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대륙위 가톨릭교회는 오늘날 주 예수님과 더불어 십자가에 못박혀버렸고 만신창이(滿身瘡痍)의 일반 창구(瘡口)에서는 유혈(流血)이 낭자하다.
중공에 있는 『침묵의 교회』를 도우는데는 십자가의 희생이 피흘림없이 항상 제대상에서 새롭게 재현(再現)되는 미사성제에 우리 다같이 한달을 하루도 빠짐없이 참례하여 중국의 박해의 교회를 구속의 예수성심께 맡기고 이 한달의 희생과 고통을 고민하는 형제들을 위하여 성심께 봉헌하는 것 보다 더 손쉽고 더 도움이 되며 더 효과적인 것이 또 있으랴.
이 도움은 초자연적(超自然的)인 도움이요 동시에 결정적인 도움인 것이다.
이 도움은 모든 고난을 무릅쓰고 폭력의 고통과 아직도 과감히 싸고 있는 우리의 형제들이 각 강제노동장 각종 강제수용소 그리고 각 가정에서 이 어려움을 이겨나가는데 절실히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 가톨릭교회는 아직도 살아있다. 이의 한가지 예로 우리는 「샹하이」(上海)시를 들 수 있으니 여기서는 공산당들과 교우들의 치열한 투쟁이 수년전이나 지금이나 조곰도 다름없이 계속되고 있으며 행동적인 젊은 가톨릭 청년, 특히 대학생들이 대량으로 강제노동장으로 끌려가고 있는 것이다.
「샹하이」에서는 많은 남녀 청년들이 투옥되고 있는 광경을 언제들지 볼 수 있다. 그들 젊은 교우들은 가톨릭 교회를 배반하도록 한달동안 공산당의 세뇌(洗腦) 공작과 도덕적 고문을 받은 후에 강제 노동장으로 감금되는 것이다. 이 젊은 사람들은 모두 아마 「샹하이」시내 어떤 형무소에 5년째 투옥되어 있으며 소식조차 모르는 <이나시오 공> 주교님을 추앙하며 사모하고 있는데 또다시 신부와 수녀들이 투옥될 것이라는 소식이 자꾸만 들려오고 있다.
「샹하이」교구 신부님들의 4분의 1이 이미 투옥되어 있고 나머지 신부는 다공장에서 노동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3백명의 수녀들은 엄중한 감시아래 옛날 수도원에 감금되어 있으며 매일 이른 새벽부터 「철 공장」(여기는 전에 예수회가 있던 徐家휘다)으로 끌려가서 여기서 신부님들과 소위 『강철과의 싸움』을 해야하는 것이며 그들은 조고마한 용광로에서 강철의 원료를 만드는 것이다.
이 노동훈련의 슬로칸은 『용광로 속에서는 강철을 녹이고 밖에서는 사람이 개조(改造)왼다』는 것이다.
신부들과 수녀들의 일부는 도로공사장이나 또는 다른 공동작업에 사용하기 위하여 그들의 고향에서 멀리 추방되는 일도 많다.
북경(北京) 시내의 130명 신부중에 그대로 남아있는 분은 불과 20명뿐 다른 이들은 투옥되었거나 혹은 공사장에서 강제 노동을 당하고 있다.
광동(廣東)에서는 모든 신부들이 다 화학(化學) 공장에 투입되었다. 광동성 「수와도」(仙頭)교구에서 전해진 전성직자의 3분의 1 이상이 투옥되었다고 한다.
대량추방의 행열은 신강(新疆)「청하이」(靑海) 강서(江西) 몽고(蒙古) 같은 북쪽 변경(邊境)으로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거기서는 이미 가톨릭의 젊은 교우들이 강제 노동을 당하고 있는 곳이다. 「샹하이」에는 그 가족 중의 한 사람이 국경 지대로 추방을 당하지 않은 교우가족이란 한집도 없는 형편이다. 신부가 난 어떤 가족은 27명의 가족이 북변 노동장으로 끌려갔다.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모든 교우들은 하나의 큰 가족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 가족들에게 투쟁하는 생활하는 승리하는 교회의 성총의 보화늰 전해진다』 (비오 12세)