자처하는 그리스도교에 있어서의 처지는 말할 수 없는 위협이 아닐 수 없고 동시에 고민의 씨앗이 되고 있다. 전에는 종교란 문화권이 다르고 역사가 다른 민족에게 다른 종교가 있다하더라도 조금도 이상할 것 도 없었으나, 그러나 오늘날의 동서양은 독립된 동양도 서양도 아닌 것이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세계 속의 한사람으로 서로가 이웃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각자는 지상의 여러 가지 생활 상태에서 영향을 받고 있고 이방의 종교는 이방이라고만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자체를 말한다면 <그리스도 교회는 전 인류를 위해 정해진 절대적인 종교이고 타의 어떤 종교도 자기와 동렬의 위치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자로서는 정당하고 옳은 종교란 제일의적으로 인간이 스스로 세운 신과의 관계가 아니고 또한 인간실존이나 경험의 자기여서도 아닌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나에게 대한 신의 작용이고 자기를 인간에게 주므로 신 자신의 자유로운 계시이고 또한 그렇게 정하므로 계시하는 신과 나와의 관계인 것이다. 그 신과 나와의 관계가 신의 수육과 고난과 부활로써 근본적으로 만인을 위한 것이고 만인에게 동등하다는 것이 신 자신의 해석이라면 타종교 속에서 그리스도교만이 유일무이의 구원의 종교라는 것을 주장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절대자인 하느님의 말씀으로써 사람이 되고 스스로의 죽음과 부활에 의해서 세상을 신과일치시키고 신과 화해시킨 이래, 이 그리스도와 지상에 나타난 교회는 실로 인류를 신과 연결시키는 종교(RELIGIO)인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비록 인간기원에까지 올라가서 고유의 선사시대를 가지고 그것이 신약성서의 권위로써 정당화된다 하더라도 그리스도교 그 자체는 역사의 일정한 시기에 시작했지 언제나 어디서나 인류구원의 길은 아니었다. 적어도 역사적으로 일반사회에서 접할 수 있는 교회였지 전 인류가 그리스도를 자각하고 그리스도로 향하기에 쉬운 교회는 아니었다. 그리스도교를 역사적으로 말하면 교리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탄생과 공생활, 죽음, 부활 시공을 초월하지 못한 것은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절대성을 주장하는 이 종교는 만인에게 있어 근본적으로 절대적이고 정당하고 필수의 종교로서 사람들과 역사 속에서 만나져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절대적인 이 종교가 인류전체에게 동시에 일어난 것도 아니고 문화와 역사를 달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동시에 인식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바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복음이 모든 인류를 객관적으로도 구속할 수 있게 된 것은 사도시대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따라서 이 시작과 후의 역사가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거나 개인의 책임으로 거부되거나 하는 그 중간에서도 그리스도의 메시지에 구속력을 가진다고 보았다. 즉 법의 공포와 실제 인식하기까지의 시간적 공간을 말한다는 것은 단순한 이론만이라 할 수 있겠는가.
<계속>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